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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족제비를 잡다

이건 실화인데요, 혹시 족제비를 보셨나요?
불당골에서 이곳 광대울 밑으로 이사와 살다 보니, 이상한 걸 보았어요. 다람쥐치고는 좀 크고, 청솔모도 아닌 것이 등에 조그만 새끼를 엎고 차 앞을 가로질러 나갑니다. 참 해괴한 놈도 다 있다 싶었지만 까맣게 잊고 지냈지요.

그런데 추석을 지내느라 시골에 다녀오니 풀어놓고 기르던 닭 다섯 마리가 없어졌어요. 개들이 물어갔나. 아니면 누군가 닭서리를 해 갔나.

그러던 차에 어느 날 밤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새벽 두세시 경쯤 되었는데, 얼핏 깨어보니 닭장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닭이 목이 메인 듯 킥킥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팬티 바람으로 달려나갔지요.

그랬더니 수탉 한 마리가 땅에 쓰러져 있는데 웬 노르스름한 놈이 목을 물고 있는 겁니다. 나는 땅바닥의 돌을 집어들고 힘껏 던졌지만 돌멩이는 유감스럽게도 놈을 못 맞히고 애꿎은 수탉만 후려갈겼으니, 놈은 비호같이 닭장 안을 맴도는데, 얼마나 빠른지 전기같다고나 할까요.

다시 돌멩이를 집어드니 맴을 돌던 놈이 용케도 쥐구멍 만한 닭장 밑의 틈바귀로 빠져 나오는 겁니다. 녀석을 향해 후래쉬를 비치니, 생긴 게 꼭 기생 오래비같이 생긴 놈이 영 밥맛없더군요.

그런데 녀석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겁니다. 나는 녀석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나서, 우선 팬티 바람으로 서 있는 나의 중요한 부위부터 가리고, 비스듬히 몸을 꼰 채 다시 돌을 집어던지자 녀석은 무협영화의 고수처럼 쏜살같이 나뭇단 속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나는 나뭇단을 향해 이리저리 서너 차례 돌멩이를 집어던졌지만 유감스럽게도 놈은 한 대도 안 맞고, 숲으로 달아났습니다.
멀리 버석거리는 낙엽 소리만 듣고 망연자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잠을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아내는 잠결인지 대수롭지 않게 그저 그러냐며 나보고 다시 잠을 자라고 하더군요. 알았다고 하며, 방으로 돌아와 누웠지만 도무지 분해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다섯 번이나 돌을 던졌는데 한 대도 안 맞습니까. 나는 분을 못 참아 다시 팬티 바람에 마당으로 나가 개들을 풀어놓았지요. 어미가 사냥개라는 데 노상 애꿎은 닭들만 잡아 대는 놈들이었지요. 녀석들은 아닌 밤중에 웬 떡이냐 싶어 신이 나서 펄쩍거리더니 또 괜스레 잠자는 닭들만 귀찮게 합니다.

개들을 야단쳐 쫓아내니, 녀석들은 시큰둥하여 어디론가 몰려갔습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잠을 자려는데, 얼마쯤 지나자 이번엔 개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이번엔 그 흉악한 놈들이 개를 잡아가려나 보다 하고 몽둥이를 들고 나가보니, 바로 현관 문 앞에 개 두 마리가 낑낑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개들이 싸움을 하나보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무언가를 물고 있더군요. 바로 숲으로 달아났던 그 노르스름 밥맛없는 놈이었어요. 그런데 녀석은 개에게 물린 채 다시 개 주둥이를 물어 개가 낑낑거리는 겁니다.

그러자 까망이란 수놈이 녀석의 꼬리를 끈덕지게 물어대니, 녀석은 몸을 돌려 이번엔 까망이 입을 물고, 그러자 바둑이가 다시 녀석의 꼬리를 물고… 이러기를 얼마쯤 후에 녀석이 축 늘어지더군요.

때는 이때다 싶어 나는 개들이 물어다 놓은 녀석을 몽둥이로 후려갈겼습니다. 녀석은 다리를 뻗고 최후를 맞이하는데, 나는 재차 집중적으로 그 얄밉게 뾰족한 입만 네 대를 갈기고, 마지막으로 발로 한 번 멋지게 걷어차려는데, 이게 웬 걸 헛발질이 뭡니까. 골문 앞의 한국 축구팀처럼 차라는 족제비는 못 차고, 내 신발짝만 휘익 날아갑니다.

그 순간 거실에서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려 옵니다. 나는 놈이 방으로 뛰어들어갔나 싶어 허겁지겁 뛰어들어가니, 아내는 입을 막고 아우성칩니다. 어쩌면 그리 잔인하냐는 겁니다. 아내는 어느 결에 잠을 깬 채 내가 족제비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걸 거실 창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내가 족제비를 발로 걷어차 그 족제비가 날아오는 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는 겁니다.

나는 누누이 녀석이 그동안 우리 닭들을 죽이고 괴롭힌 죄목을 조목조목 일러주었건만 아내는 족제비 편만 들고, 나를 무슨 잔인한 범죄인 보듯 합니다. 나는 분했지만 밖으로 나가 그 못된 녀석이 완전히 운명한 것을 확인한 뒤, 녀석을 닭장 근처 나무에다 거꾸로 매달아 놓았지요.

나는 다음날에서야 동네 사람들을 통해 그것이 족제비라는 것과, 이 근처에는 족제비뿐만이 아니라 오소리, 너구리, 멧돼지, 심지어는 곰까지 있으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닭장 근처에 족제비들은 얼씬도 않고, 가끔 토끼들만 집 근처에 나타났다가 환약 같은 똥만 남기고 떠납니다.

얼마 전엔 집 주변의 산들을 수색정찰을 했는데, 내 키만한 높이에 나무 껍질이 벗겨지고, 날카로운 발톱자국을 남긴 걸 보았습니다.
시이튼의 동물기에 의하자면 그건 영역을 표시하려는 곰의 행동으로 보이는데, 곰치고는 발톱이 너무 가는 것으로 미뤄 오소리가 아닐지 추정합니다.

여러분, 시골에서는 족제비를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족제비를 잡을 때는 팬티 바람을 피하고, 부득이한 경우 중요한 부위는 철저히 방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밥만 축낸다고 믿었던 우리 집 바둑이와 까망이가 아주 훌륭한 사냥개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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