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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의 詩로 쓰는 전원풍경

가을시작

세상은 온통 원색의 강물소리로
아득히 흘러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소나기로 내리던 장마는
시간의 대청 밑에서
푸른곰팡이나 이끼
그런 새로운 이름들로 부화를 하고

폭염에 여물던 대지의 관절 마디는
더 이상 익을 곳도 여물 곳도 없어
툭툭
소리를 내며 살점들이 터지고 있었다

터져 속살 깊은 곳까지 알알이 맺혀
다음 한철 기쁘게 울어낼
애벌레같은 것들이 되기 위해
아니 천년 후
아니 그 후 화창한 어느 봄날에 깨어날 생명들의
무늬 선명한 화석이 되기 위해

토담가에서 양철지붕에서 뜨락에서 들판에서
원색의 강물소리로 흘러가는 9월의
볕 잘 드는 등떼기
바람 잘 드는 가랑이
아무 곳에나 자리를 깔고 누워
이른 잠을 청하고 있었다

■ 글·사진 김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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