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골·안·에·서·온·편·지
해 뜨는 집
나는 이곳 지둔리 골짜기로 이사온 후 집으로 오르는 언덕길에 <해 뜨는 집>이라는 나무판을 걸어 놓았습니다. 송판 조각에 노란 페인트를 칠하고, 내가 좋아하는 60년대 올드송 제목을 우리 집 문패 삼아 걸어 놓았지요. 그랬더니, 이젠 수동에선 우리 집 번지수보다 그 제목으로 불리게 되어, 편지에 적는 주소도 으레 <해 뜨는 집> 이라는 걸 적어두면 용케도 산골짜기까지 편지가 찾아듭니다.
그 덕분에 산길을 넘던 차들이 이따금 카페인줄 알고 들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 들어온 장인께서 당신의 취향에 맞게 <취곡산장>이라는 간판까지 붙여 놓아 나는 장인과 경쟁적으로 우리 집 알리는 일에 열중입니다.
연로하신 장인께서는 <해 뜨는 집>이라는 해괴하고 경박한 옥호보다는 한문체의 <취곡산장>이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신 듯하나, 우리 내외는 그것이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귀곡산장>이라는 코미디를 연상시킨다며 아우성쳤습니다.
그러나 매사에 유연하신 장인께서도 그것만은 결코 물러섬이 없이, 재빨리 명함까지 <취곡산장>이라는 주소를 넣어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시고, 집으로 오는 길목에 친필로 취곡산장이라는 이정표까지 걸어 놓으셨지요.
나는 우리 집이 그런 코미디적인 이름으로 인근에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 뜨는 집>을 홍보하고 다니니, 그야말로 한가족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장인께서는 나이에 비해 참 건강하시고, 건전하시지요.
왕년의 미술 솜씨를 발휘하기 위해, 이사온 후 처음으로 들른 곳이 화방이었습니다. 9호 짜리 캔버스 몇 개와 유화 물감부터 사들인 장인은 이미 우리 집 주변의 조경 조감도를 그려 두셨습니다. 그런데 언덕길 입구의 대문에 장차 장미로 아치를 만들려던 나의 계획은 장인이 왕년에 살던 연희동 집 마당에 있었다는 아카시아에 대한 추억으로 자칫 물거품이 될지도 모릅니다.
장인은 계속 아카시아나무의 그늘과 꽃향기의 뛰어남을 역설하고, 나는 그 나무의 뿌리가 주변을 망치고, 어느 정도 크면 바람에 잘 부러진다는 점을 들었지만 쉽게 합의가 되지 않습니다. 보다 못한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이 모여 조경에 관한 협의회를 갖자고 제안하여 지금 막후 절충중입니다. 음악도 나는 주로 60-70년대 팝송이나 포크송을 즐기는데 비해 장인은 이탈리아 가곡, 특히 <별이 빛나는 밤>이나 <남 몰래 흐르는 눈물> 같은 것만 틀라고 합니다.
나는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토종 조선인이건만 장인은 돈가스나 카레라이스 같은 양식을 즐기지요. 이런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인에게 많은 걸 배웁니다. 자연을 여유 있게 즐기며 사는 삶,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모든 걸 소유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함께 살아가려는 생명에 대한 관조와 정성의 마음 씀씀이는 삶의 선배로서 내가 늘 존경하며 흠모하는 점입니다.
이제 어른들을 모시고 함께 사려는 분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으며, 미리 생각하였던 것보다 실제 살아가면서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걸 일러 주고 싶습니다.
때로는 생각이나 취향의 차이, 연령에서 오는 가치관의 대립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결국은 한 가족이 모여 아기자기한 추억을 일구는 재미로 여기며, 오늘도 나는 장인이 기거하는 별채(우리집과는 지붕은 잇대었지만 뒷문을 나가 계단으로 올라가야 통하는)에서 오라는 특별요리 돈가스 만찬에 초대되었습니다.
서울공대를 나오셔서 주로 외국 건설현장에서 근무하신 장인은 요리에 관한 한 세계 각 국의 기법들을 익숙히 다룹니다. 조만간 친부모님께서도 우리 집으로 오실 예정이니, 나야말로 누구 말대로 실버타운 원장이 되는 셈이지요. 부모님께서 저희 집에 들르실 때마다 사돈끼리 밤늦도록 정담을 나누는 걸 곁에서 듣다 보면, 참 집안이 포근해집니다.
장모는 우리 어머님 무릎을 베고 누워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장인은 아버님과 6.25 전쟁 때의 고생담을 이야기합니다. 전 같으면 모처럼 저희 집에 들러도 테레비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들기 바쁘시던 부모님들이 모처럼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걸 보며 나는 요즈음의 우리들이 잃어버린 가족사의 한 장을 새로 쓰는 기분입니다.
이제 나는 60년대 비극적인 미국 가정의 이야기를 노래한 <해 뜨는 집>이라는 노래가 이곳에서는 말 그대로 따스한 햇빛과 웃음이 넘치는 가정의 이야기로 바뀌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田
■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