• 전체메뉴보기
 

물·골·안·에·서·온·편·지

물골안 사람들2

배트맨이라고 아시지요?
그런데 물골에도 배트맨이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후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다는 분인데, 오가는 자동차들 교통정리도 하고, 아이들 훈계도 주고, 하루도 빠짐없이 운수리 일대 도로 순찰과 호구 방문을 하시는 아저씨입니다.
배트맨은 그분이 스스로 붙인 별호인 셈인데, 아이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자신의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이름 대신 배트맨이라고 부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러한 자신의 깊은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을 배트맨이라고 부르지 않는 아이들에게 군밤을 주기도 합니다.

머리에 군밤을 맞은 아이들은 눈물을 짜고난 뒤부터는 꼬박꼬박 배트맨이라고 부르는데, 그분이 얼핏 보기엔 약간 이상한 분 같기도 하지만, 어떤 때 보면 여간 영악한 게 아닙니다.

적어도 수동에서는 어디든 못 가는 곳이 없으니, 파출소건 면사무소건 제집처럼 드나들고, 지나가는 차들이 모두 자신의 자가용입니다.

예전의 파출소장을 일제 순사의 끄나풀이라며 혼내 주어야 한다고 식식거리고, 소장은 그를 가리켜 ‘영리한 바보’라고 서로 여간 견제하는 게 아닙니다.

선을 무려 100번 정도 보았지만 여전히 총각인 배트맨은 만화 가게, 슈퍼, 소방서, 카센터, 분식집을 일일이 순회 점검하며, 아이들의 등 뒤에서 갑자기 ‘배트맨!’하는 함성과 함께 나타나곤 합니다.

혹 외지에서 처음 들어와 가게를 하던 이들이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이 들어와, 정확치 못한 발음으로 이런 저런 간섭을 하며 장사하는데 걸리적거리게 하는 바람에 파출소에 신고 전화를 하면, 마치 자기집 자가용에 오르기라도 하듯 거드름을 피우며 올라타고 갔다가는, 어김없이 이튿날 안부라도 묻듯 찾아오는 배트맨.

이젠 사람들은 하루라도 그를 보지 못하면 제대로 일과가 열리지 않은 것처럼 하나의 친근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황향순이라는 화가분도 있지요.말로는 아마튜어라고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솜씨에 특히 고양이를 좋아하고, 잘 그리는 분이지요.

그분은 얼마나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댁에 가면 고양이들이 방안이나 층계마다 가족처럼 지나다니는데, 내가 보기엔 그놈이 그놈 같아 구별이 안되건만 그 하나마다 이름이 죄다 있고, 고양이가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구멍 문도 만들어 놓았지요.

고양이뿐만이 아니라 그분은 산 생명을 참 소중히 아끼는 분인데, 거리에 버려져서 피부병투성이가 된 토끼를 데려다가 살려, 지금은 개보다 더 슈퍼 토끼가 된 엘리스가 있고, 개도 있습니다.

그 분은 누구보다 총 든 사냥꾼들을 아주 싫어하는데, 그분의 눈에 띄면 곧바로 카메라를 들고 나가 찍힘을 당하거나, 고함을 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적어도 그분의 집 근처에는 총 든 이들이 뜸하고, 왔다가도 그분만 보면 얼굴을 가리고 달아나는 판이라니 살아 있는 수동의 환경 지킴이지요. 그림을 그리다가 잘 안되면 모두가 잠든 밤에 고양이를 앞에 앉혀 놓고 소주 몇 잔을 나눈다는 향순씨는 마치 살아 있는 동화의 인물 같지요.

겨울밤이면 얼어붙은 개울에 나가 새파란 달빛 아래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지요. 적어도 수동에서는 그것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참으로 꿈 같은 일이지요.田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물·골·안·에·서·온·편·지] 물골안 사람들2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