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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정자나무에서 자는 닭

시골 생활을 하다 보니 유난히 동물들과 가까워집니다. 전에 아파트에서 기르던 개 이야기를 해 볼까요. 모란시장에 가서 애완견 강아지 한 마리를 샀었지요. 크기가 손바닥만한데 귀가 축 늘어지고 무슨 외국영화에서 본듯한 개입니다. 코카스패니얼이라는 건데 파는 이는 애완견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얌전하더니 커 가면서 장난이 어찌 심한지 침대 위로 날아다니고 밥그릇을 가지고 마라도나처럼 축구를 하는데 난감하더군요. 크기도 점점 자라서 아들만해졌습니다. 결국 그녀석이 침대 한가운데 고구마 만한 실례를 해 놓은 날, 나는 눈물을 머금고 시골집으로 녀석을 보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카스패니얼은 애완견이 아니라 새 잡는 사냥개라더군요. 그런 녀석을 집에서 길렀으니....
이런 실패 끝에 이번엔 정말 작은 개를 사려고 수소문 끝에 미니핀이라는 개를 샀습니다. 얼마나 작은지 주머니에 쏘옥 들어갑니다. 이 녀석이 한 살쯤 될 때 물골로 들어온 겁니다.

그리고 시골로 보냈던 코카스패니얼도 데려왔지요. 개 두 마리가 있으니 여간 든든한 게 아닙니다. 개들도 살판났지요. 녀석들을 데리고 자전거 타고 산책을 하니 제법 전원 기분이 납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해 장날 오리 세 마리와 오골계 두 마리를 샀지요. 얼마지 않아 오리 생각을 잊고 그만 개들을 풀어놓았지요. 불과 10초만에 오리 한 마리가 코카스패니얼 입에 물려 있더군요. 소리를 치니 오리를 물고 달아나는데 쫓아가 빼앗았을 땐 이미 오리는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리 한 마리가 돼지 한 마리보다 더 먹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얼마나 먹는지 지금 오리 한 마리는 거위로 착각할 지경입니다. 잘 걷지도 못해요. 그러다가 얼마전 TV를 보는데, 정말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던 닭이 보입니다. 토종닭이랍니다.
아, 눈이 확 뜨이더군요.

나는 그걸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그곳이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덕소의 ‘고센농장’ 닭이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거길 가보니, 온통 시골닭들 입니다. 병아리를 길러 보려고 했더니 병아리는 다음 부화 때에 오라는 겁니다.

실망해서 돌아오던 길에 어느 농장 앞에 ‘순종 토종닭 팝니다’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거기는 규모가 좀 작았는데, 아직 어린 중병아리 정도 됩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옛날에 정자나무 위에 올라가 자던 닭입니다. 처음 며칠은 놓치면 그냥 산으로 날아갑니다”
몇 번이고 주의를 받고, 라면상자에 세 마리를 담아 왔습니다. 그리고 닭장에 넣는 순간, 세 마리가 비호같이 날아갑니다. 아, 나는 공연히 아이와 마누라만 핀잔을 주고 재빨리 낚시용 뜰채로 두 마리를 생포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눈앞에서 무려 삼십미터를 날아서 깨밭 속으로 숨었습니다.

날이 저물 때까지 찾았지만 어디로 기어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날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이 닭이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이틀이 지난 뒤 꼬리도 보이지 않던 닭이 나타났다고 마누라가 직장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난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닭장 옆에 어정거리는 닭을 보고 뜰채로 재빨리 생포했습니다. 닭의 눈치론 배가 고파 일부러 내게 잡혀 주는 눈치였습니다. 그날 우리 식구들은 감격스러워 덤불에 온통 긁힌 상처도 아랑곳 않고 그저 연신 웃기만 했습니다.

다음날, 망을 사다가 닭 놀이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키 높이로 열심히 망을 치는데, 토종닭이 비웃기라도 하듯 훌쩍 대추나무 위로 날아오릅니다. 나는 급히 철물점으로 달려가 망을 더 사다가 두 배로 높였습니다. 그래도 날아오릅니다. 이번엔 아예 지붕까지 덮었습니다. 닭들은 이제 날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한달이면 낳는다는 알이 통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누라가 솔 덤불 아래 수북히 쌓인 달걀을 찾아 왔습니다. 무려 열 다섯 개입니다. 그걸 열심히 품고 있는데, 몽땅 뺏어다 부쳐먹고 삶아 먹고 나니 화가 난 듯 알을 낳지 않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알을 품을 때는 빼앗으면 안된답니다. 그래서 요새는 몇 개씩은 남겨 놓습니다.
오리는 그저 먹기만 하고 알은 낳지 않습니다. 분명 오리 장사가 암놈이라고 뒤집어서 나체로 중요한 부분까지 보여 주었는데. 이거 혹시 수놈이 아닐까 의심은 했지만 전문가인 오리 장사가 큰소리 탕탕 친 기억이 나서 알 낳을 때만 기다렸지요.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기이한 현상을 보았습니다. 오리 두 녀석이 암탉을 구석으로 몰고 가더니, 한 녀석은 닭 목을 물고, 한 녀석은 폭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제야 나는 녀석들이 왜 알을 안 낳는지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오리발이란 게 오리장사들이 잘 내미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엔 유난히 짐승이 많습니다. 개 두 마리 닭 여섯 마리 오리 두 마리
이밖에도 저절로 기어다니는 녀석들이 많지요

어느날, 신발을 신으려다 기겁을 했지요. 글세, 손바닥만한 두꺼비가 구두 속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녀석은 낮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녁이면 어슬렁거리며 방문 댓돌 아래 대령합니다. 거기서 밤새도록 무얼 하는지 그저 참외 잎사귀(아들이 마루에서 먹고 뱉은 참외 씨가 자랐어요)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파리 잡아먹나 봅니다.

그리고 담벼락에 붙어 있는 손톱 만한 청개구리는 어디로 들어오는지, 방안 설거지 대에도 있습니다. 그밖에, 어둠 속에 별이 내려앉은 듯 가물거리는 반딧불이, 메뚜기, 매미, 하늘소(얼마 전에는 정말 손가락 만한 장수하늘소가 날아왔는데, 천연기념물이란 걸 알고 날려보냈어요) 그리고 우리집 개가 생포한 두더지까지.
이따금 개 밥 빼앗아 먹으러 찾아오는 고양이까지 그야말로 동물농장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쥐는 한 마리도 못 보았습니다. 그 흔한 집쥐는 커녕 들쥐 한 마리 못 보았어요. 신기하지요. 쥐가 왜 없는지, 혹시 이유를 아시는 분 알려 주세요.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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