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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와 복분자로 유명한 전북 고창군 아산면에 자리한 38평 경량 목조주택. 한적한 농촌의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은 이 주택은 박공지붕을 삼면으로 안정감 있게 펼쳐 놓았다. 건축주 오상열 씨가 건축에 앞서 정원부터 가꿨기에, 신축한 집임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철근콘크리트 지하 저장고 일부를 지상으로 뽑아 목공사를 하다 보니 단층임에도 불구하고 복층처럼 보인다. 평면은 모자 간이나 부부 간에 정을 돈독히 하는 공간 구조이다. 현관에서 복도를 통해 각 실로 이어지는 동선(動線)도 짜임새가 있다. 오상열 씨가 40여 년만에 귀향하여 부르는 귀거래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건축정보

·위 치 : 전북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부 지 면 적 : 1500평

·대 지 면 적 : 200평

·연 면 적 : 38평(지하 저장고, 다락방 별도)

·건 축 형 태 : 경량 목조주택(내·외벽 2″×6″)

·외벽마감재 : 시멘트 사이딩

·내벽마감재 : 실크벽지

·단 열 재 : 인슐레이션

·천 장 재 : 실크벽지

·지 붕 재 : 아스팔트 이중그림자 슁글

·바 닥 재 : 타일, 강화마루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난 방 형 태 : 전기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시 공 기 간 : 2004년 9월∼12월

·건 축 비 용 : 평당 300만 원

설계·시공 : 모던하우징 063-564-8975 www.emodernhousing.com




이즈음 전국 어디나 자연 풍광을 어지간히 갖춘 곳은 상춘객(賞春客)들로 붐빈다. 전북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 자락의 선운사로 향하는 길도 예외는 아니다. 간간이 이는 봄바람에 나부끼는 꽃잎들이 이들을 반기는 듯하다. 화사한 꽃이 지고 나면 산야(山野)는 온통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신록으로 물들 것이다. 선운사로 접어들기 전인 반암리에 이르자, 십여 채의 농가주택이 나지막한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가 싶더니 파스텔 톤의 목조주택에서 멈추어 선다. 포도주색 아스팔트 슁글을 얹은 박공형 지붕을 삼면으로 안정감 있게 펼쳐 놓은 이 주택은 오상열(67세)·박선영(59세) 부부와 어머니 김계순(84세) 씨, 이렇게 세 식구의 보금자리다.


과거 길에 나선 선비의 목숨을 말이 울부짖어서 구했다 하여 일명 마명(馬鳴)이라 부르는 이곳은 오상열 씨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스물여섯에 서울로 상경했으니 40여 년만에 귀향한 셈이다. 그는 낯선 서울 땅에서 자영업으로 기반을 다졌는데, 오십 줄을 바라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고.


“고향 생각… 그것은 뿌리에 대한 갈망이었지요. 이 터에서 조상 대대로 선산(先山)에 조상을 모시면서 살았지요. 지금도 여러 일가친척이 모여 사는데, 나는 5남매 중 장손임에도 도리를 못하는 것 같아 객지 생활에 적잖은 부담을 느꼈지요. 하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아 틈나는 대로 이곳을 찾아 향수병을 달랬는데, 육십을 훨씬 넘어서야 고향을 찾은 셈이지요. 조상을 모시고, 전원생활을 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나 손주들에게는 뿌리를 찾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요.”


전원주택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도시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유년기와 청년기를 시골에서 보낸 경우가 많기에 회귀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데다 갈수록 도시의 생활 환경이 삭막해짐에 따라 향수가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오상열 씨처럼 고향에다 전원주택을 마련한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오상열 씨는 귀향을 염두에 두고 틈나는 대로 고향을 찾아 정원에 나무부터 심었다. 그런 그에게서 “집터를 닦으려면 주거지에 먼저 나무를 심어라”고 한 선현들의 지혜를 엿보았다. 《금화경독기》에 전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서광계(명나라 과학자)에게 “나무를 심으면 10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나이가 들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서광계는 그 말에 “빨리 나무를 심으시오.” 라고 답했다. 집을 짓고 텃밭을 꾸미고 하는 여러 가지 일은 여러 해에 걸쳐 차례로 마칠 수 있다. 하지만 나무를 심어 과일을 따고, 그늘을 즐기는 일은 10∼20년을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상열 씨가 일찍이 심어 놓은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일까? 신축한 집임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주택은 마을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양지 바른 들녘에 자리한다. 높낮이가 없는 평지에 자리잡은 집이기에 언뜻 밋밋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부지 1500평 가운데 대지 200평을 빼고는 모두 크고 작은 나무들을 심어 놓았기에 그러한 느낌이 안 든다.



집도 크면 짐이다


오상열 씨는 고향에 집을 지었기에 부지 마련에 따르는 번거로움을 덜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공업체 선정도 수월했다. 정원도 어지간히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집을 짓겠다고 생각할 즈음 우연찮게 시공업체인 모던하우징의 김영은 사장을 만난 것이다.


“고향을 찾아 소싯적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모던하우징의 김 사장을 만났지요. 고향 사람이기도 했지만, 젊은 사람이 자신의 일에 패기와 자긍심을 가진 모습이 보기에 좋았지요. 인근에 지은 두세 채의 목조주택을 둘러보니 외관이 아름답고 꼼꼼하게 지었더군요. 이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다 싶어 맡겼지요.”


