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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가 직접 쓴 건축일기 2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35평 단층 목구조 황토벽돌집

드디어 터파기가 시작되었다. 보일러 난방과 구들방이 결합되었기에 기초는 콘크리트 기초 방식을 채택했다. 특이한 점은 일반 주택처럼 줄기초 방식으로 하지 않고, 이중기초(확대기초)를 한다는 점이었다. 기초에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추석전에 기초공사가 완료되어 연휴 기간동안 자연적으로 양생이 되었다고 한다. 시기가 잘 맞았다. 다른 현장의 일을 끝내고 목수들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뼈대(골조)가 세워졌다.
박광열 이영미씨 댁을 찾아간 날은 폭설이 내려 설경이 장관을 이루던 날이었다. 이 집은 지난해 여름부터 공사에 들어가 지난 12월 완공한 35평 단층 목구조 흙집으로 설경에서 더욱 빛나 보였다. 건축주 박광열씨는 건축 계획에서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느낌을 그때그때 상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박광열씨의 건축일기를 정리해 실었다.


사십대 중반의 나이, 조금은 빠를지 모른다. 아직도 도시에서 해야할 일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눈을 잠시 돌려보니 각박한 도시의 숨막힐듯한 일상이 지겨웠다. 특히 아내는 시골에 대한 그림움이 사무쳤다. 땀흘리며 농사를 지으면 모든 병이 다 나을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터를 찾았다 - 2000년 4월

일요일이나 연휴가 끼면 어김없이 아내와 나는 집터와 농사지을 땅을 찾아 다녔다. 아직은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출퇴근이 가능한 서울 가까이길 바랬다. 1년여, 이제는 그만 포기하자고 지쳐 떨어졌을 때 우리가 찾는 땅이 나왔다. 땅은 ‘임자가 따로 있다’고 했던가? 용인시 백암 자연부락의 초입에 자리한 남향받이 터는 일반 전원주택지처럼 자연 경관이 빼어나진 않았지만 농사 지으며 살기엔 편안한 자리 같았다.

운명적 만남 - 2000년 5월

우선 땅을 계약해 놓았으니 집을 지을 건축 회사를 정하는 일이 남았다. 시골에 내려올 생각을 하며 땅을 구할때부터 흙집을 짓자고 정해논 터라 다른 고민은 없었지만 흙집 전문 시공업체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며가며 들려본 흙집들은 대부분 건축주 직영으로 지은 집이었고, 토속적인 향수는 있으나 실용적이지는 못했다. 전원주택 잡지를 뒤지면서 소개된 흙집들을 찾아 다니던 끝에 이제는 포기하고 일반 콘크리트 집을 지어야 할까보다고 생각하고 있던 5월 초파일 늦은 오후였다.

행인 흙건축이 시공 분양중인 솟대전원마을의 흙집을 보았다. 첫 느낌이 좋았다. 흙집이면서도 실용적이고 소박한 멋을 느끼게 했다. 상담중 흙집의 구조 원리와 자재선택, 시공 방식에 대한 자신있는 태도에 더 큰 믿음이 갔다. 이 운명적 만남이 오늘의 집을 있게 하였다.

가슴 철렁한 농지전용허가 - 2000년 6월

집을 짓기 위해선 길이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구옥이 있는 터까지를 함께 매입했다. 매입한 농지의 맨 뒷부분에 집을 짓고자 했던 것이다. 집 앞에 텃밭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는 매입한 땅까지 연결되는 약 30m의 비포장 현황도로 였다. 구옥이 있으니 그 앞까지 콘크리트 포장을 하면 현황도로로 인정받고 그 나머지만 농지전용 허가를 들어 가자는게 주변 의견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지목이 농지일 경우 콘크리트 포장을 하였어도 현황도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입로 초입만 현황도로 포장을 하고 농지전용허가를 신청하였는데 이것도 보완이 나왔다. 토지사용 승낙서를 첨부하라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도 진입도로 부분의 소유자에게 토지사용 승낙을 받아 문제는 없었지만 시기마다 해당 관청의 허가 조건이 달라져 낭패를 당할 뻔 하였다.

건축설계, 그리고 공사계약 - 2000년 7월

농지전용 허가가 나기까지 지루한 한달이 지나갔다. 내가 한 일이란 별로 없는데 벌써 진이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제 집의 밑그림이 만들어지고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 오고가자 긴장과 함께 힘이 솟았다. 아내는 군불때는 구들방을 본채에 넣기를 원했다. 안방, 서재(작은방), 구들방+정자, 남향으로 열린 거실의 밑그림이 완성되고 두 번의 보완을 거쳐 설계가 확정되었다.

