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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에는 종류가 있다. 신제품 중에는 기존 모델을 업그레이드한 게 많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주택의 경우는 반대다. 맨땅에 토목공사를 하고 건물을 세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주택 대부분은 새롭게 지어진다. 혹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건물들은 뼈대를 유지한 채 리모델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재가 낡았다면 어렵다. 안전에도 문제가 따르기에 건축주도 꺼려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동오리에 자리한 한옥에서는 과거를 머금은 새로움이 묻어 난다. 약 70년 된 한옥의 뼈대를 그대로 살려서, 현대에 사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주말주택으로 거듭났다. 과거의 향기를 안고 현대를 살아가는 한옥 속으로 들어가 보자.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동오리

·대 지 면 적 : 230평

·건 축 면 적 : 30평

·건 축 형 태 : 목구조 항토집

·외벽마감재 : 흙벽돌 및 기와 쌓기

·내벽마감재 : 기와 쌓기 및 석고마감, 도배

·단 열 재 : 스티로폼

·천 장 재 : 석고 및 나무

·바 닥 재 : 마루 및 장판

·창 호 재 : 이중 목창

·난 방 형 태 : 보일러 및 벽난로

·식 수 공 급 : 지하수

·시 공 기 간 : 2005년 3월 ~ 6월

·건 축 비 용 : 1억

설계·시공·조경 : 예록 2인의 건축 031-771-7581
www.y2a.co.kr



곱게 차려 입은 한복에 하이힐이 어울리지 않듯이, 자칫 한옥에 걸맞지 않는 현대식 자재를 사용하면 전통미를 잃기 쉽다. 그러한 면에서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동오리에 자리한 한옥은 한마디로 ‘조화로움이 묻어 있는 집’이다.

오늘날 한옥 건축은 자재 선택에 제한을 받는다. 한옥을 짓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기에, 자연 전통 건축 자재의 종류나 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막상 한옥을 짓고자 해도 전통 자재 선택의 폭이 좁다. 이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 한옥은 구조재며 마감재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조화롭다. 특히 기와 조각을 사용한 인테리어에서는 여느 한옥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새로움이 묻어 난다.



이 한옥은 ‘70년의 비밀’을 담고 있다는 건축주.



“이 집은 약 70년 된 한옥의 뼈대(보와 서까래)를 그대로 살려서 지었죠. 세월의 때가 묻어 검은빛이 나는 나무 기둥을 일일이 깎고 다듬었으며, 섞어서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부분에는 새 나무를 덧댔죠. 한편 대부분의 옛집처럼 여러 개의 기둥들이 적잖은 면적을 잡아먹어서 넓은 공간이 필요한 거실과 안방에는 그 일부를 없앴죠. 그리고 외벽에는 한옥에 어울리는 황토벽돌을 두르고, 기와 조각을 사용해 인테리어를 가미했죠.”



여느 한옥처럼 이 한옥도 천장고가 낮기에, 여기에 맞추어 정원을 두르고 있는 담도 낮게 설계했다. 물론 정원의 수목 배치 역시 집을 가리지 않게 했다. 건축주는 한옥과 정원이 조화를 이루도록 건축에서부터 조경까지 한 업체(예록 2인의 건축 : 건축가 이상길)에 맡겼다. 인사동에서나 봄직한 소품들을 집 안 곳곳에 비치해 옛 정취가 물씬한 데다, 집 앞 소나무에서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 자연과의 조화로움은 극치에 이른다.



추억이 서린 현대 감각의 한옥



무릎 높이쯤 되는 낮은 대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외벽에 걸린 액자다. 여기에는 현대 한옥으로 거듭나기 전의 집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옥도 인간처럼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집과 액자 속의 집을 번갈아 보면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하다.


유리와 원목의 짜임새가 돋보이는 현관문을 지나면 구들 난방을 겸한 거실이 나온다. 거실 전면에는 전원 풍경을 충분히 감상하게끔 창을 크게 냈다. 전면창으로 바라보이는 것은 잘 가꾼 정원과 전원 풍경만이 아니다. 한옥의 정취를 자아내는 처마와 서까래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거실 내벽의 아랫부분은 외부와 마찬가지로 기와 조각을 이용해 잔잔한 물결이 이는 모양으로 꾸몄다.


주방과 이어지는 통로 기둥에는 기와를 사용해 공간감과 인테리어 효과를 주었다. 거실 안쪽에는 욕실이 자리하는데 칸막이로 거실과 공간을 구분했다. 욕실 천장에 천창을 설치해 채광뿐만 아니라 습기 제거 효과도 높였다.


주말주택으로 규모가 크지 않은 까닭에 주방도 그리 넓지 않은 편인데, 필요한 주방 가구와 용품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했다. 주방에서는 뒷마당을 잇는 문을 통해 덱으로 나간다. 덱 위에는 온 가족이 단란하게 식사와 담소를 나누도록 야외 테이블을 놓았다.


두 사람이 지나기에 충분한 통로는 주방과 서재, 안방을 잇는다. 이 통로는 긴 창을 설치해 햇빛이 잘 들고 답답하지 않다. 책상과 책장을 비치한 서재는 한두 사람이 사용하면 적당한 크기다. 서재 창문으로는 뒷마당과 이어지는 덱이 보이고, 특히 덱의 바닥을 뚫어 심은 대나무가 눈길을 끈다. 왠지 서재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다.


