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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를 처음 만나서 주택 설계나 공사 의뢰를 받을 때마다 듣는 몇 가지 공통된 이야기가 있다.

"이 집은 설계를 맡은 건축사님의 작품이라 생각하고, 멋지게 좀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우리 집을 모델하우스라고 생각하고 잘 지어 주세요. 강원도 설악산 쪽에, 또 충청도 서해안 쪽에 땅을 가진 친구들을 많이 아는데, 다들 내년쯤 집 짓을 계획을 갖고 있으니 … 많이 소개해 드릴게요. "

물론 '주변에 건축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처남도 지금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 현장소장으로 있어요. 제가 집을 짓겠다고 하자, 목수를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보낸 목수를 필두로 하여 업자를 데리고 직접 공사를 하면, 자신의 얼굴을 봐서라도 아주 싸게 좋은 품질로 집을 짓을 수 있다'고 하면서요. 이것을 뿌리치고 귀사에 건축을 의뢰한 거예요."

그리고 습관처럼 이런 말도 한다.

"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니 정말로 알아서 잘해 주세요. 우리는 주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말이죠."

그러나 막상 설계나 건축공사에 들어가면 건축주는 주변의 소위 건축 전문가(그 중에는 토목과 교수, 조적공, 방수공… 심지어 동네 철물점 사장까지)의 의견이나, 때론 집을 지은 바 있는 경험자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것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의뢰한 건축사나 시공사에다 이렇게 전한다.

"저∼ 말이지요. 몰라서 그러는데 주변에 목수 일을 30년간 했고, 전원주택도 시공한 김 목수라는 분에게 우리 집 도면을 보여 주며 검토를 부탁 드렸는데요. 그 분이 '아무래도 이 집의 평면 구성은 내부가 너무 오밀조밀하고, 창들도 크기가 좀 작다'고 하더군요."

"어제 교회에 갔더니 교우(敎友)인 아주 유명한 토목과 교수님이, '건축은 건축전문가에게 맡기면 되지만, 기초는 튼튼하게 하라'고 하던데요. 그리고 '강원도 땅은 겨울에 얼었다가 봄에 녹으면서 지반이 들어올려졌다가 내려앉으니, 기초는 반드시 '동결심도' 이하로 약 1미터 이상 깊게 묻어서 시공해야 한다'고도 했고요. 사실 우리 생각에도 기초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 봐요."

사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건축주의 집에 사는 연세 많은 할머니부터 가끔은 파출부 아주머니까지 건축공사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런 경우를 많이 겪으면서, 그 이유를 '건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산업 인구 비율상 많은 사람이 목수나 미장은 아니더라도, 철물점이나 타일 또는 건축 자재 판매·인테리어·도배 등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 중 많은 사람이 소주 한 잔 걸치면 '노가다'는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자신의 업을 그냥 건축에 포함시킨다. 실제는 집 짓는 곳에서 벽돌 일을 했어도 '평창동 ○○ 회장님 댁 공사를 내가 했지'하면서 영웅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들의 주장은 틀림이 없으며, 자신의 업종에서 영업력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실 필자도 그런 범주의 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주택을 지으려는 건축주인 경우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좀 더 깊이 하는 것이 좋다.


주택, 전시장에 진열된 작품인가

건축주는 주택을 작품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주택의 기능 가운데 하나는, 그 안에다 건축주를 포함해 그 가족의 삶을 행복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보다는 작품적 성격만 강할 경우, 거대하고 강한 기에 눌려 삶 자체가 추울 뿐만 아니라 남편이 출근한 빈자리에 써∼얼렁한 기운만 감돌지 않을까? 그런 미술품 같은 집이 가져다 주는 값어치는 얼마일까?

건축설계를 오랫동안 했더라도 막상 주택 설계 의뢰를 받으면 답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가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택의 기능을 엮기 위한 노력이다. 때론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주택을 설계하고도, 정작 만들어진 주택의 모습은 노출 콘크리트에 많은 유리의 커튼-월을 사용한 갤러리 풍인 경우를 보아 왔다. 물론 그런 양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타입만이 건축가의 작품인 것처럼 건축가들끼리 자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이 그런 부류의 회원이 될 자격이 없음을 느끼곤 한다.

컴퓨터를 만들려면 반도체, LCD액정, 프로그램 등 수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LCD액정 전문가 혼자서 컴퓨터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이것을 그림에 비유해 보자.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도화지에 수많은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다.

여기에 비하면 주택 한 채도 제대로 지어 보지 못한, 주택공사의 일부분인 목조주택이나 스틸하우스 프레밍, 주택 전기 설비 공사, 벽돌 공사, 도배 공사, 특히 철근 콘크리트 공사 등의 업에 종사한 사람들 대부분이 '주택 전문가는 아니어도 주택 건축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정말 그런 경지에 올라선 것처럼 느끼는 일종의 마취 효과까지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집을 짓고자 하는 주변의 친구나 친척 등에게 자문 역을 자처하고 나서거나, 아예 계약까지 하고 착공에 들어간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주택 건축을 시작하면서 때로는 '정말 좋은 주택이다, 그냥 저냥 보아 넘길 만한 주택이다' 하면서 스스로를 주택 전문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정작 건축주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주택이 없기에 그것이 진짜 잘 지은 주택인지, 아니면 그럭저럭 보아 넘겨야 할 주택인지를 판단하기조차 모호하게 만든다.

누구나 주택 건축을 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
80세 할머니도 값싼 데다 도면을 맡기고, 자기 명의로 직영공사 형태를 취해 목수반장 한 명을 앞세워 시공해도 가능한 것이 주택 건축이다. 그렇게 평당 공사비 200만 원도 안 들여 지은 집을 허접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80세 할머니의 경제력이나 안목 그리고 여생 동안에 등 따습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80세 할머니에게는 손색이 없는 훌륭한 주택이다.


