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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나는 같은 업계에 있는 'H'교수(건축디자이너 겸 건설회사 대표)와 함께 방송 녹화 차 출장을 가면서 그로부터 한 권의 책을 추천 받았다. 언제나 느린 걸음으로 움직이며 연구나 독서에 상당히 게으른 나의 눈에 그 책은 제목만큼이나 신선한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연초에 8월쯤 해서 책의 중요한 내용을 독자에게 알리기로 마음을 먹고 목차에 넣었다.
책의 제목은 《제 3의 공간》으로 저자는 세계적인 '무드매니지먼트'인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이다. -최기철/박성신 공역, 도서출판 미래의 창(www.miraebook.co.kr)- 이번 호에는 지면상 이 책의 많은 내용보다는 전원주택이나 전원주택단지와 관련 있는 부분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집이 아닌 곳에서 내 집 분위기를 느낀다

우리는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많은 대화들 속에서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특히 나처럼 건축 설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객과의 컨설팅 과정이나 기획 단계에서 고려를 많이 하는 것이, 앞으로 만들어질 집에 살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나는 종종 주택을 설계하면서 고객에게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항상 판에 박은 듯한 외형의 아파트에 들어서면 고객의 취향과 삶의 냄새가 내 후각과 시각을 자극하고, 그 짧은 견학이 앞으로 내가 고객과 함께 해야 할 많은 이야기들을 대신해 준다. 이는 내가 고객의 집을 설계할 때 갖는 지론인'답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건축주가 이미 가지고 있다. 문제는 건축주가 나에게 그 답을 쉽게 전달하거나 나보다 각색하는 건축적 능력이 조금 적을 뿐이며, 건축가는 건축주로부터 얼마나 빠른 시간에 정확히 그 답을 찾아내어 각색하고 프로그램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

책의 저자인 미쿤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제 1의 공간>, <제 2의 공간>, <제 3의 공간>으로 구분했다.
<제 1의 공간>이란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 즉 그 사람의 집을 말한다. 이 공간에서 집의 미학적 가치는, 그 집의 주인인 사람의 가치로 이해되는 아주 특별하고 편안하게 연출된 공간을 일컫는다. 그 이야기는 반대로 그저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자식을 키우며 삶의 무게를 지탱해 오던 그런 집이나,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버린 우리의 아파트까지 여기에 포함시키기엔 곤란하다는 의미도 포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 2의 공간〉은 집이 아닌 사무실, 즉 일터의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 3의 공간》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미국인들이 미학적 아름다움을 가미한 작업 환경이 근로 의욕을 북돋운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제 2의 공간〉에 대한 건축적 사회적 개념이 등장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층을 여러 개의 작은 방들이나 개인 공간으로 나누어 놓은 벽이나 칸막이를 없애서 전체가 하나로 탁 트인 사무실이 되게 하고, 풍부한 채광과 조명으로 분위기를 밝게 하고, 관상용 식물이나 화분 등을 들여놓고, 통풍이 잘 되게 하는가 하면, 공장의 작업장에까지 보기 좋은 페인트를 칠하는 것 등 일터에 <제 2의 공간-the second place> 개념을 도입하자, 직원들이 결근하거나 병에 걸리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고 직장에 애착심을 갖고 의욕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이제 일터는 어느 수준까지는 '연출된 주거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책 pp14∼15발췌

여기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제 1의 공간>과 <제 2의 공간>에 대하여 간략히 정리하면 〈제 1의 공간〉이란 라이프 스타일을 잘 반영한 주거공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제 2의 공간〉이란 이러한 주거공간의 세련미와 안락함 등을 확장하여 연출한 일터 공간(사무실 공간)을 의미한다. 〈제 3의 공간〉 개념은 어떤 공간에서 "본연의 기능을 가진 공간과 본연의 기능이 아닌 어찌 보면 부수적인 공간에 내 집 같은 안락함을 부여하여 본연의 기능 공간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만들거나 그 이상으로 꾸며서 본연의 기능을 부각시키는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물관을 꾸밀 때, 고갱이나 고흐 등 대가의 작품을 관람하는 공간 못지 않게 부수적으로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편의점 또는 기념품 가게 그리고 산책로 등을 끼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관람 문화를 아이들과 함께 하는, 또는 비즈니스 만남이나 연인들과의 만남 때로는 명사들처럼 같은 부류 사람들의 사교 장소로 제공함으로써 그 기능을 한층 배가시킬 수 있다.

