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올해 3월 초,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아리 낭천산 중턱에 42.5평 목구조 황토집을 지어 이주한 한용걸(45세)·조정일(42세) 부부. 귀농歸農하면 으레 정서 함양이나 삶의 질을 떠올리는데 이들 부부에겐 호사가好事家들의 얘깃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한용걸 씨는 대학 시절에는 서슬 퍼런 군부독재에 저항하다가 100일간 복역했고 재적과 복학을 거듭하다 11년 만에 대학을 졸업해선 고향인 춘천에서 민주청년회 일을 했다. 조정일 씨는 1987년 12월 KBS 점거 농성을 주동한 혐의로 3개월간 형을 살고 졸업 후엔 노동운동을 했다. 그후 이들은 인천시 미가엘복지관에서 발달장애아들을 도우면서 서로 만나 1996년 결혼하고, 2005년 초까지 비영리 사회복지법인인 ‘함께 걷는 길벗회’를 운영했다. 나름대로 사회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소진消盡한 심신을 이끌고 귀농을 결심했다. 이들 부부가 부르는 귀농가歸農歌에 귀기울여 보자.





건축정보

·위 치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아리

·부 지 면 적 : 2000평

·대 지 면 적 : 200평

·연 면 적 : 42.5평(1층 37평, 2층 4.5평)

·건 축 형 태 : 목구조 황토벽돌

·외벽마감재 : 황토 줄눈마감

·내벽마감재 : 한지 벽지

·천 장 재 : 홍송

·지 붕 재 : 너와

·바 닥 재 : 황토 미장 후 한지장판

·창 호 재 : 목창호

·난 방 형 태 : 전기온돌 + 구들

·식 수 공 급 : 지하수

·건 축 비 용 : 평당 400만 원

·공 사 기 간 : 2005년 8월 ∼ 2006년 4월

설계 및 시공 기술지도 : 화천군 전통황토집전수학교
033-442-3366
www.hanokschool.co.kr




"귀농 이유요. 우리 부부에게는 농촌에서 정서를 찾고 말고 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돈 때문에 귀농했으니까요.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하면서 좌충우돌 살았지요. 마흔 중반에 접어들어서는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안정이 필요하겠다 싶어 돈을 벌자고 결심했고요. 문제는 돈을 번 적이 없으니, 그 방법을 모른다는 거였지요. 수중에 쥔 것도 없고… 생각 끝에 2000년대 이후부터는 환경과 자연의 시대이므로 귀농해서 자연과 웰빙을 팔기로 했지요. 된장과 매실청, 매실잼 등을요.”



한용걸·조정일 부부에게는 재산이라곤 7000만 원짜리 임대아파트가 전부였기에 부지 마련부터 쉽지 않았다. 현 부지는 2005년 헐값에 구입했는데 그만한 대가를 치렀다고.

“친구들 홈페이지에 사정 얘기를 올리자, 후배가 ‘경매 물건을 구해보쇼’라고 답글을 올리더군요. 그렇게 해서 2005년 초 법원 경매 사이트를 통해 네 차례 유찰流札까지 간 밭 2000평을 줍다시피 구입했지요. 나중에야 경사 가파른 맹지盲地라는 걸 알았고요. 아래쪽 도로까지 내 땅인 줄 알았는데 외지인 소유였어요. 수소문 끝에 그 사람을 찾아서 토지사용승낙서를 받으려고 하자, 누가 자기 집 뒤에 집 짓는 게 싫다며 거절하더군요. 하는 수없이 길을 내기 위해 그 옆의 땅 270평을 사들였어요.”



귀농 - 고난 끝에 결실 맺어



한용걸·조정일 부부는 부지 문제를 해결하고는 현장에서 5분 거리인 화천읍에다 전세로 아파트를 구해 2005년 3월 5일 이주 예정으로 계약금까지 치렀다. 그런데 이사하기 바로 전날 아침 아파트가 부도났다며 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이삿짐을 꾸리고 짐차까지 부른 상황에서의 황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급하게 화천읍 소재 복덕방을 뒤져 군인이 많이 사는 원룸형 아파트를 3월 4일 구해 이튿날 이사했다.

이들 부부는 처음부터 온화하고 평온한 느낌에다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흙집만을 고집했다. 처음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원목을 잘라 흙 속에 박아 쌓아 올린 버섯 모양의 집(목심집)을 지으려고 했다.



“우리 집도 섬진강변에 가족끼리 지은 로아차의 버섯집처럼 짓고 싶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이삿짐을 풀고 그 이튿날 부지를 찾으니 간벌꾼들이 모터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한창 낙엽송을 벌목하고 있더군요. 그들에게 그런 집 한 채 짓는 데 얼마나 드느냐고 하니, 나무 2만 재材 600만 원어치면 충분하다며 사라고 하더군요. 막 계약을 하려는 순간 집사람이 인터넷에 이상한 게 떴다며 조금만 기다려 보라는 거예요. 화천군청 전통황토집전수학교(학교장 한 진) 사이트인데 다음 날 가보고 온다더니 덜컥 수강 등록까지 하고 왔더군요. 그렇게 해서 목심집이 지금의 목구조 황토집으로 변했지요.”

