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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내 이웃과의 마을 공동체적 사고와 생활 그리고 취미 생활, 이웃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정원 가꾸기'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정원을 보고 즐기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여기에는 가꾸는 노력의 즐거움이란 큰 의미가 더해져야 한다.

잔디밭에 잡초를 뽑고 예쁜 소나무가 죽지 않도록 영양제를 주는 정도가 아니라 마당을 블록화해 보자. A블록에는 3월에 피는 꽃을, B블록에는 야생화를, C블록에는 가을에 피는 꽃을 그리고 담을 따라 돌면서 대문 주변에는 5개의 빨간 꽃잎이 진한 5월의 장미를 심어 보자.

이런 정원은 어떨까? 덱(Deck)의 한 귀퉁이 물 항아리에는 부레옥잠이나 가시연꽃이 떠 있고, 낙엽이 나뒹구는 10월이면 감수성 예민한 딸아이의 2층 방에서 서측으로 난 장방형 창을 통해 어느덧 빨갛게 익은 홍시가 석양빛을 머금어 그 붉은 기운이 터질 듯 풍요롭게 매달린 모습. 또 남편과 아이들이 나간 초여름 식당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 '후두둑'거리는 소리에 놀라 시선을 돌리면 남편의 두 주먹만한 목련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뻐근해지는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세월의 아픔도 느낄 수 있는 곳.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녀딸아이에게 어릴 적 혀끝을 달콤하게 적셔 주었던 사르비아 꽃 꿀 냄새의 추억을 들려주는 그러한 곳.

하나, 조경, 결코 서두르지 말자

집은 3개월 정도면 지을 수 있지만 조경의 중요한 인자因子인 나무와 꽃 그리고 잔디 등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지나야 제몫을 다하는 요소로 자리를 잡는다. 그 때문에 적어도 5년 정도 장기 계획을 세우고 접근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장기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막상 입주 후 수년 동안 꿈꾸듯 기대해 온 전원주택과 썰렁한 마당은 그 컨셉이 일치하지 않는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그것을 인정하기 어렵기에 어느 정도 장성한 멋진 소나무를 들여오고 이렇게 저렇게 돈을 들이게 된다.

필자는 무덥던 7월 꽤 오랜 세월 알고 지냈으며, 설계일도 많이 소개해 준 경기도 광주의 K권사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분은 필자의 설계가 맘에 안 드는지 항상 이리저리 뜯어고치고 변경하면서 당신의 생각과 건축 기법을 많이도 쏟아 붓곤 한다. 때론 그것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화하면 언제나 반갑게 받고 잊을 만하면 설계 건을 소개 주는 분이다.

동네에 들어선 집들이 몇 채 되지 않아서 더욱 그러했지만 집이 지어졌을 때 건축주인 K권사 부부와 마찬가지로 필자도 맘에 안 드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하면서 입이 그냥 딱 벌어지고 말았다. 집에는 세월이 지나면서 삶의 냄새도 많이 보태졌지만 무엇보다는 조경이 압권이었다.

함께 1층 덱에 앉아 부드러운 원두커피를 마시면서 K권사는 반 자랑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꽃과 식물 그리고 그것을 찾아 날아드는 벌과 나비에 관해 거의 곤충이나 식물학자 수준에 미칠 정도로 많은 내공을 쌓은 것이 필자와는 더 이상 이야기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저 '아∼. 네, 그렇군요.' 하는 감탄사만이 필자가 응대하는 답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필자의 어리석은 충고를 듣고 야생화와 잔디 그리고 키 작은 나무 몇 그루만 심었던 마당이 이제는 이른봄부터 계절별로 피어나는 꽃들과 이를 찾는 벌과 나비들이 가을까지 쉼 없이 마당을 들락거렸다.

무엇보다 100여 평이 되는 마당이 많은 꽃들로 비좁아 보였다. 서커스 곡예사처럼 한철이 지나 꽃이 지면 그 자리를 대신해 다른 꽃들이 스르르 아주 자연스럽게 무대를 장식했다. K권사는 그렇게 꽃이 퇴장할 즈음에 대비해 다른 꽃들이 말없이 무대를 채워 나가도록 꽃을 즐겨 심어 놓았다.

