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복잡다단한 세상에 대한 회의 때문일까. 요즘 사회 전반에 걸쳐 정체성正體性을 찾자는 목소리가 높다. 주거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전통 목구조 황토집 짓기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궁궐이나 사찰 등 기존의 의례적 건축물이 아닌 가족의 삶을 담아낼 살림집을 내 손으로 짓자는 움직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거리 소재 한국전통초가연구소의 윤원태 소장. 1991년 연구소 설립 이래 전통 목구조 황토집(한옥) 보급을 국민운동으로 확산시켜 온 장본인이다. 최근 연구소 내에 연구동으로 지은 기와집과 초가, 귀틀집, 천연 잔디집에 이어 전통 복층 목구조 황토집(2층 한옥)을 지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복층 목구조 황토집이 전원주택으로 보편화된 지는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럼에도 이 건물이 화제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시멘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생태 건축 자재인 나무와 흙, 돌만을 사용한 전통 공법으로 재현해 냈기 때문이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시대 살림집에도 복층 목구조 황토집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선시대 이후 온돌이 보편화되면서 경북 상주의 대산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6호) 외에는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윤원태 소장은 "당시에는 온돌을 들였을 때의 기술적인 안전 문제로 채를 나누는 쪽을 택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안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윤 소장은 "나무를 1, 2층에 걸쳐 하나로 길게 뽑으면 전후좌우로 쏠리는 현상은 잡겠지만 수축으로 인한 뒤틀림에는 속수무책이므로 1층은 3.3m, 2층은 3m짜리 기둥을 따로 사용해서 쏠림과 수축 현상을 모두 해결했다"고 한다.

최근 생태 건축 자재만으로 복층 목구조 황토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많지만 시공비는 차치하고 기술적인 벽에 부닥쳐 시멘트 자재와 타협하든지 구조 자체를 아예 바꾸곤 한다. 이 건물에서는 전통건축기술인 양성자 과정 수강생들을 위한 실습과 이론 강의를 진행하는데 부산지역 건축사와 건축 관련 교수들이 전통 건축 기술로 완벽하게 재현해 낸 안전한 복층 목구조 황토집으로 인정했다. 윤 소장은 이 건물의 시공 방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초 부분은 규모(연면적 192㎡)가 있기에 본 땅〔生土〕에다 주먹돌이 아닌 호박돌을 적심석積心石으로 넣어서 주춧돌의 침하를 방지하고 강회와 마사를 섞어서 보강했다. 1층 주춧돌 위에는 3.3m 기둥을 세우고 중인방 밑에는 전통 방식의 사괴석(四塊石 : 벽이나 돌담 또는 화방火防을 쌓는 데 쓰는 육면체의 돌)으로 처리하고, 그 위에는 황토 맞벽치기로 벽체를 마감했다. 천장은 평천장(우물마루)으로 보에 장선을 결구하여 마루판재를 깔고 100㎜ 압축 스티로폼, 4″×8″ 구조용 합판, 층간 소음 방지용 10㎜ 고무판, 우물마루 순으로 마감했다. 층간 소음 완충 장치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다. 2층 지붕은 서까래를 걸치고 천벽 대신 개판, 알매, 기와 순으로 마감했다. 옛날에는 수숫대나 대나무로 산자를 엮고 흙으로 알매를 올려 천벽으로 마감했으나 흙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려고 개판으로 처리했다. 2층 중인방 밑에는 적벽돌로 이중 마감하고, 그 위에는 200㎜ 두께의 황토 맞벽치기를 했다."

전통 건축 기술의 현대적 계승

생태 건축으로 황토집을 짓는다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닥과 벽체에 시멘트를 사용한다. 생태건축이란 무엇일까. 윤원태 소장은 "생태 건축이란 전통 건축 기술을 이용해 자연 친화적인 소재로 집을 짓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전통 건축이란 우리 선조들이 개발한 고유의 건축 기술로, 우리의 살림을 담아낸 집은 주위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 소재를 이용해 지은 생태 건축물이었다"라고 한다. 여기에 "한옥의 아름다움은 나무와 돌과 흙의 어우러짐에서 나오며, 이것이 바로 생태 건축의 기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문화재로 지정 받은 여러 고택들을 둘러보면 시멘트를 사용해 개·보수한 곳이 더러 있는데 전통미라곤 오간 데 없어 밍밍할 뿐이다.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훼손시켰기 때문이다. 전통 건축 방식의 계승이란 무엇일까. 윤 소장은 "전통 건축 기법을 이어 받아 현대인들의 주거 생활에 편리한 현 시대의 새로운 전통 건축 기술을 연구 개발 보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통 목구조 황토집이 원활하게 보급되지 못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화장실과 주방이 실내로 들어오면서 평면 구조는 편안한 현대식으로 바뀌었다지만 외풍外風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윤 소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전통 가옥의 단점은 벽 두께가 8∼10㎝이기에 단열에는 한계가 있다. 흙은 단열재가 아닌 축열재이기에 황토 물성 실험 결과 14㎝ 정도는 돼야 단열 효과를 본다. 벽체 두께는 평수와 기둥 굵기에 의해서 달라지지만, 인방과 인방 사이에 힘살대를 박고 이중으로 외를 엮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벽과 기둥 사이에 발생하는 틈은 기둥에 30㎜ 이상 홈을 파거나 각재를 덧대면 된다."