이 집은 ‘ㄱ’자형 한식 목구조 항토집으로, 단면이 사각형인 재목材木으로 양쪽 처마 도리와 용마루 도리에 서까래를 건 삼량 납도리 방식에다 황토벽돌을 쌓아 줄눈마감을 했다. 집은 전통황토집전수학교 박영환 교수(도편수)가 조정일 씨를 포함한 5기생 25명과 함께 현장 실습을 겸해 지었다.



한용걸 씨는 처음에는 한 진 학교장에게 18평짜리 집 두 채를 지어 달라고 요구했다. 살림집과 당장 먹고살 방편으로 된장을 만들 작업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돈도 없이 학교장에게 막무가내로 요구했으니, 아마 도둑놈쯤으로 여겼을 거라고.

“학교장이 예산은 얼마나 있냐고 하기에 아파트를 정리하고 남은 5500만 원이 전부라고 했어요. 그러자 학교장이 어이없다며 손사래를 치더군요. 그러면 24평짜리 한 채만 짓자고 했더니 그도 안 된다고 했고요. 그렇게 5, 6월에 걸쳐 협상하는 동안 토목공사를 하고 전용허가를 받느라 있는 돈마저 다 썼지요. 생활비도 필요했는데… 다행히 토목공사 후 지가地價가 오르자 제2금융권에서 땅을 담보로 1억 원을 대출해 주었지요. 그러고 보니 난 1억짜리 빚쟁이네요.”



그렇게 해서 짓기로 한 24평짜리 집이 이번에는 설계 과정에서 42.5평으로 늘어났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려면 다락방이, 된장을 만들려면 가마솥을 걸 작업장이 필요했지요. 그러다 보니 42.5평 민짜 집이 나왔는데 모양이 안 좋아 ‘ㄱ’자로 꺾고, 거실에 신발을 두는 것도 그러니 현관을 앞으로 내어 달라고 했지요. 학교 측에서도 흔쾌히 수락했고요. 건축에 문외한인 우리 부부는 대충 목심집을 짓고 살기로 했는데 전통황토집전수학교를 만나면서 욕심이 발동해 이렇게 집이 확 달라진 거예요.”



건축 - 엄동설한에 핀 희망의 꽃



설계를 마친 2005년 7월 말 전통황토집전수학교의 소개로 산림조합으로부터 평창산 소나무 재목을 구입해 8월 말까지 치목治木(마름질)작업을 했다. 서까래 사이에 댄 개판과 대들보는 북미산을 사용했다. 기초공사는 한 주민이 이곳은 건수乾水가 흐른다는 말에, 40센티미터 버림 콘크리트를 하고 150센티미터 줄기초 후에 철근을 엮어 1미터 짜리 방석을 놓아 벙커처럼 튼튼하게 했다. 12월 말 목구조 공사를 끝내면서 지붕은 아스팔트 슁글에서 너와로 바뀌었다. 한용걸 씨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세山勢와 잘 어울릴 것 같아 너와를 택했다고.

“주위에서 너와는 제 수명을 유지하려면 2년마다 오일스테인을 뿌려 주어야 하기에 번거롭다며 전통 오지기와나 아스팔트 슁글로 하라고 권유했어요. 하지만 산 중턱에 짓는 집이다 보니 산이 주는 느낌을 살리고 싶어 너와를 고집했지요. 오지기와를 올린 고래등같은 기와집은 산에 미안한 맘이 들고, 아스팔트 슁글이나 시멘트 기와는 왠지 흉내만 내는 것 같아서 싫었거든요. 그래서 너와를 얹기로 했는데 집사람이 ‘베리-굿’이라고 하더군요.”



지붕작업은 개판(10×1㎝) 위에 타이벡 깔기, 황토에다 볏짚·소금·참숯 섞어 올리기, OSB 합판 덮기, 방수 시트 깔기, 너와 이기 순으로 진행했다. 황토벽돌 쌓기는 2006년 1월 2일부터 시작했는데 연일 영하 17도를 밑도는 혹한의 날씨라 비닐을 둘러치고 난로를 피워가면서 했다. 외벽 줄눈마감은 4월 5일부터 했는데 그보다 앞서 아파트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는 관계로 3월 2일 서둘러 입주했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데다 내부 미장까지 했으니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용걸 씨는 이 집을 짓는 데 들어간 총 비용은 2억 5000만 원 정도라고.

