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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이야기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라는 테레비젼 프로그램이 있었지요. 무슨 귀신이나 괴기담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주로 새로 이사간 집에 귀신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제가 시골로 이사를 들어올 무렵에 바로 그런 이야기가 자주 나오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처음 시골로 들어와 보니 해만 지면 사방이 금세 칠흑같이 어두워지는데 어디 불빛 한 점 없고 뒤 울에서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마치 산발한 여자 머리카락처럼 느껴지더군요.

이사를 오고 며칠 되지 않아 가족 셋이서 테레비를 보는데, 마침 어느 집에 이사를 가서 겪은 괴기담이 나오더군요. 밤마다 낯선 여자가 동생 목을 조르더니 얼마지 않아 그 동생이 죽고, 가족들도 시달리다 못해 그 집을 버리고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차에 이웃에 사는 아줌마가 오더니 뭐하러 이런 집에 이사를 왔냐고 묻더군요.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사람이 다섯이나 죽어 나간 집이라는 거였습니다.

아줌마는 친절하게도 구석방을 가리키며, 저 방에서 이 집 할아버지가 죽고, 작년에는 이 집 주인 남자가 안방에서 죽었다는 설명을 해 주었지요. 약간 푼수기가 있는 분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또 이야기 속으로를 보고 나니 밤만 되면 으스스한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더군요.

화장실에 앉아 있노라면 시커먼 쪽창으로 누군가 들여다 보는 거 같아 부리나케 안방으로 뛰어나오곤 했지요. 그 다음부터 우리는 ‘이야기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지요.

처음 시골로 이사오는 분들에겐 시골의 밤이 여간 쓸쓸하고, 으스스한 게 아닐 겁니다. 노상 번쩍거리는 도심의 불빛과 가로등, 소음 속에서 지내던 도시 사람들에게 적막하고, 달빛만이 비치는 시골의 밤은 고즈넉하기만 할 것입니다만 그것도 몇 달 지나고나면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산골짜기 외딴 집에 살면서도 그런 으스스한 기분은 느끼지 못합니다. 깊은 산속에서 사방이 숲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 지내다 보니, 먼저 살던 농가는 번화한 다운타운 정도더군요.

무엇이든 정을 붙이고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법인가 봅니다. 다행히 아내는 그런 호젓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언젠가는 잠을 자다가 어렴풋이 깨어보니 곁에서 자던 아내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방마다 찾아 보았지만 아내는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였지요. 그런데 아내는 바깥 데크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더군요. 잠도 안 오는 데다 별이 너무 좋아 나왔다는 겁니다.

시골의 밤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밤이 문제가 아니라 시골 생활에 대한 애정이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정말로 시골에서 살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깊고 어두운 밤이라도 오히려 그 어둠이 포근한 이불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며, 적막함도 호젓함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정이 없다면,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도 소음으로 들려 밤마다 잠을 설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도 불안감을 던져 줄 것입니다. 그것은 담력의 문제가 아니라 애정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무 걱정을 할 게 없습니다. 그 사랑이 모든 걸 당신의 아늑한 보금자리로 만들어 줄 테니까요.

■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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