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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일을 수없이 만난다. 스스로 어떤 일을 선택해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 부닥치기도 한다. 어찌 됐든 이 모두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연속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싶다.

전자처럼 자신이 어떤 일을 선택해 만나는 경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원주택에서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원주택을 짓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여러 가지 문제점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판단력과 순발력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갖는 것, 바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전문지를 읽고, 업체 광고를 보고, 전시회와 잘 지은 집들을 보면서 실제 살고 있는 건축주들의 체험담을 듣고… 등등 여기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 수집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다만 필자가 언젠가 본지에 언급했듯이 그 많은 정보가 때론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정보 분석력과 현실 적응력 등 많은 내공을 쌓아야만 무분별한 정보들로부터 알짜배기를 건질 수 있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내공을 쌓는데 작지만 도움이 되는 필자의 체험을 몇 가지 적어 보고자 한다. 필자도 전원주택을 설계·시공하면서 세끼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다. 완전히 건축주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구 썼다가는 고객이 떨어질 수 있는 위험(?)도 있다. 특히 동종 업계 많은 분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으므로 단어 선택에 신중했다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전원주택 시공 중 겪은 이야기

CASE 1 산재보험 이야기

건설 현장 종사자들의 안전 문제는 보험을 통해 보장을 받도록 해야 한다. 경기도 용인시 고기동의 한 주택을 준공한 후에 일어난 일이다. 건축주에게서 하자와 관계없이 손볼 일이 좀 있다며 용역 인부 한 명을 불러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런데 일을 맡긴 인부가 작업 중 실수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 입원한 그는 보상을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이후에 터졌다.

준공을 이미 마친 상태라 산재보험이 100퍼센트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보험 담당자의 말을 종합하면, 산재보험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준공 후 하자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보험료 지급액의 1/2을 우리(건축주·시공자)에게 징수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고 당사자는 본인의 휴업 일수와 치료비를 제한 그 금액이 200만 원을 넘으면 우리 측에서 200만 원만 내고, 후에 자기가 보상을 받은 금액 중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거의 불법적(?)인 제안을 해와 사태는 더욱 꼬였다. 결국 건축주와 필자가 함께 1/2을 지불하고 보험으로 처리해 일은 일단락을 지었다.

간단한 공사이겠거니 하는 방심이 사고를 부르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꼭 근로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건축주와 시공자 간의 신뢰, 원활한 사업 진행 등을 위해 산재보험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CASE 2 - 정화조 준공 필증

우리나라의 법이나 규정들 중 행정기관이나 국회에서 선심성 혹은 국민에게 이런 일을 위해 이러한 것을 만들었다고 하는 생색내기 식이 간혹 눈에 띈다. 그것도 모자라 이익 단체나 그 관련 업체에게 기술 자문을 받아야만 무엇을 해 준다는 식의 문구상 기가 막힌 모순투성이 규정들도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화조 준공 필증'과 '통신 필증'이다. 필자 같은 사람은 사실 이러한 것들이 공정거래에 맞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아주 합당한 모양이다.

정화조는 설계 후 건축허가를 넣을 때 정화조 관련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그런데 관련 업체에 문의하면 정화조 1개당 준공 필증 서류를 1부 밖에 제공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자사 제품을 사용해야 필증을 내 준다는 반 협박성 말을 듣곤 한다. 건축주 입장에서 보면 여러 회사의 제품을 비교 평가한 후 견적을 받아야 하지만 이와 같은 제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업체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또한 건물 평수가 약 45평 이상이면 허가 시 통신 설계 및 감리 능력을 가진 엔지니어링 업체의 도장이 들어간 설계도면을 첨부해야 한다. 또한 준공 시에는 이들을 통해 준공 확인을 받아야 건축물 준공이 나도록 되어 있다. 현실상 이들은 현장에 한 번도 가지 않고 그저 건축사사무소에서 만든 양식에 도장만 찍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렵게 받은 설계비의 일부를 떼어 주어야 한다.