“토목공사비 2200만 원, 기초공사비 2200만 원, 목재비 4100만 원, 황토벽돌(3000장) 구입비 1500만 원 그리고 모르타르는 처음 300만 원어치 구입했는데 나중에 모자라 150만 원, 120만 원어치씩 계속 들어가 아예 계산을 안 했어요. 사방이 황토인데도 땅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이라 퍼오기도 마땅치 않았고요. 학생들에게 들어간 비용은 인건비 없이 점심에다 새참 값이 전부였지요. 여기에다 우리 가족 생활비까지 포함해 통장으로 오간 돈이 2억 5000만 원 정도예요.”



입주 -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즐거움



낭천산 중턱에 자리한 이 집은 실개천이 흐르는 아리마을 어귀에서 바라보면 산세에 폭 싸여 포근하게 다가온다. ‘ㄱ’자형인 데다 너와를 얹은 박공과 우진각, 합각 지붕의 어루러짐이 예사롭지 않다. 다락을 올려 겹지붕을 낸 것도 특이하다.

각 실의 기능에 맞게 거실은 바닥에 앉은 높이로, 자녀방과 부부방은 의자에 앉은 높이로 중인방 위치를 달리하여 창을 냄으로써 조망권을 확보함과 동시에 변화를 주었다. 전면으로 돌출시켜 지붕을 얹은 현관과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게 양쪽으로 문을 낸 작업장도 집의 기능성을 한껏 높였다.



실내는 우측에서부터 자녀방, 거실 겸 주방, 부부방, 노모방, 작업장 순으로 배치했다. 거실 겸 주방은 삼량 천장으로, 굵은 전선들은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 골막이에 묻고 얇은 전선들은 인테리어 효과를 높이고자 노출시켜 애자로 지지했다. 조정일 씨가 요한(10세) 군, 혜린(9세) 양과 함께 만든 전등은 투박하면서도 토속적인 운치를 더해 준다.

거실 좌측 자녀방의 천장은 우물반자로 꾸며 안정감을 주고, 창가에 길게 놓은 책상 그리고 공간을 양분한 책꽂이가 인상적이다. 주방 붙박이 가구를 비롯해 책상, 책꽂이 등 집 안 가구는 모두 한용걸 씨가 나무를 불에 그을려 만든 것들이다. 자녀방 위는 삼면으로 창을 내고 그 곁에 책꽂이를 둔 다락방이다. 목재로만 내부를 마감하여 동화 속의 오두막집을 떠올리게 한다.



부부방은 부지 자체의 고차에다 전면으로 돌출시킨 현관에 가리어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반면 실내에서는 산 아래에서 현관까지 누가 오가는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우물반자 천장을 한 부부방 뒤에는 화장실을 배치했다. 한편 부부방 옆에는 미닫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구들을 드린 노모방이 자리한다. 노모를 보다 가까이에서 모시고자 하는 효성이 배어 있다.

한용걸 씨는 흙집을 지을 때만 해도 ‘황토는 원적외선을 내뿜는다’, ‘건강에 좋다’는 말에는 신경을 안 썼다고.



“흙집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지었는데 이 집에서 다섯 달 정도 지내니까 추천할 만해요. 사람이 많이 오는 편인데 대개 어머님의 구들방에서 하룻밤 묵곤 하지요. 바닥이 뜨듯하고 공기가 쾌적해서 그런지 일요일 저녁이면 차가 막히는 데도 갈 생각들을 하지 않아요. 좀더 몸을 지지다 가겠다면서… 나도 시멘트로 뒤덮인 도시에선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했는데 여기에선 어김없이 6시에 눈이 떠져서 맑은 기분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도시에선 혜린이가 아토피성 피부염이 심해서 매일 연고제를 발랐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사라졌어요. 두 아이 모두 건강해서 치과 외엔 병원에 간 적이 없어요. 맨발로 흙을 밟으며 뛰놀고 상추며 고추, 가지 등 무농약 먹을거리를 즐기니 자연 건강해질 수밖에 없지요.”

이들 부부는 그동안 그 좋은 옛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잊고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도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삶의 한 방편으로 귀농했지만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모두冒頭에서 밝혔듯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돈을 벌고자 귀농했다. 지금 흙집 뒤 비닐하우스 안 오지 항아리에서는 광양 매실조합에서 갖고 온 매실이 숙성 중이다. 작년에 경험 삼아 만든 매실청과 매실잼을 몇몇 사람에게 나눠줬는데 다들 좋아해 고무鼓舞된 듯했다. 또한 된장을 담그겠다고 하자, 노인회에서 농약을 안 친 콩을 매년 열댓 가마씩 대주기로 했다. 한편 황토집 뒤 부지엔 게스트 하우스 건축용 재목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매년 열리는 산천어 축제 때 민박도 하고, 일하다 지친 활동가들이 와서 며칠이건 몇 달이건 쉬어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田





글·사진 윤홍로 기자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흙집에서 부르는 귀농가(歸農歌) 화천 42.5평 목구조 황토집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