개인 주택에도 〈제 3의 공간〉을 만들자

요즘 우리나라에서 전원주택이나 전원주택단지 붐이 일면서 이곳 저곳에 많은 산허리가 잘리고 그 위에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전원주택단지는 분양이 잘 되지 않아 잡초가 뒤덮인 채 을씨년스런 '분양 플래카드'만 나부끼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단지들을 위하여 〈제 3의 공간〉 개념을 도입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전원주택단지 내에 내 집은 아니지만 내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안락함이나 편안한 느낌이 드는 공적공간들이 있어야 하는데 실상 쉬운 일은 아니다. '동네에 들어서는 〈제 3의 공간〉은 과연 어떤 것이 될까?' 라는 의문을 던져 놓고 보면 답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네 어귀의 이발소나 미용실 그리고 공동시설인 마을회관, 잘 가꾸어진 느티나무 아래의 정자와 연접하여 아이들의 소리가 가득한 놀이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설들을 조금 폭넓게 해석하면 개인 주택에도 필요하다.

우리가 늘 만들어 오는 주거공간의 기능을 보면 커다란 창이 달린 거실과 세련된 주방가구와 식탁이 있는 주방 및 식당, 주인침실, 손님방 그리고 좀더 규모가 있다면 서재 등으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서양의 주택 평면은 우리의 거실에 해당하는 리빙 룸(Living Room)이 조금 작은 규모로 레이아웃(배치)되어 있으며, 그 크기에 못지 않게 패밀리 룸(Family Room)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우리의 주택 구조는 지극히 개방적이어서 이웃이 찾아왔을 때, 내 삶의 공간 중 침실만 제외하면 모두 공개되는 공용공간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결국 동네 주민과 폐쇄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고 만다.

이럴 때 내 집에 〈제 3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 우리 가족만이 공유하는 공간들 외에 좀더 개방적이고 아늑한 곳에 다실(Tea Room) 같은 것을 마련하면, 이웃을 초대해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친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우리네의 '사랑방'처럼 말이다. 이런 공간을 준비할 때는 집주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할 수밖에 없지만, 손님에게도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그곳에서 자녀 양육이나 동네 문제 등 많은 이야기를 쉽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의 우리네 주거문화는, 내 집에 손님을 들이기보다는 마을회관과 같이 조금은 공공성이 있는 곳에서 만나기를 원하고 있다. 그만큼 폐쇄적인 이웃관계로 변하고 있다. 그 만남이라는 것도 그저 서로에게 최소한의 간섭을 통한 공통 관심사 해결 같은 지극히 '반상회'적이다 보니 '우리 동네'란 이미지가 약해지고, 결국 단지 활성화의 어려움 내지는 쇠락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필자는 전원주택을 설계하면서 몇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땅이 허락하는 한 이층집을 고집하지 말고 단층집으로 설계하는 것을 한번쯤은 고려해 볼 것과, 집의 평면 구조에서 '사랑방'처럼 거실이나 메인 현관을 통하지 않고 덱 등으로 연결된 주택의 평면도 고려해 보라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설계를 해서 완공한 집에서 사는 건축주들로부터 적지 않은 칭찬을 들어 왔다. 그렇게 분리된 주택의 〈제 3의 공간〉에 해당하는 사랑방(게스트 룸, 다실 등의 기능으로 명칭 부여)이 있음으로써 장성하여 출가한 자녀들도 더 자주 찾아오고 절친한 동창 부부의 편안한 방문을 유도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제 3의 공간》 저자 크리스티안 미쿤다는 1980년대 들어 감각적 체험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등장하면서 대중이 이용하는 상점이나 식당을 '연출'하고 미술관을 '개조'하고 난생 처음 '체험'이라는 호텔을 세웠다. 이런 곳들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짜릿함에다 내 집 같은 편안함, 즉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 시설들을 개인의 공간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제 3의 공간-The Third Place〉 개념이 등장했고, 그렇게 '연출된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활력소가 됐다. 이제 사람들은 예전처럼 당구장, 축구장, 볼링장 같은 곳에서만 여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오락 시설이나 쇼핑몰, 이벤트 장, 색다른 레스토랑(Restaurant)이나 바(Bar) 등이 새로운 여가 공간으로 등장한 것이다-책 p15-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방인으로 넘쳐나는 아파트는 이제 그만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전원주택은 자연 환경(물, 공기, 경치 등)은 뛰어나지만 교통, 의료 특히 사회 공동체가 공유하는 공원이나 쇼핑몰, 자녀 교육 등 사회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전원주택을 둘러싼 공간적 가치의 증대가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해야만 현재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만족도나 공동체 의식이 높아질 것이다. 이는 곧 마을이라는 집단적 소속감과 그 마을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적 상승(Culture Promotion or Evaluation)을 가져옴으로써 지속 발전이 가능해질 것이다.

