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전원과 생활

지난 1년간 총 수입이 고작 4백만원 “전원에선 그래도 행복합니다”’


김중래씨 부부는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경기도 안산에 살았으며, 건설업에 종사했었다. 시골로 오게된 배경은 오직 ‘조용한 시골생활이 그리워서’다. 건설업에 종사하다보니 매일 이른 새벽에 출근을 해야했고, 책임자이다 보니 퇴근시간도 항상 밤늦은 시간이었다.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허무감, 무력감, 체력적인 한계 등 이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탈도시를 결심하게 됐다.


사슴이 의외로 기르기 힘듭디다. 성질이 고약하고 서로 잘 싸워 기르는데 애를 많이 먹어요. 반면 염소는 주는 대로 잘 먹고 말도 잘 들어 가축 중에 가장 키우기 수월합니다. 오리와 닭도 기르기는 쉬운 편인데, 튼튼하기로는 오리가 더 튼튼하고, 닭은 장마 지나고 나면 꼭 서너 마리씩 죽어나가요”
전원생활 4년째에 접어든 김중래씨.
이제는 어느 정도 가축의 특성을 꿰뚫고 있을 만큼 가축 기르기에는 일가견이 생겼다. 과거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나 가축을 길러본 경험은 없지만 이 곳에 내려와 살면서 가축에 대해 많은 것을 터득했다.

김중래 조금순씨 부부가 이 곳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에 내려 온 것은 지난 96년. 사촌 형님이 살던 터를 사들여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가축은 생계수단이 아니라 적적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기르기 시작했는데 처음 2마리로 시작한 사슴이 이제는 6마리로 늘어났다. 염소도 6마리가 됐고, 개도 6마리, 그리고 닭과 오리는 각각 16마리가 됐다.

김중래씨 부부는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경기도 안산에 살았으며 건설업에 종사했었다. 시골로 오게된 배경은 오직 ‘조용한 시골생활이 그리워서’다. 건설업에 종사하다보니 매일 이른 새벽에 출근을 해야했고, 책임자이다 보니 퇴근시간도 항상 밤늦은 시간이었다.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허무감, 무력감, 체력적인 한계 등 이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탈도시를 결심하게 됐다.

지금의 터는 96년 당시 사촌형으로부터 8천여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1천2백여평 규모로 이중 80평만이 대지였고 나머지는 모두 준농림전이었다. 구옥을 헐고 지금의 집을 지으면서 2백평을 추가로 대지로 전환해 지금은 대지 면적이 2백80평이 됐다.

건축 경험을 살려 사람들을 고용해 직접 집을 지었다. 건축은 2층 조적조로 H빔으로 골조를 세우고 블록을 쌓아 외벽은 적벽돌로 마감했으며, 내벽은 미장후 벽지를 발랐다. 지붕 마감재는 아스팔트싱글. 실내구조는 1층의 경우 차고, 창고, 방 1개로 구성돼 있고, 2층은 방 2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 등로 구성돼 있다. 건평은 60평으로 1, 2층이 각각 30평씩이며, 건축비는 대략 1억원 정도가 소요됐다.



김중래씨는 이 곳에서의 생활이 벌써 4년째에 접어들었지만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고, 다시 도시로 나갈 생각 역시 없다고 한다. 이 곳에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멍에처럼 짊어져야 했던 도시에서의 이런저런 걱정거리들도 비로소 이 곳에 와서 훌훌 벗어버릴 수 있었다. 마음이 고요하고 편해졌으며,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됐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자연히 책에 손이 가고, 도시에서 1년에 한권 읽을까 말까했던 독서량이 이 곳에선 서른권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마땅한 고정 수입이 없는데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는 않느냐’는 질문엔 ‘돈 쓸 일이 없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일체의 푸성귀와 과일을 자급자족하고 있고, 도시에 살 때처럼 교통비 개념이 없어졌고, 기타 현금이 필요한 경우도 서울에 비하면 아주 소액이어서 돈들 일이 많지 않다는 게 김중래씨의 설명이다. 다만 현금이 꼭 필요한 경우엔 조금 모아놓은 돈을 쪼개 쓰기도 한다.

김중래씨가 지난 1년간 이 곳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대략 4백만원 정도. 그것도 최근 1년을 따져 보았을 때 얘기고 처음 2~3년간은 거의 수입이 없었다. 오리가 낳은 알을 팔기도하고, 가축들이 새끼를 치면 분양을 하는 등 불규칙하게 푼푼이 들어온 돈을 따져보면 대략 4백만원 정도가 된다. 4백만원이라고 해야 노동비는 빼더라도 사료값이다 종자값이다 해서 들어간 돈만 쳐도 사실 4백만원이 훨씬 넘는다.

안산에서 건설업에 종사할 때는 한 달에 4백만원을 벌기도 했는데, 그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액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돈이 그리웠다면 애초 이 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왔어도 벌써 다시 도시로 나갔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중래씨는 “결국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직접 경험해 보니 시골에 와서 돈을 벌려면 그것은 지나친 욕심인 것 같고, 시골에 왔으니 시골 규칙대로 살아간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내 조금순씨는 지난봄에야 합류했다.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그동안 안산에 있었고, 지난봄이 되서야 비로소 같이 살게 됐다. 가진 것 많지 않지만 결코 궁핍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웃음소리 넘치는 행복한 전원생활이 펼쳐지고 있다.田

■ 글·사진 류재청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지난 1년간 총 수입이 고작 4백만원 “전원에선 그래도 행복합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