그렇다! 이 분은 전원이란 멋진 풍경 속에 예쁜 집을 짓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채워지지 않는 세월의 공간을 꽃과 나비로 시각화시킨 것이다. 대화 중 필자는 작년에 설계한 양평의 B건축주(두 분은 친구 사이)가 '앞으로 5년 만 지나면 우리 집이 K권사 댁보다 정원을 훨씬 예쁘게 꾸밀 테니 두고 보라'는 다짐을 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K권사 왈, '그 친구는 우리 집에만 오면, 얘! 저 꽃은 무슨 꽃이니 너무 아름답다. 얘! 저거 꽤 여러 포기네 나 몇 포기만 줘라.'고 한다는 것이다.

친구지간에 안 줄 수도 없고… 정성껏 가꾼 꽃인데다 비록 여러 포기지만 몇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어 왔고, 또 씨앗을 내려 옆의 자리를 채워 놓은 내 집 식구들이기에 쉽사리 줄 수 없어 눈치를 좀 준 모양이었다. 함께 차를 마시고 K권사는 서울에 누가 좋은 옹기를 갖고 있다고 하여 실으러 간다며 함께 집을 나왔다.

둘, 조경 계획에 건축물 안팎을 포함시키자

가끔 '조경을 어디에 하지?'하고 물으면 사람들 대부분은 '그야 당연히 마당에 하지.'라고 답한다.
필자가 이번에 캐나다 동부지역인 밴쿠버(Vancouber), 휘슬러(Whistler)를 포함해 록키산맥을 돌아보고 왔다. 그저 그 넓은 대륙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지도를 펴놓고 바람처럼 '휙' 스쳐지나 왔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나무만 팔아도 200년을 먹고 살 수 있다는 나라답게 거의 모든 집들의 뼈대와 마감재 그리고 차가 다니는 교량도 나무였다. 건축 재료로 목재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끊임없이 이어진 조경 시설물과 꽃과 나무들, 그것도 모자라 보나 창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꽃바구니에다 예쁜 꽃들을 가꿨다.

필자도 처음 조경은 그저 마당에만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다가 짧은 소견머리 덕분에 좀더 발전시켜서 겨우 덱 한가운데 구멍을 뚫어 잘생긴 소나무를 한 그루 심고, 다이닝 테라스 가운데 나무를 심어 그 주변을 감싸는 야외 테이블을 설계에 반영했다. 그리고는 무슨 대단한 설계인양 건축주에게 침 튀기면서 '이것만은 꼭 하세요.'라고 권유해 왔다. 그 넓은 대륙에 눈만 돌리면 숲과 물이 있는 나라에서 집의 외벽, 대들보, 내부에 끊임없이 만들어 놓고 즐기는 조경을 보면서 그저 카메라 셔터만 눌러댈 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셋, 조경 시설물을 좀더 풍성하게

요즘 우리나라 목수들의 나무 다루는 솜씨가 참으로 많이 좋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방부목으로 덱을 짜고 목조주택의 골조시공만 하면 상당한 기술을 가진 것으로 자부했지만, 이제는 정말 일반화된 주택 시공 목수들의 기술이 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건축주들의 평당 공사비적인 접근, 그리고 업체들은 여기에 맞추어 수주하느라 덱이나 조경 시설물에 대해 건축 설계나 시공 견적을 최소로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막상 설계나 시공계약 시 이러한 부분을 축소했더라도 건축공사가 끝나갈 무렵이면 상당수의 건축주는 덱의 면적이나 화단 박스 등의 조경 시설물을 더 늘려 주기를 원한다. 자연 자재를 새로 발주하느라 별도의 운반비 지급은 물론 이미 철수한 목수들까지도 새로 불러와야 한다. 결국 건축주의 예산 증가 내지는 시공업자의 고통 감수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넷, 겨울철에도 관리하기 쉬운 조경을

우리나라의 전원주택은 대체로 공기 좋고 물 맑고 산 좋은 곳에 많이 위치해 있다. 그러다 보니 봄부터 늦여름까지는 특별한 조경을 하지 않아도 주변의 녹음과 경치로 아름답고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그리고 자녀들이나 친구들도 여름철 더위를 피해 자주 방문하기에 집 안 분위기도 시끌시끌하고 활기가 넘친다.