사실 주거환경에서 〈제 3의 공간〉 기능은 집단 아파트 단지가 훨씬 뛰어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이 탈아파트 생활을 끊임없이 꿈꾸고 실행에 옮기는 것일까? 아무래도 아파트 생활은 동네 사랑방이나 그 예전의 이발소나 다방 같은 기능들을 소화시키기엔 너무나도 폐쇄적이다. 동시에 아파트 단지를 구성하는 개체수가 많다 보니 그 모두를 하나의 공동체 의식을 갖는 단체로 정의하고 발전시키기에는 너무 벅차기 때문이 아닐까?

일례로 500세대의 한 아파트를 한 동네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500세대 정도면 적어도 1500∼2000명이 사는 거대한 도시인데, 기껏해야 그 도시를 구성하는 〈제 3의 공간〉은 그 아파트에 딸린 500∼600평의 단지 내 상가나 연접해 있는 집단 상가시설이 고작이다. 크리스티안 미쿤다의 정의처럼 내 집 같은 느낌을 가지기엔 너무도 상업적 공간들이다.

그러다 보니 그 단지 속에서 5분 이내만 걸어도 우리 생활을 지탱해 주는 상점, 이발소, 음식점, 술집, 오락실 등 모든 것이 있지만 불과 반경이 5분 10분에 지나지 않는 장소적 공간 속에서 하루 저녁 내내 술을 마시고 2차 3차 돌아다녀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소속한 아파트에 살지만 나나 이웃이나 모두가 10분도 채 안 걸리는 지리적 공간 속에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비록 나는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정작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기에 서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내 집에 들어서면 마누라와 아이들 모두가 나와 살을 부대끼고 내가 번 돈을 함께 쓰며 아내가 요리한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살아가는 비로소 공동체라는 아주 작은 개체 단위가 내 주변에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아파트 건설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다. 이런 곳에서 만들어진 문화적 동질감의 결여 등은 사회의 거친 면과 배타적 생활습관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는 곧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내 생각으로는 월드컵 문화를 새로이 만들어 낸 '붉은 악마'의 거리응원 문화는 그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한다. 공동체적 의식의 부족함 속에 성장해 온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문화적 동질감의 배고픔에 대한 갈증 해소적 요구가 더욱더 강한 결속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월드컵 응원이 아니면 이웃사람들과 거의 맥주 한 잔 마시지 않고 이해관계가 없으면 만날 이유가 없었다. 반대로 전원주택단지처럼 50∼100호 정도가 함께 사는 마을은 눈만 뜨면 서로 만나 부대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원주택단지에 공동체라는 옷을 입히자

우리나라의 전통 마을과 전원주택단지의 큰 차이점은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그늘이나 성황당, 사랑방 같이 언제나 편안함을 주는 〈제 3의 공간〉적 요소의 존재 여부에 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전통 마을들이 현재 쇠락의 길에 놓여 있는 반면, 전원주택단지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곳에서 새로이 건설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형태로 개발되는 전원주택단지의 생명력은 얼마나 될까? 우리의 전통 마을들은 적어도 몇 백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산업화 속에서, 돈벌이를 위하여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남아 있는 젊은 층 자녀들의 교육 환경의 빈곤화를 부채질하면서 급속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반면 전원주택단지의 경우 멋있고 나름대로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여 지어진 깨끗한 집들이 예쁜 꽃들과 잘 가꾸어진 정원에 둘러싸여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곳 대부분의 구성원이 50대 이상 60∼70대의 실버 세대들이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약 20여 년 후에도 과연 이 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고 지속적 구성원의 증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전통 마을의 쇠락이라는 안타까움 속에서 그나마 전원주택단지라는 새로운 개념의 마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희망적이다. 하지만 앞으로 마을이라는 공동체적 가치 부여와 함께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제 3의 공간〉적 요소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전원주택단지도 머지않아 전통 마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전원주택단지 내에는 라이프 스타일을 잘 반영한 주택 〈제 1의 주거공간〉과 함께 내 이웃이 자기 집 현관문을 나섰을 때도 내 집처럼 잘 연출된 공간이 마을 어귀나 이웃집에 다실이나 사랑방 형태처럼 자리한다면, 〈제 1의 공간〉과 함께 〈제 3의 공간〉이 공존하는 좋은 마을이 될 것이다.田


최길찬<신영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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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제 3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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