안방은 다른 실보다 비교적 넓게 뺐다. 이렇게 안방을 넓게 내려고 옛집을 이루던 기둥 일부를 없앴는데, 그 과정에서 구조적 문제를 보완하려고 새 나무를 덧대기도 했다. 안방 한쪽 면에는 옷과 이불을 수납하도록 여닫이 형태의 벽장을 드렸다. 거실처럼 안방에도 커다란 창을 내 외부 조망이 가능하며, 창 바로 앞에는 부부가 앉아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2인용 탁자를 놓았다.


“한옥의 단점인 단열에 신경을 섰기에 내부가 아늑한 데다, 구옥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찾아볼 수 없지요. 정원에 있던 우물을 그대로 살렸고, 값비싼 조경수보다는 집과 어울리는 수목들을 심어 조화롭게 꾸몄죠.”시공을 담당한 이상길 대표의 말이다.



구옥(舊屋), 리모델링 결정 쉽지 않아



이 한옥은 70년 된 구옥의 골조를 그대로 살린 탓인지, 신축 한옥과 달리 뭔가 특별한 매력이 느껴진다. 서까래와 처마에는 선조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집 내부에 드러난 ‘보’만 보더라도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구조상 천장이 낮아지는 부분에 약간 휘어진 나무를 사용해 높이를 조절한 선조들의 재치를 엿보면서, 한편으론 ‘이런 나무를 어떻게 구했을까’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옛 한옥에는 자연을 벗삼은 선조들의 지혜가 곳곳에 녹아 있다.


건축주는 처음 이 낡은 한옥을 본 순간 고민이 많았다고.


“약 70년 된 집이었어요. 이 마을은 신씨 집성촌인데, 그 종갓집이 바로 이 곳이죠. 종손이 떠난 후 2년쯤 비었다지만, 처음 이 집을 보고는 사람이 살 집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죠.”


그러한 불안감은 ‘예록 2인의 건축’ 이상길 대표를 만나, 그가 앞서 리모델링을 한 한옥들을 둘러보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건축주는 이 대표와의 설계 협의 과정에서 창을 가급적 많이 내 실내를 밝게 하고, 친환경 건강 자재를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주말주택으로 사용할 주택인데다 가족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옛것을 살리면 덤으로 오는 것들



건축주는 옛 한옥을 이용하다 보면 덤으로 누리는 혜택이 있다고 말한다. 한옥을 신축할 때 드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할 뿐 아니라, 옛집들 대부분이 풍수를 감안해 지었는데 살다 보면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고.


“낡은 한옥을 리모델링할 때 가장 좋은 점은 터라고 봅니다. 선조들이 아무렇게나 집터를 쓰지 않았잖아요. 바람의 흐름이나 조망 등 살다 보면, 왜 이 곳이 좋은 집터인지를 저절로 알게 되더군요.”


또한 건축주는 사람이 살던 곳이다 보니 신축에 따르는 여러 가지 제약이 없어 좋고, 주민들도 흉물스럽게 변하던 집에 생명력이 넘친다며 좋아한다. 처음에는 ‘차라리 새 집을 짓는 게 낫지 않겠냐’던 주민들이 리모델링 막바지에는 이르자 집을 둘러보며 놀라워했다. 한 할머니는 약 70년 전 이 집을 지을 때 마을 장정들이 인근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것을 봤는데, 그 집이 또 새롭게 태어났다며 놀라워했다. 건축주 역시 그렇게 생생했던 기억을 조금이나마 되살린 것 같아 가슴 뿌듯해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편치 않는 부분도 있다고.


“리모델링을 잘 했다지만, 한편으로는 전통 한옥의 품위를 손상한 게 아닌가 걱정스러워요.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옛 정취를 다 살리지는 못했으니까요. 철거하면서 버려야만 했던 문짝이나 대청 등은 정말 아쉽죠. 하지만 줄곧 방치돼 쇠락하기보다는 사람이 꾸준히 살도록 한 게 더 낫지 않나 싶어요.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은 오래 못 가니까요.”



자연을 머금은 주말주택에서 여유를


소박함이 묻어 나는 한옥. 건축주 가족은 주말을 이용해 이 곳에서 정원을 가꾸고 등산도 하면서 삶의 여유를 즐긴다. 그러한 가운데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하면서 자연을 거스르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이곳에서는 취미 활동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건축주의 경우 색소폰을 배우고 있는데 도시에서와 달리 맘껏 연습할 수 있어서 좋다고. 오래 전부터 해온 서예도 답답한 도시에서보다 잘 써진다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한 획 한 획 긋기 때문이다.


집에 이름도 지었다. 고민 고민하다 자연을 머금은 집이라는 뜻으로 당호를 ‘함연당(含然堂)’으로 정했다. 건축주는 옛 한옥 사진이 걸린 외벽 옆에다 현재 모습의 한옥 사진을 걸 계획이다. 70년의 명맥을 잇는 한옥. 이 집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지 사뭇 궁금해진다.田





김항룡 기자 / 사진 최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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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양평 30평 단층 황토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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