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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살려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런 원형 흙집 하나쯤 갖고 싶어할걸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김선원 씨는 도시생활의 건조함에 이제 그만 인사를 고하기로 했다. 10년여 동안 계획해온 일. 시골로 내려가는 일. 그 목적지로 고향인 정선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정선에 있는 부지를 알게 되었고 계곡이 맑고 돌이 많기로 유명한 가리왕산 곁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경량 목구조 주택을 본채로 삼고 지난봄 완공한 황토집은 별채로 쓴다. 9.9㎡ 규모의 아담한 이 별방을 그는 본채보다 더 아끼는 눈치다. 입구에 단丹이라는 방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부지가 가리왕산의 단, 즉 배꼽에 해당하기에 지은 이름이라는데 그런 의미도 있거니와 공부와 숙면 등 그의 건강과 내공을 챙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스며들었다. 그는 이 방에서는 깊은 잠을 잘 수 있고 전날 과음을 했거나 피곤할 때 여기서 자고 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몸이 가뿐해진다고 자랑이다.

황토집의 매력에 빠진 그는 조만간 아래 빈 터에다 보다 큰 규모의 화장실 딸린 황토집을 한 채 더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흙집학교 동기생들과 힘을 모아 으랏차

김선원 씨의 흙집은 마을 사람들과 '흙처럼 아쉬람' 동기생들과 함께 힘을 모아 올린 집이다. 지난봄 전원생활에 접어들면서 흙집 짓는 법을 알기 위해 흙처럼 아쉬람에서 7박 8일간의 황토집 짓기 교육을 받았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진행되는 빡빡한 교육과정에 몸은 피곤하였어도 집이 되어 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해보니 '나도 집 지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함께 집 짓기 공부를 한 17기 동기생들과는 지금도 계속 연이 닿아서 집 짓기 정보공유를 하고 있단다. 자신의 흙집을 지을 때에도 동기생들이 일손을 빌려주어 한결 수월하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집을 지을 때도 동기생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실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었는지 팔 걷어부치고 자원봉사해 주었지요. 서울 경기도 경상도 그 멀리서들 왔었지요."

구들 연기를 보았을 때 그 성취감이란…

황토벽돌이 드러나 보이는 벽체에 토속적인 너와 지붕을 인 원형 황토집이 앙증맞다. "집 짓는 게 처음이라 자재 계산을 잘못한 것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예산보다 500만 원 정도 더 들었어요. 기본대로 하자면 9.9㎡ 규모에 1,000만 원 정도 들거예요."

이 집의 시공과정은 주변에 있는 돌과 시멘트 20포를 들여 바닥기초를 하고 국내산 육송으로 골조를 완성한 후 부넘기와 고래의 음양의 조화를 따져 구들을 만들었다. 300장의 벽돌로 고래둑을 놓아 구들장을 얹었다. 구들돌은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곳으로 동해 쪽에 구옥에서 나온 구들돌을 파는 곳에서 3.3㎡당 10만 원 주고 사 왔다. 구들돌을 운반한 후 앓아누웠을 정도로 힘들었다는데 흙집학교에서 알려준 대로 목도(두 사람 이상이 짝이 되어 무거운 물건이나 돌덩이를 얽어맨 밧줄에 몽둥이를 꿰어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로 구들돌을 날라야 해 고생했다 한다.

구들돌을 얹고 진흙과 모래를 이겨 만든 모르타르로 구멍을 메우고 황토와 숯으로 부토를 얹었다. 그 위에 석분을 깔고 다져 뜨끈뜨끈하게 열을 전달해줄 구들바닥을 완성했다.

"구들을 완성해 놓고 처음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연도로 연기가 시원스럽게 빠져나가는 걸 보니까 정말 기분이 좋더라구요."

벽체는 흙처럼아쉬람이 경북 의성 공장에서 생산하는 황토벽돌 약 800장이 소요됐다. 300㎜ 너비의 황토벽돌을 눕혀서 총 13단을 쌓아올렸다. 이중 벽돌쌓기로는 더 많은 공정과 재료가 들어가야 하므로 벽돌을 눕혀 어느 정도 벽 두께를 확보하면서 재료와 시간, 노동을 최대한 절약한 것이다. 내벽은 황토미장 후 한지로 마감했다.

천장은 32개 서까래를 켰고 천장 역시 황토와 숯을 충진해 보온과 통기성을 고려했으며 우리네 시골 정취가 묻어나는 낙엽송 너와로 지붕을 마감했다.

그 안에 있으면 모태에 앉은 기분

김선원 씨는 그의 표현대로 '은둔隱遁과 은회隱晦의 삶'을 누리기 위해 수년간 꼼꼼하게 준비해 왔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직장 다니는 틈틈이 국문학과 농학을 더 공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두 가지 학문은 그의 전원생활에 필수적이기 때문. 국문학은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은 그가 보다 체계적으로 글을 쓰기 위함이고 농학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기 위함이다. 게다가 전원생활을 준비하는 도시민을 위한 교육과정에도 참여할 만큼 꿈을 이루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그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한한하다. 자연속에서 은둔과 은회의 삶을 얻은 덕분이며 모태母胎같이 푸근하게 감싸주는 황토집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田


글·사진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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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제대로 알기(5)] 가리왕산의 '단丹'에 원형 황토집 지은 김선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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