건축의 시작과 끝, 주택

전원주택이란 이름의 꽤 괜찮은 단독주택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주택 전문 건축사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은 생각보다 많다. 그것은 건축학도들이 "건축의 시작도 주택이지만, 건축의 최종 완성도 주택 작품에서 나온다." 라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것을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주택 건축과 관련 '스틸하우스 프레밍' 작업을 비롯해 각종 공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앞으로 주택 건축을 업으로 하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도면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바란다. 혹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목수 생활만 벌써 30년인데 도면을 읽고 이해할 능력을 키우라니?"

"건축사가 그려 놓은 도면을 보고 그대로 시공만 하면 되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건축공사에서 도면은 건축주나 설계자의 뜻을 명확히 전달하는, 기능적 측면에서는 '글'과 같은 것이다. 글을 더듬더듬 읽던 아이들이 초등학교 2, 3학년이 되면 대체로 무리 없이 빠른 속도로 읽는 능력이 생기는 것처럼, 목수생활 몇 년이면 도면을 정확히 읽어 내어 공사를 아주 멋지게 수행하는 것을 본다.

여기서 잠시 아이들이 읽는 교과서나 동화책과 건축 도면의 성격을 비교해 보자. 아이들의 책은 그 자체가 완성품이다. 그러나 주택 건축용 도면은 소위 전문가 중의 전문가인 설계자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완벽한 의사 전달 매체가 될 수는 없다. 즉 건축주의 예산을 완벽하게 반영한 최적의 주택, 또는 건축주의 의견과 설계자의 디자인 성을 반영하여 완벽한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판독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종종 주택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진 건축주와 합작으로 만든 모순 투성이 전달 매체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면, 초등학생이 고학년이 되어 글을 완벽하게 읽고 쓰는 능력을 구사한다고 해도 단테의 《신곡》 같은 난해한 글을 읽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1000세대 이상의 아파트 공사나 초고층 빌딩 공사 그리고 상가주택 공사에 있어 목수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도면 이해 능력과 경험만 많으면 아무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다. 그러한 건축 공사용 도면은 글을 읽는 능력만 되면 판독 가능하게 만들지, 어떤 경우도 단테의 《신곡》이나 함축된 언어의 미학인 '시'처럼 만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 읽어서 달리 해석 없이 공사를 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목수가 될 수밖에 없다. 괜히 아는 척해서 달리 해석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불행의 싹이 되기도 한다.


가시밭길에서 만난 주택 건축 전문가

그렇지만 주택은 어떠한가? 막상 설계 도면을 갖고 착공에 들어가 보자. 기초공사 때부터 건축주는 이순신 장군께서 긴 칼을 옆에 차고 망루를 내려다보며 왜군의 기를 감시하는 듯한 눈초리로 현장을 지휘하는 경우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이 창문 때문에 안방에 가구 하나 들여놓을 수가 없으니, 이쪽 창문을 없애고 저쪽 창문을 키워 주시오!"

외장재의 색깔은 물론 자재도 수시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가는 그저 이런 저런 색상의 견본품만 제시하고, 공사 시작 전 '전문가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기겠다던 건축주는 부지불식간에 전장을 장악하고, 심지어 군사들에게 각각 전투의 임무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들이 왜 생길까? 그 이유는 첫째 일반 건축물과 달리 주택은 규모는 작지만 설계 변경 없이 완성된 도면을 만들어 내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프로젝트이고, 둘째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만한 진정한 전문가가 별로 없다는 것 때문이다.

국내 설계 용역 시장의 환경상, 주택 전문 건축가가 되면 바로 밥 굶기에 딱 맞다. 그렇다 보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주택 설계는 가끔 취미 삼아, 건축주를 재물 삼아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고자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주택 전문가가 되려면 비록 종사하는 분야가 스틸 스터드를 짜는 프레이머거나 목수이거나를 막론하고 한국에서의 '주거학'이라는 거창한 용어는 붙이지 못하더라도, '주택 도면에 대한 이해'와 '대부분의 주택 도면은 미완성의 전달 매체'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공을 다해 놓고 건축주의 심경 변화에 의하여 뜯고, 재시공하고를 반복하는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주택 건축이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모두 주택 전문가는 아니다. 주택 전문가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가득한 가시밭 속을 걷는 것과 같다.

◆이윤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작품이라는 장인정신이 요구되는 반면, 많은 경험과 영속을 위해 이윤을 최대한 많이 남기거나 아껴 써야 하는 현실.
◆최고 전문가로서 컨설팅부터 진행을 해야 하지만, 정작 모든 결정을 고객에게 맡겨야 하는 일의 진행 방법.
◆건축주의 건강한 삶을 위해 가장 친환경적 자재를 엄선해야 하지만, 본드나 석유화학 제품 및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현실.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해 주택 시공을 의뢰 받아 공사를 할 경우에 '일반건설업 면허'가 없는 사람은 건축주/시공자 모두 형사 고발 대상임에도, 거의 90퍼센트 이상이 일반 개인 또는 무자격자가 건축주 직영의 형식을 빌어 공사를 시행할 수밖에 없는 법적 현실.
◆주택 전문 건축가가 되는 것은 건축에서 가장 어렵지만, 주변에 무수히 많은 주택전문 건축가.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필자도 주택 전문 건축사로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 그저 이런 냉탕과 온탕을 적절히 오갈 수 있다는 능력 정도만 가지고 있을 뿐임에도 말이다..田


최길찬<신영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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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건축!-그러나 누구나 건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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