모던하우징의 김 사장을 만나기 전부터 오상열 씨는 이미 건축 구조를 목조주택으로 정해 놓은 상태였다. 목조주택이 건강에 좋은 데다가 아름답고 편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공들여 가꿔 놓은 정원하고 목조주택만큼 잘 어울리는 구조도 없었다고.


“전원주택은 주변 환경과 조경이 받쳐 주어야 외관이 살아나지요. 또한 터 자체가 평지다 보니 필요로 하는 각각의 공간을 확보하면서 입면에 변화를 꾀해야 했지요. 그 모두를 충족시켜 주는 건축 구조는 설계나 시공이 자유로운 목조주택만한 것이 없다 싶었지요.”


오상열 씨는 세 가족이 살기에는 40평 안팎이면 적당하다 싶었다. 너무 크면 노후에 편안하게 살고자 지은 집을 머리에 이고 사느라 정원 일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설계 협의 때에는 안방, 어머니방, 주방, 서재, 옷방, 화장실 2개, 다락방을 기본으로 한 밑그림을 제시했다.


“주택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살면서 구조가 맘에 안 든다고 다시 지을 순 없지요. 나만큼 가족의 삶과 필요로 하는 살림살이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도 없고요. 그런 이유에서 우리 가족이 살 집은 내 손으로 짓겠다는 생각으로 밑그림을 숱하게 그렸지요. 그것을 모던하우징에다 제시했는데,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 지었지요.”


그렇게 해서 38평 단층 경량 목조주택(2″×6″)은 2004년 9월 7일 착공해서 그해 12월 중순 완공을 보았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시작한 공사를 겨울 전에 끝내기 위해 바짝 서둘러야 했다. 목조주택은 건식공법이라 석 달이면 족하다 싶겠지만, 이 주택은 평수에 포함되지 않는 1층 건축면적 넓이의 철근콘크리트 지하 저장고에다 5평의 다락방을 갖췄기에 공사가 만만치 않았다. 지하 저장고에서는 고창에서 유명한 복분자 술이 한 가득 익어가고 있다. 5평 다락방은 평상시에는 박선영 씨의 작업실 겸 방문객을 위한 공간으로 쓰인다.



정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공간


이 주택은 지하 저장고 일부를 지상으로 뽑아 목공사를 하다 보니 단층임에도 불구하고 복층처럼 보인다. 상부로 노출된 철근콘트리트 구조물은 라틱스로 막아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담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표면으로부터 주거 공간이 띄어져 있어 자연스럽게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다.


평면은 각 실의 쓰임새에 맞추어 크게 세 공간으로 배치했다. 좌측에는 서재와 욕실·어머니방을, 우측에는 욕실이 딸린 부부 침실과 옷방을, 중간에는 거실과 나란히 한 식당과 창고·다용도실을 배치했다. 모자 간이나 부부 간에 정을 돈독히 하는 공간 구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집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현관에서 복도를 통해 각 실로 이어지는 동선(動線)은 짜임새가 있다. 바닥과 벽면을 노란색 계열의 아트타일과 대리석으로 마감하고, 벽면에 흰색 붙박이장을 설치한 현관은 1.5평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고 화사하여 한결 넓게 느껴진다. 현관 미닫이문을 열면 복도와 마주하는데, 자칫 답답할지도 모를 분위기를 덜고자 앤틱 가구와 동양화, 수석, 분재 등의 소품으로 정갈하게 꾸며 놓았다.


안방(5.8평)은 강화마루가 깔린 복도를 통해 공용공간인 거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들어가도록 했다. 아이보리 계열의 벽지로 내벽을 마감하고, 전면과 측면에 창을 크게 내 햇살은 물론 정원과 주변 경관을 한껏 끌어들였다. 안방과 마주하는 곳에는 별도의 옷방(2.6평)을 배치했다.


거실(3.9평)과 식당(4.2평)은 일직선으로 배치했는데 천장 구조를 달리해 공간을 구분했다. 큰 전면창과 여러 개의 고창을 낸 거실은 천장을 높이고 다각형으로 변화를 주어 개방감을 강조했다. 반면 식당은 천장을 반자로 처리하고, 그 위에 다락방(5평)을 앉혀 분위기가 안정적이다. 식당에서는 우측의 다용도실을 통해 후정으로 나갈 수 있다. 다락방은 다각형인 거실 천장의 연장선상에서 전면과 후면에 창을 내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좌측에는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외부로 향한 벽면마다 창을 낸 서재와 어머니방이 마주한다. 어머니방에는 외부 출입에 따른 동선을 줄이고자, 현관을 거치지 않고 외부로 나가도록 문을 냈다. 보다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향수를 달래려고 했음일까? 서재에는 산수자연(山水自然)을 응축한 수석들로 가득하다.


확 트인 공간에서 즐겁게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라는 오상열 씨. 그리고 답답한 아파트에서 갇혀 살다가 공기 좋고 조용한 전원에 묻혀 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는 박선영 씨. 이들 부부가 즐거이 부르는 귀거래사(歸去來辭)를 통해, 자연을 즐기며 도의(道義)를 기뻐하고 심성(心性)을 길러서 성정(性情)을 바르게 했던 선인들의 자연관을 엿보았다. 자연 속에서 얻는 즐거움, 그것이야 말로 참된 즐거움이 아닐까?田




글·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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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의 귀향 그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 고창 38평 단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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