반면 낙엽 지는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면서 정원의 나무와 꽃들은 물론 뒷산의 낙엽들도 그저 싸늘한 바람에 어지러운 흩날림만 더한다. 여름 내내 그림을 그리러 내려왔던 옆집 화가 내외도 내년 여름에 다시 오겠다고 떠나고, 여름 내내 별장으로 사용하던 뒷집도 사용 횟수가 줄면서 마을은 다시 침묵에 잠긴다.

그래서 조경은 겨울을 생각해야 한다. 거실 앞에 적어도 풍성하게 잘 빠진 상록수 한두 그루쯤은 있어야 하고, 여름 내내 왕성한 성장과 화려한 꽃을 자랑하던 마당에는 뭔가 그것을 대체할 조그만 것들이 있어야 한다. 나무일 수도, 보기만 해도 훈훈해 보이는 참나무 장작을 잔뜩 쌓아 놓은 퍼걸러(Pergola)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거실에서 바로 바라보이는 덱과 그 덱을 지나서 정면에 보이는 잔디밭의 일부에는 겨울에도 푸름을 간직하는 양잔디를 심는 것도 좋다.

그리고 조경 계획을 할 때, 특히 경사지 전원주택은 그 경사면을 따라 발파석을 이용한 돌쌓기를 하고 그 사이사이에 회양목, 영산홍, 자산홍, 진달래, 철쭉 등 관목류를 심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돌광산이나 토목 건축 현장에서 큰 돌을 깨트려 가공된 발파석이 그리도 자연스럽고 좋은 것인지도 의문스럽지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서 그 발파석 사이에 바람에 날려 온 비닐도 걸려 있고 여름 내내 화려함과 함께 돌들과 어우러지던 관목류들의 모습은 애처로움마저 든다. 때로는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콘크리트 옹벽과 그 표면을 담쟁이 넝쿨이나 방부목 등으로 따스함이 느껴지도록 처리한다면 한결 관리가 쉬워지지 않을까.

다섯, 시각적 완충지대를 설치하자

일산 정발산공원 쪽 도시형 전원주택을 돌아보면 흔히 생각하는 예쁜 집들이 너무 많다. 그 집들을 밖에서 바라보면 정말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경도 아름답다.

그렇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생각을 깊게 하여 그 집 안에 들어가서 밖을 내다보자. 아주 편안한 옷차림으로 그 마당에서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며 여름 오후를 보낼 수 있을까? 또 주말에 자녀들이 내려와서 바비큐 파티라도 열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그렇다 많은 건축주들이나 설계자들이 가장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거의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처럼 남향의 햇살을 원하다 보니 거실이나 마당을 남쪽으로 열고, 정원도 남쪽 도로에 접하여 배치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조경이 길을 가는 나그네의 입장에서만 아름답지, 정작 건축주는 그 정원을 즐기기 어렵다. 남들과 시각적, 공간적으로 공유하는 곳에 위치하는 정원과 건축주만을 위한 개인 정원(Privy Garden)의 성격이 강한 중정中庭도 있어야 한다.

대지가 너무 작아서 그 계획이 어렵다면 건축물을 배치할 때 일부분을 도로 쪽에 배치하거나 가벽, 담, 수벽 등을 이용해 햇살도 들어오고 시선도 차단되는 곳에 정원을 만들자. 집 안의 거실이나 식당 등에서 이 정원을 언제나 감상할 수 있고, 또 아주 편안한 옷차림으로 언제나 접근 가능하도록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田


최길찬<신영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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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전원주택과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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