한옥식 목구조에 황토벽돌의 벽체, 황토미장 등 기본적인 사양이 확정되고, 지붕재에 대한 고민이 남았다. 지붕은 솟대전원마을의 세련된 아스팔트 싱글도 괜찮아 처음 설계는 싱글 지붕이었지만 주변의 의견을 들어 계약 당시 다시 기와지붕으로 변경하였다. 황토 기와집 35평, 별도의 창고 10평(일반 벽돌)을 포함하여 행인 흙건축과 2000년 7월 말 공사 계약을 체결하였다.

택지 내 수맥, 근심거리가 되다 - 2000년 8월

경계 말뚝을 박고, 택지의 터를 만들즈음 친척 한분이 택지 중앙으로 수맥이 흐른다는 말씀을 하셨다. 집안에 수맥이 지나면 우환이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은터라 아내의 근심이 커졌다. 시공사가 수맥을 진단한 결과 구들방이 배치된 자리로 넓게 수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아내의 근심은 더 커졌다. 설계를 변경할까? 아니면 수맥 차단의 조치를 해야하나 몇일 몇날을 고민했는데 ...

시공사는 담담했다. 지하수를 파야 하는데 건축물 옆 수맥이 지나가는 자리에 대공을 파면 수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사족으로 달면 ‘마음의 병’이니 게의치 말라는게 시공사의 얘기였다. 하여튼 결과는 시공사의 말처럼 되었다. 수맥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마음의 근심을 덜었다.

장마 지나고 골조가 올라가다 - 2000년 9월

여름 장마가 계속되었고, 시공사가 다른 곳에서 짓고 있는 일이 길어져서 착공 일자가 약 보름정도 늦어졌다. 8월 16일 드디어 터파기가 시작되었다. 보일러 난방과 구들방이 결합되었기에 기초는 콘크리트 기초 방식을 채택했다. 특이한 점은 일반 주택처럼 줄기초 방식으로 하지 않고, 이중기초 (확대기초)를 한다는 점이었다. 기초에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추석전에 기초공사가 완료되어 연휴 기간동안 자연적으로 양생이 되었다고 한다. 시기가 잘 맞았다. 다른 현장의 일을 끝내고 목수들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뼈대(골조)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계획에 없었으나 나무 기둥이 설 자리에 간이 주춧돌이 놓여졌다. 주춧돌을 고정하고 철근 앙카로 목기둥과 딱 맞추어 내는데 역시 기술자들은 다르구나 하는 찬사가 흘러나왔다. 정통 한옥의 가구식 골조방식은 아니었지만 암·수 홈을 파 기둥과 보가 결합되어 골조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집의 뼈대가 튼실함을 보여주었다.



꿈을 꾸듯 드러낸 지붕선 - 2000년 10월

일이 바빠 주말에만 현장을 나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주중에 현장을 다녀온 아내는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연발한다. 이제 지붕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가는 모양인데 집이 너무 웅장해 보여 동네분들에게 위화감을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그런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처음 솟대전원마을에서 본 지붕선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지붕 소재가 기와로 바뀌면서 서까래와 부연으로 지붕의 두께감이 살아났고, 처마의 대나무 사이딩이 깔끔한 루바로 바뀜으로써 고급화된 느낌을 주었다. 믿음은 준만큼 돌아오는 것일까? 시공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볼 뿐인데, 처음 예상을 넘어 꿈을 꾸듯 집의 형체가 만들어져 갔다.

황토로 속단장을 하다 - 2000년 10월 중순∼11월 말

40여일에 걸친 목수일이 끝나자 바로 기와공사가 이어졌다. 예전처럼 흙으로 채워 기와를 얹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상을 걸고 못으로 기와를 고정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은 한달여의 기간이 걸리긴 했지만 순식간에 지나갔다. 일주일 만에 현장을 가보면 흙벽돌 쌓기가 끝나 있었고, 또 일주일이 지나 가보면 내부의 천장과 미장공사가 끝나 있었다. 또 일주일이 지나 가보면 구들방이 놓여지고 황토방까지 끝나 있었다.

그 사이 사이 정화조 공사와 택지 경계로 자연석 쌓기가 진행되었고, 어느새 굴뚝과 아궁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기초 콘크리트엔 인조석으로 마감이 되었다. 창 틀만 있던 자리에도 창문들이 달리고 화장실도 큼직한 타일로 마감이 되었다. 하나의 일이 끝나고 그 다음 일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한지의 은은함과 창살로 비치는 햇빛 - 2000년 11월 말

기본 일은 다 끝난 듯 한데 왠지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사 날짜도 잡혔는데 조금은 마음이 불안했다. 그런데 11월 마지막주 일요일, 다른 느낌의 집을 만났다. 은은한 한지가 차분한 실내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목등으로 된 전등이 집안 분위기를 바꿨다. 온돌마루를 깐 거실엔 하자의 우려가 있어 시공사가 황토미장을 피하였으나 아내가 고집을 부려 황토로 마감했다.