각설하고, 정화조 시공 순서는 먼저 땅을 파서 콘크리트 박스를 만들고 여기에 정화조를 넣은 후 상부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공기를 주입하는 전기 에어 브로어(AIR BLOWER)를 설치하면 된다. 이때는 반드시 공정별로 사진을 촬영해 준공 시 행정 관청에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일화 한 토막. 우리 현장 소장이 사진 관리를 잘못해 시공 중 사진을 구할 수 없어 급한 김에 불법이지만 다른 현장의 사진을 첨부해 제출했다. 어느 날 행정 관청에서 연락이 왔다. 가서 보니 시공 중 사진에는 정화조 상부의 원형 뚜껑이 3개인데 준공 시 현장에는 왜 구멍이 2개 밖에 없냐고 묻는 것이다. 덧붙인 질문. 어떻게 정화조 넣는 사진이 준공 날짜보다 느릴 수가 있나?
아뿔싸! 그냥 들통나고 말았다. 망신 또 망신. 지중 매입 공종 시 꼭 사진을 철저히 보관하시라.

CASE 3 - 페인트 칠

하얗게 예쁘게 만들어 가는 펜션의 마지막 공정인 페인트 작업 시 생긴 일이다. 창틀 주위와 벽체 일부분에 방부 사이딩을 붙이고 나머지는 흰색 수성 페인트로 시멘트 사이딩을 마감하는 것으로 설계했다. 이때는 반드시 방부목에 오일스테인 작업을 먼저 끝내고 수성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약 5년 전쯤이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머지 시멘트 사이딩에 흰색 수성 페인트를 먼저 하얗게 칠해 놓은 며칠 후, 필자가 페인트 업자와 현장에 들어가 함께 오일스테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날 따라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다. 오일스테인은 일반적인 칠과는 달리 유분이 강한 기름과 같아서 잘못하면 줄줄 흘러내리거나 바람에 날리기 쉽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화근이었다. 며칠 후 다시 현장에 방문해 수성 페인트를 칠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서 현장 가는 길은 적어도 5시간은 족히 걸리는 강원도 깊은 산골. 건축주 보기도 창피하고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아, 이 마음! '마이 아파∼.'

CASE - 4 비바람 속의 O.S.B 2년 / 내후성 실험

그러니까 아마 1999년쯤일 게다. 아주 멋지게 생긴 젊은 분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건축 상담을 하러 온 적이 있다. 내용인즉 강원도 홍천에 홀로 되신 아버님을 위해 집을 지어 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설계를 시작하고 공사를 맡게 되었다. 스틸 스터드를 완료하고 O.S.B공사를 마칠 무렵 잘 나가던 아드님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공사 중단이라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2년 정도 지나서야 다시 연락이 왔다. 이제 건축비를 마련했으니 다시 시공해 달라고.

현장을 찾으니 O.S.B만 시공하고 2년간 타이벡도 씌워 놓지 않은 상태라, 비바람을 맞아 온 O.S.B는 희끄무레한 색으로 변하고 표면은 일어날 대로 일어나 있었다. 그러나 건축주는 현재 자금 여건상 어쩔 수 없으니 O.S.B를 뜯지 말고 그냥 해 달라고 요청했다. O.S.B 표면을 긁어 표면에 일어난 나뭇결을 떼어 보니 생각보다 쓸만했다. 지붕공사를 마친 것이 다행이었다. 세워진 상태였고 O.S.B 외부 면의 자체 방부처리 기능이 그나마 상태를 유지시켰던 것이다. 결국 요구대로 마무리했다.

건축주와의 질기고도 특이한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되지만 더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집을 해체했을 때 O.S.B는 어떤 상태까지 가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CASE - 5 지금도 반복되는 백호우 투입 일수

세상에 남는 것 없다며 엄살 부리지 않는 업자 없듯이 세상에 남기지 않고 공사하는 업자 또한 있을까?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건축공사 계약 시 시공업체에서 이것저것 서비스를 많이 하겠다며 공사를 따내는 일을 목격하곤 한다. 필자는 제 값을 받고 정직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서비스라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가끔 "왜 다른 사람들은 신발장도 그냥 해 주고 뭐도 그냥 해 준다는데 말만 꺼내면 돈을 더 내라고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솔직히 곤혹스럽다.
필자는 견적을 낼 때 백호우(포크레인)로 땅을 팔 때 1회, 현장 완료 후 1회 그리고 이것저것 필요해 1∼2회 정도를 더 잡아 계약서에 명기한다.

