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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 해를 마무리하였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설계하고 또한 집을 지으면서 '끝날 때 일들이 처음의 그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는 것을 항상 느꼈다.
훌륭한 골퍼(Golfer)가 되기 위해서는 아주 간단한 두 가지만 지키면 된다고 한다. 헤드-업(Head Up)을 하지 않고 공을 끝까지 쳐다보는 것과 스윙을 할 때는 70∼80퍼센트의 힘만 들이되 공을 칠 생각보다는 하나의 정석 같은 아크(Arc : 스윙에서 클럽 헤드가 휘둘러지는 궤도)를 그리라는 것 정도다. 주말 골퍼가 이 정도만 철저하게 지켜도 보기-플레이(Bogey Play : 규정 타수보다 1타 많이 치는 것)를 유지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라고 한다.

서점에 가면 《종자돈 500만 원으로 10억 만들기》, 《땅! 이것만 알면 당신도 재벌이 된다》는 제목의 책들이 싸늘한 겨울 얇은 주머니에 푹 쑤셔 넣어 둔 쌈짓돈을 꺼내게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비법》, 《당신의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한 필승 해법》 등등 우리 인생사에서 어려운 문제들을 너무 쉽게, 눈동자가 확 돌아가도록 해결해 줄 해법서가 너무나 많다. 그 책들을 읽으면 마음에는 새로운 힘이 솟을 것만 같다. 그리나 정작 10여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다시 우리 몸이 익숙해져 있는 기존의 생활 습관과 인지적 관습으로 되돌아온다.

나도 집을 설계하고 지으면서 처음의 마음이 마지막까지 잘 제어되질 않고, 또 그로 인하여 건축주와 갈등이 생겨 마침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더 많은 고통과 시간 그리고 때로는 돈을 들여야 했던 일들을 많이 겪었다. 다시 생각을 해보면 골프나, 재산 불리기나, 화목한 가정 만들기는 나 자신의 명철한 판단과 추진력 그리고 미래를 향한 예측 능력이 있다면 거기에다 몇 퍼센트의 운까지 따른다면 쉽게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축을 할 때 생각처럼 자신의 의지나 의도처럼 되질 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대체로 이러하다.

건축설계를 시작할 때는 설계자인 건축사와 건축주가 만나서 서로 기대와 흥분으로 미래를 디자인해 나가는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기에 대체로 진행에 무리가 없다. 이 때에 건축주와 설계자의 교감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이지적(理智的) 동정심까지 따라 준다면 진행은 더욱 유리해진다. 그러나 완성한 설계를 갖고 막상 시공 단계에 들어섰을 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과 동정심이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건축공사 전반에 대하여 내 의지대로 움직여 그 집을 건축주에게 제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나는 망치로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줄 모르고, 톱으로 나무토막 하나 제대로 각을 맞추어 재단하거나 자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이 나를 대신하여 현장에 투입되고, 또 그들에 의하여 나의 디자인은 완성되고, 때로는 평가의 지침으로 자리 매김을 하여 그들이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다른 고객을 소개받아서 생활의 끈을 계속 이어 나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잘못된 일을 만들어 나의 목을 옥죄어 오는 경우를 당할 때가 많았다.

몇 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나는 그것이 건축임을 알았다. 한편으로 건축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설계를 함에 있어서 하나의 선을 그을 때는 서해안에 해질녘 지평선을 담아야 하고, 멀리 고기잡이 보낸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의 깊게 패인 주름의 아픔도 담아야 한다. 내가 건축을 공부할 때는 적어도 그렇게 배웠다.
돈을 받아 설계를 하는 지금, 건축주의 곱게 내린 바지의 다림선 같은 세련된 맛과 전원으로 향하는 노신사의 인생의 자랑거리까지 담아야 한다. 그것이 허세든 그 건축주의 삶의 아름다움이든 모두를 반영해야 한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전원주택을 시작할 때, 내 머리는 거의 빈깡통처럼 비어 있었다. 그래서 채워 넣기 위해 무지 바쁘게 움직였고, 집이라는 물체로 이 땅에 많은 집을 그리고 지어 왔다. 그렇게 채워 넣은 얄팍한 지식을 마감 날짜에 임박하여 토해 내어 작년 한 해 동안 원고를 내 보냈다. 아까운 지면과 독자들의 시간만 뺏어 먹은 것 같은 죄스러움도 적지 않게 느끼면서 이렇게 2006년 원고를 시작하게 되었다.

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실 마다할 일이 아니지만, 독자들께 전달할 좋은 이야기들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건축주나 우리 쪽에서 업을 하는 사람들 상호간에 그간 금기시 하여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비밀-그러나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사소한 이야기-이나, 현장에서 또 고객 컨설팅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풀어 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필자에게 지면을 열어 준 독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사연들을 전하고자 한다.

올해도 건강과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면서…田


최길찬<신영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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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글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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