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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금학리 최명규 박순남 부부는 37세 동갑내기다. 남편인 최명규 씨가 흙집을 보고는 '저 집 참 예쁘다'라고 했을 때 부인 박순남 씨는 '뭐, 그러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갓 20세에 미용에 발 딛은 남편, 17년 한길을 걸어왔기에 제법 탄탄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소득도 올리고 있는 터였다. 남편이 처음 귀촌이야기를 꺼냈을 때에도 '설마 그 기술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겠어?'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을 잡고야 말았다.

글·사진 홍정기 기자


서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제법 돈도 만졌다. 손재주 좋다는 입소문은 나이 불문 그를 찾게 만들었고 그는 이런 하루하루가 마냥 즐겁기만 했다. 미용에 입문한 지 15년. 도심생활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고 즐겁기만 했던 일들이 점점 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시를 벗어나 무엇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스믈스믈 올라오고 있을 때 명규 씨는 흙집을 만났다.

"예쁘다, 저런 집에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전부였어요."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저 집에 살면 세상 피곤이 싹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일상에 돌아왔지만 그의 뇌리에는 그때 본 집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마침내 부인에게 운을 뗐다. "우리 흙집 짓고 살래?"


비와 씨름한 집 짓기

이는 곧 귀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서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는데. 순남 씨가 주변에 상의라도 구할라 치면 상대방의 돌아오는 첫마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아니 그 좋은 기술을 놔두고 왜 내려가?"

평소 허튼 소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순남 씨는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흐트러진 모습 한 번 보인 적 없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온 남편 아니었던가. 쉼 없이 이어진 가위질에 인대가 늘어나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자기 일에 열심이었던 남편 아니었던가. 그런 남편이 다 버리고 귀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가자." 대답은 했지만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주위에서도 만류하지, 왜 걱정이 없었겠어요. 처음 흙집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어 두려운 점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나마 아직 애라도 없으니…." 부인의 허락을 얻은 명규 씨는 2006년 9월 흙집 짓기 과정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귀촌의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해가 바뀐 1월, 집에 쓸 나무를 준비하고 흙을 공수해오기 시작했다. 대패로 서까래를 밀고 기둥과 보에 쓰일 나무를 자르고 다듬었다. 그러기를 일곱 달여, 부부는 2007년 8월 25일 입주했다.

명규 씨는 처음 짓는 집이었지만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과 인내만 있으면 집을 올리는 일 자체는 즐거움의 연속이라고. 중간 중간 닥치는 예기치 못한 상황만 잘 대처해 낼 수 있다면 말이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어요. 잘 아시겠지만 흙의 상극이 물이잖아요. 하루 공사가 마무리되면 비닐을 덮어 놓고 철수하는데 잠자고 있으면 집터 부근에 사는 주민에게서 종종 전화가 걸려 와요. '비바람에 비닐이 날리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부리나케 달려 나가죠. 처음에는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이게 다 집 짓는 과정의 하나 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순남 씨가 말한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창가에 앉아 남편과 차 한 잔 마시면서 그때를 떠올리곤 해요. 고생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지나고 보니 다 이야깃거리가 되고 집을 소중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공기가 틀려도 너무 틀려요"

서울에서 자란 부부의 귀촌 생활은 수고로울 수밖에 없었다. 문 밖만 나서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곳이 아니다. 맘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4개월이 조금 모자란 시간, 그래서 부부는 '포기'를 배웠다고 했다. 당장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하고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 부부는 없으면 없는 대로 조금씩 부족하게 사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생기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부부는 삶의 여유가 생기고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진 기분이란다.

"흙이 좋아 흙집 짓고 살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수고로움이 있어요. 처음에는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이 수고로움을 즐기게 되면 삶이 달라집니다. '빨리 빨리'가 없어지거든요. 이것만으로도 삶이 얼마나 여유로워지는데요."

이제는 흙집 예찬론자로 돌아선 순남 씨의 말을 들어보자. "아파트에 살 때에는 잠을 깊게 자질 못했어요. 조금만 시끄러워도 깨기 일쑤였지요. 여기 오고 나서는 그런 게 없어요. 눈 뜨면 아침이예요. 몸도 개운하고. 참, 냄새도 안나요. 아무리 냄새가 심한 음식을 해도 조금만 지나면 신기하게 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살다 보면 이것저것 고쳐야 할 것도 많고 손 봐야 할 것도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딱히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으니까요."

최명규·박순남 부부 집은 이곳 명물이다. 집 짓는 과정부터 소문을 듣고 구경 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는 이들까지 생겼다. 집을 보고는 금학리에 진행 중인 테마마을 조성사업과 관련 명규 씨에게 흙집 민박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농촌진흥청의 권유도 있었다. 거기다 흙집을 짓는 이들을 도와주는 일도 계속해야 한다. 농사는 물론이다. 이래저래 서울에서 만큼 바쁜 나날이 부부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부부는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내 손으로 지은 세상에 둘도 없는 집이 부부의 노곤한 몸을 감싸줄 것이기 때문이다.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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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제대로 알기(5)-2] 황토집 짓고 귀촌한 최명규, 박순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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