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이야기가 있는 집

“34년전 평당 1전에 마련한 땅입니다”

내린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양양군 서면 복령산에서 발원하여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서 창촌리로 흘러드는 자운천과 합류하여 이루어지는 이 내린천의 물줄기에는 많은 산과 오염되지 않은 하천이 있다. 특히 내린천에 합류되는 방태천의 발원지인 인제군 점봉산 자락에 있는 진동계곡의 설피마을은 오지탐험으로 유명한 곳이다.


설피란 눈 쌓인 한겨울에 발이 눈에 빠지지 않도록 신 위에 덧신는 신발을 말한다. 설피마을이라는 이름은 설피를 삼는 나무를 경작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설피를 키울 정도라면 분명 눈이 많은 산간지역일테고 그것만으로도 벌써 오지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정확히 행정구역상으로 인제군 기린면 진동 2리에 속하는 이 마을은 강원도 지방의 대표적인 작물인 감자와 옥수수를 재배하며 살아가는 산간마을이다. 사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얼른 마을이라는 느낌이 와 닿지가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여느 마을처럼 집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20리에 걸쳐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이러한 설피마을에 타지에서 흘러 들어와 지금은 마을 터줏대감으로 군림(?)하는 이가 있다.

바로 이상우씨가 그 주인공인데, 이곳에서 조그마한 민박집을 운영하며 설피를 재배하는 농사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상우씨는 원래 서울사람으로 농사와는 거리가 먼 공학도였다. 그런 그가 이곳 설피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지금부터 34년 전, 그는 산업연수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외국인 4명으로부터 여행안내를 부탁 받고 그들과 함께 전국일주를 하게 됐다. 서울에서 시작된 여행은 설악산 신흥사를 거쳐 오대산으로 이어졌는데 그 길목에 설피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길조차 제대로 닦여있지 않은 그야말로 산중 오지마을 이었지만 넓은 분지에 황금빛 갈대가 초원을 이루는 풍경만은 실로 절경이었고 그 모습에 반한 일행은 잠시 쉬어간다는 것이 그대로 3일을 보내게 됐다. 그때 이상우씨는 함께 했던 일본인 이치하마씨로부터 일본의 경우를 빌어 ‘이제 서울은 10~15년쯤 뒤에는 환경문제로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되니 이런 곳에 땅을 사두면 좋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평소 농사를 지으며 전원에서 살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그렇지 않아도 이런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전원생활을 시작하기에 마땅한 자리를 물색했고 여행을 마치고는 곧바로 설피마을을 다시 찾았다. 마음에 둔 땅을 구입하기 위함이었는데 불행히도 지주는 땅을 팔려는 의사가 전혀 없었다.

설득을 해보기도 했지만 지주의 의지가 너무 완강해 그는 연락처만을 남기고 다시 서울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간 그는 1년을 흘려보냈고 그러는동안 설피마을은 머리속에서 까맣게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날 갑작스레 설피마을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그때 그 지주로부터 지금 땅을 팔려하는데 구입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쾌재를 부르며 만사를 제치고 설피마을로 향했고 그렇게 해서 그는 67년 드디어 설피마을에 있는 토지 2천평을 평당 지금은 생소한 단위인 ‘1전’에 구입했다.
이 후 그곳으로 이주한 그는 조금씩 땅을 구입해 나가기 시작했고 77년도에는 평당 3천원에 1만평을 구입함으로써 장장 10년에 걸쳐 설피농장으로 이용할 부지 총 4만평을 마련했다.

해발600m 고산지대의 도로도 없는 맹지를 구입해 나가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이도 많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 곳의 투자가치를 확신했고 꼭 재테크 차원이 아니라도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을 원했기에 과감히 실행했다. 그러나 이곳 생활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도로가 없어 한동안은 문명생활보다는 원시 자급자족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곳에 도로가 개통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이다. 그리고 설피마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말 내린천댐 개발이 백지화되고 진동리 상단에 양양 속초 주민의 식수공급을 위한 소형댐의 공사가 시작되면서이다.

이때부터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졌고 더불어 설피마을은 고랭지 채소와 당기 등 약초 재배로 고수익을 올리고 또 민박 등을 통해 부수입을 올리는 부농마을이 됐다. 현재 설피마을은 양지쪽 밭 평당가격이 10만원을 호가하는데 이마져도 매물이 동난 상태이다. 설피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세군데로 나뉜다. 양양군 오색초등학교 앞 개울을 건너 계곡을 10리쯤 거슬러 올라가면 단목령이 나오는데 이곳을 넘어가면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또는 인제군 기린면 진동 1리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양양군 서림에서 조침령을 넘어가도 마을에 다다를 수 있다. 이중 가장 빠르고 길 찾기도 쉬운 방법이 단목령을 넘어가는 것이다. 오색초등학교에서 단목령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고 다시 단목령에서 설피마을까지도 족히 2시간이나 걸린다. 그야말로 지극한 정성이 없다면 엄두도 낼 수 없을만큼 먼 거리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 마을이다.

오늘도 설피마을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접대하면서 즐거운 오후의 한때를 보내고 있는 이상우씨는 그저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은 언제고 다시 이곳 찾게되는데, 이는 설피마을의 자연경관이 주는 인상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이상우씨 말이다.田

■ 글·사진 김성룡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34년전 평당 1전에 마련한 땅입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