어느 집을 시공할 때 일이다. 그때도 건축주와 공사비로 꽤 오랫동안 밀고 당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서 공사비를 조금씩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백호우 사용 일수를 4일로 정한 것이다. 막상 공사를 하는 땅 부지는 250여 평이지만 그 일대의 꽤 많은 땅을 연접해 소유한 건축주는 백호우가 나오는 날은 여지없이 현장에 와서 기사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그냥 참았는데 꽤 심해지기 시작했다. 대지 옆의 개울도 청소하고 연접한 넓은 땅도 정리하고 그 결과 백호우가 2배 이상 투입됐다.
하루 38만 원 × 5일 = ???
결국 시공자는 추가로 사용한 돈에 대해 청구할 수밖에 없다. 누구? 결국 건축주 아닌가 말이다.

CASE 6 - 벽난로 손해보험과 SESCO

벽난로만큼은 정품 그것도 화재보험에 가입된 제품을 골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과거 통나무집에 설치한 벽난로 연도가 뜨거워지면서 벽지가 새카맣게 타 버린 적이 있다. 2중 연도를 사용하는 벽난로 천장 매입구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더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화재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벽난로를 설치할 때는 반드시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는지 확인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자.

지어진 지 5년여 된 통나무집에 얽힌 일화다. 나무의 뒤틀림 등으로 외부에 조그마한 바람구멍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턴가 처마 끝에서 말벌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 둘 말벌들이 자그마한 바람구멍을 타고 실내로 침투, 점점 그 수가 늘어만 갔다. 리모델링 시 1층은 석고보드를 대 말벌의 침입을 막아냈으나 다락 부분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SESCO'에 SOS 긴급 타전 "Help Us!"
※음식점으로 사용하다 당사에서 전원주택으로 리모델링을 한 사례임.

CASE 7 - 라∼라∼ 비데

날로 화장실에 대한 요구가 늘어남에 따라 설계에서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변기에 앉았을 때 우측에 벽이 있는 화장실 구조와 좌측에 화장실 벽이 있는 구조를 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측에 벽이 있는 화장실은 변기 바닥 드레인(X물 빠지는 구멍)의 위치를 우측 벽 내부에서 최소 45센티미터 이상(55㎝가 좋음) 띄워 만드는 것이 좋다.

한번은 무심코 약 40센티미터 떨어트려 드레인을 설치하고 말았다. 변기를 앉힐 때까지는 문제없었는데 그 위에 비데를 놓자 비데가 벽에 딱 붙어 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비데 구조는 오른손잡이를 고려해 우측에 모든 조작 스위치가 있다 보니 우측에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위생도기 판매업체에 전화를 해 좌측에 스위치가 있는 제품이 있는가 물어 보니 대답은 "NO!"

CASE 8 - 국가대표 목수님들

방과 거실 사이 미닫이(슬라이딩) 문이 4짝 들어가도록 설계했을 때의 일이다. 4짝을 사용하면 때로는 넓게 쓰고 공간 분리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당시 고가 오크(Oak) 재질의 전통 문살 형식을 주문 설치 완료 후 가서 보니 문제가 생겼다. 4짝의 문을 우측으로 밀면 반짝 정도가 닫히지 않고 좌측으로 밀면 문틀보다 문짝이 작아 문이 옆으로 이탈해 넘어질 지경이었다.

자로 검측해 보니 선 시공한 문틀이 우측보다 좌측이 1센티미터나 높게 만들어져 있었다. 문짝 제조사에 전화를 걸었다. 인건비를 아끼느라 연변에서 제일 가는 문짝 기술자들의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라며 죄송하니 다시 만들어다 주겠단다. 제조사가 아니라 시공 측이 문제였다. 우리나라 국가대표급(?) 목수님들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공을 끝내고 또 다른 데에 가서 기술을 발휘하시느라 A/S 올 겨를이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럼 이것을 뜯고 다시 시공하는 비용은 누가 지급하고 이로 인해 얼굴 찌그러진 건축주 설득은 누가 한단 말인고?