최근 들어 전통 목구조 황토집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만 만만치 않은 건축비 때문에 시공비가 저렴한 여타 구조로 바꾸곤 한다. 시공비 문제도 전통 주거 양식 보급에 있어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윤 소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집을 지을 때 건축주의 과도한 욕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서구식 목조주택도 ㎡당 100∼150만 원씩 한다. 전통 방식으로 서국식 목조주택과 같은 평면과 모양으로 연출하면 건축비는 10%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목구조 황토집은 너무 고급스럽거나 날림으로 지어서도 안 된다. 그저 예산에 맞춰서 평범하게 지으면 된다. 일례로 기와지붕만 고집하다 보면 자재비와 와공瓦工 인건비가 더해져 아스팔트 슁글 지붕에 비해 지붕 건축비가 10배 이상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즉, 현대식 목구조 황토집(한옥)은 굳이 기와지붕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이다."

전통건축기술인 양성자 과정

요즘은 전통 목구조 황토집(한옥)을 짓는 목수들이 드물기에 그만큼 인건비가 높다. 물론 건축주가 직영으로 집을 지으면 그만큼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주가 전통 목구조 황토집 기술을 익혀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황토집 관련 교육 시설에서는 황토벽돌 조적집이나 목심집, 귀틀집 등에 대해서만 다룰 뿐 전통 목구조 황토집(현 시대의 새로운 한옥)은 외면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건축주 직영으로 공정별로 기술자와 자재를 구입하여 집을 지으면 20∼30%까지 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전통초가연구소에서는 전통건축기술인 양성자 과정을 개설 현재까지 200여 명의 젊은 목수를 배출했다. 교육생들 중에는 전통 목구조 황토집 건축 기술을 배워 자기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80%, 직업으로 택하려는 사람이 20% 정도 된다. 요즘에는 전통 목구조 황토집 기술을 익히려는 직장인들이 늘어나 올 하반기부터 주말반을 개설했을 정도다. 교육 기간은 주 2회 15주 과정이고 교육 내용은 전통 건축 기술 이론 3주, 공구 다루기 및 바심질 요령 등 실습 5주 그리고 이론과 실습을 바탕으로 한 실무 7주의 과정으로 짜여 있다. 개강은 3월과 9월이며 교육 시간은 평일반(수, 목)과 주말반(토, 일) 모두 10시부터 17시까지다.

윤 소장은 "수료생들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기에 5년 차 일반 목수하고 맘먹는 실력을 갖추며, 수업 중 재단에 해당하는 먹매김 기술을 배우기에 도면만 보고도 소요 치수에 맞추어 자재 량을 산출하고 바심질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고 직업으로 선택하려는 사람들은 연구소 내 "사단법인 전통건축기술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전통건축기술인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

윤 소장은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서민주거생활사를 전공했다. 현재 경성대학교에서 전통건축기술을 강의하며 사재를 털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갖가지 형태의 전통 가옥을 손수지어 그 장단점을 파악한 후 이를 보완 연구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연구소를 활용한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만 10억 원 이상이다. 윤 소장은 "기성세대로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금수강산만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주거 환경까지도 함께 전해 주고 갈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전통 목구조 황토집(현 시대의 새로운 한옥) 보급과 전문 기술인 양성을 위해선 교수도 많은 노력과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며 웃는다.田


취재 협조 한국전통초가연구소 052-263-3007, 011-556-2007 www.koreachoga.co.kr
글·사진 윤홍로 기자



Profile
전통 목구조 황토집의 전도사
한국전통초가연구소 윤원태 소장

윤원태 소장은 55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동의공업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뉴커버넌트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으며, 경성대 대학원에서 한국학으로 석사 과정을 통과했다. 이후 중앙일보, 한국일보, 대한경제일보의 기자 생활을 거쳐 현재는 한국전통초가연구소 소장이며 한국전통흙집보급운동본부 회장, 한국전통초가박물관 및 세계 전통 가옥 민속촌 건립 추진 위원장이며 현재는 경성대학교에서 전통 건축 기술에 대한 강의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전통 초가》, 《내 손으로 짓는 황토집 전원주택》, 《2000년대에는 황토집에서 건강하게 삽시다》, 《황토집 따라 짓기》 등이 있고, 시집 《한번만 더 날자꾸나》(공저)와 《내 운명 한 잎 낙엽 되어》 등이 있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씨실과 날실] 전통건축기술인의 요람 한국 전통초가연구소를 찾아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