대신 접착식 온돌마루가 아닌 강화마루로 마감해 하자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준건 조선살에 한지 아크릴이 들어간 창이었다. 한옥식의 거실창에 은은히 감도는 햇살은 드디어 집이 완성되었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이사 첫날밤을 보내다 - 2000년 12월 6일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사 날짜를 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공사 막바지에 그대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이 들어오는 날 대문이 달렸다. 옛 대문을 응용하여 장식까지 얹은 대문은 집의 완성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정자와 쪽마루, 구들방과 아궁이, 굴뚝... 그리고 대문,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첫날밤을 보내고 아직 익숙치 않은 생활에 정리되지 않은 주변도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랬던가. 집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가꾸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이제 겨우 터를 잡고 집을 지었을 뿐이지 않는가?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아내와 얼마나 많은 밤을 꿈같이 그림을 그렸던가? 시공사의 고민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지만 집이 완성되어 가자 미쳐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생겨났다. 10평의 창고를 주택 용도로 개조한 결과 이것 저것 수납하고 쌓아둘 창고가 부족했다. 구둘방과 연결된 아궁이 위에 옛날식 다락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장 크다. 연기가 잘 빠지도록 아궁이 주변을 터 놨는데 밤에 군불을 지피자니 너무 추웠다.

임시방편으로 막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고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내는 다용도실의 용도가 단순한 세탁실 기능만이 아니라 음식물, 과일, 채소를 보관할 수 있는 간이 저장소 역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그 아쉬움은 또 살면서 채워가야 할 나와 아내의 몫일 것이다.

봄이 기다려진다.

이제 봄이오면 조경수와 과실수를 심을 것이다. 친척 아이들은 벌써부터 야단이다. 자기들이 과실수 하나씩을 사와 심는다고.... OK 목장처럼 둘러쳐진 나무 울타리마다 수세미와 박이 열릴 것이다. 나와 아내가 뿌릴 씨앗들이 여름을 나고 가을걷이 할 때 아마 그 기쁨은 더욱 더 크고 빛나지 않겠는가 !田
■ 글 박광열/사진 류재청

인터뷰/방태호 행인흙건축 시공이사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칭찬이다.

집을 지어주는 것을 업으로 삼은지 20여년. 목수·현장소장·시공이사로 살아오는 동안 모처럼 기분좋은 건축주를 만났습니다. 시공사가 먼저 믿음을 주어야 하겠지만 건축주가 보여주는 믿음과 신뢰, 칭찬은 일하는 모든 이들을 신명나게 만듭니다. 지금은 건축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은 누구나 한마디씩 거들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휘둘리다 보면 해 놓고도 찜찜한 구석이 많이 남습니다.

집터와 건축물의 향, 구조와 평면배치, 그리고 마감재까지 평당 얼마짜리로 환산되기 어려운 어울림이 있어야 합니다. 따로 따로 떼어 놓으면 좋아 보일지 몰라도 하나로 합쳐지면 어색할 수 있는 것이 집입니다. 집에는 그 집에 맞는 모양과 색깔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건축주들은 기다림에 익숙치 않습니다. 조바심을 내고 주변의 이러저러한 이야기에 솔깃합니다. 그러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지지요. 이것이 계속되다 보면 마지못해서 일하는 꼴이 됩니다.

이 집은 건축주의 마음에 홀려 일하는 사람들의 신명으로 지어졌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내준 믿음, 하자로 트집잡기 보다는 보완하고 가꾸려는 마음 씀씀이, 언제나 일한 사람들에게 차한잔 대접할 수 있는 푸근함... 그래서 집은 건축주와 시공사가 함께 만드는 것이라 했습니다.

■ 건축정보


위치: 용인시 백암면 박곡리
부지면적: 준농림전 8백30평(이중 2백30평 대지 전용)
건축유형: 단층 황토벽돌집
건축구조: 본채 - 목구조 기와지붕 별채 - 조적조 싱글지붕
공사기간: 2000년 8월16일(착공일)~12월 13일(준공일)
건축면적: 본채 35평, 별채 10평
실내구조: 방 3, 주방, 거실, 화장실
식수: 지하수(지하 150m)
난방: 심야전기 보일러
■ 특징
- 구들방과 정자가 본채에 결합된 35평 건축 설계
- 목구조 한옥방식의 기와지붕
- 기초 콘크리트 위 간이 주춧돌 시공
- 보에 매단 한옥식 창호(처짐 방지)
- 서까래·부연 이중처마, 루바 사이딩
- 옛날 대문 시공

■ 공사비 내역
- 진입로 포장 및 구옥 철거: 3백50만원
- 농지전용 토목측량비 및 세금: 8백만원
- 지하수, 부지조성, 석축공사: 1천2백만원
- 본채 건축비: 1억 8백만원(평당 3백10만원)
- 별채 건축비: 1천7백만원(평당 1백70만원)
- 총공사 금액: 1억4천8백5십만원

■ 설계ㆍ시공 : 행인흙건축 (031-335-8133) www.hang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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