어느 날 필자는 꽤 친한 몇 명과 함께 강화도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 들고 배에 올라 섬으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바쁜 일정에, 그래도 업무 차 가는 길이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갑자기 허리에 진동이 느껴졌다. 현장에서 걸려온 전화다.

막 공사가 끝난 집인데 상부 층에서 바닥으로 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는 내용이었다. 아, 이거 아직 섬으로 들어가고 있는 주말 오후인데 언제 다시 배를 타고 나가서 현장까지 가야 할지. 정말 뒤는 설사요, 앞은 꽉 찬 오줌이라더니 진퇴양난이었다. 이마에 땀만 삐질삐질 날 수밖에.

밤늦게 현장에 도착해 보니 그리도 신신 당부했건만 목수님들이 벽체를 설치하면서 바닥에 콘크리트 타카를 치다가 난방 배관을 찍은 것이다.
항상 주의를 주면 "아∼ 걱정 마세요. 그래도 우리가 목수 일을 30년 이상씩 한 사람들이니 걱정일랑 붙들어 매세요." 라고 하신다. 그들은 연장과 함께 유유히 사라지고 남은 상처는 그저 나와 건축주의 몫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CASE 9 - 콩기름 먹인 한지 장판

거세게 불어 닥치는 웰빙 열풍을 타고 가끔 전주 6배지 한지 장판 시공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한지 장판지 시공의 핵심은 콩기름을 얼마나 잘 먹이냐는 것과 난방 온도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주 미세하게 온도를 조절해 잘 유지해 주어야 한지의 일어남이나 울음(배가 나오거나 주름이 지는 현상)이 없어진다.

2000년 한겨울 어느 날.
처음으로 한지 장판을 시공하게 됐다. 잘 말린 다음날 다시 콩기름을 먹일 생각으로 온도를 조금 과하게 넣었더니 이곳저곳에서 공기의 팽창으로 생긴 혹 같은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배업자에게 전화를 하니 "아니 건축사가 그것도 몰랐습니까?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라는 식이다. 죄다 뜯어서 재시공할 정도는 아니었고 곰곰이 생각하다 약국으로 달려가 일회용 주사기를 잔뜩 집어 들고는 문방구로 향했다. 그리고 순간접착제 몇 통을 샀다. 스스로의 순발력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현장으로 돌아 왔다.

건축 모형을 만들 때처럼 능숙한 솜씨로 주사기에 순간접착제를 담아 방바닥에 생긴 수포에 살짝 찔러 넣고 주사기의 뒤를 살짝 눌러 본드를 주입하고 살짝 눌러 주었더니 아니다 다를까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한참 작업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손을 보니 어∼ 주사기와 내 손가락이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주사기를 누를 때 뒤로 새어 나온 순간접착제가 그만 내 손가락과 주사기를 일체화시켰던 것이다. 동행한 우리 직원이 면도칼을 이용해 샴쌍둥이 분리하듯 조심스럽게 수술을 했다. 자만은 화를 부른다.

설계 관련 이야기들은 필자가 본 지면을 통해 그간 많이 했기에 중복을 피하고자 이번 호에서는 시공 관련 이야기들 위주로 적어 보았다.
본의 아니게 현장과 관련된 분들에게 좋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열하게 된 점 깊이 사과 드린다. 실제 필자의 호구지책을 책임지는 분들이 건축주, 부족한 본인과 함께 옆에서 오랜 세월 함께 일을 하고 계시는 목수, 도배공, 프레이머 들을 비롯한 수많은 분들과 우리 직원들이다. 왜, 이분들을 욕하고 싶겠는가? 다만 지면을 빌어 필자가 겪은 전원주택 이야기를 쓰다 보니 남자들 군대 이야기 즐기듯 생각나는 일들을 적게 됐음을 너무 나무라지 않길 진심으로 부탁드린다.田


최길찬<신영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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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내가 겪은 전원주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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