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입주해서 3년이 지난 요즘에도 우리 집에는 심심치 않게 방문객들이 원근거리를 마다않고 찾아오시는가 하면 수시로 전화로 집짓는 데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는 분들이 많다. 건축주가 직영하든 건축업체에게 위탁하든 어떻게 하면 일생에 한 번뿐인 집 짓기를 잘 할 수 있을지 큰 숙제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안다. 잘 지은 집은 아니지만 한옥 대목수로 집 짓는 일을 하다가 내 집을 3년 동안 직접 지으면서 경험한 지식들은 나처럼 집을 직접 지으려는 분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시작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고, 건축업체에 위탁하려는 분들에게는 속지 않고 제대로 지을 수 있는 안내가 될 수 있으리라.

황인찬


2003년에서 2005년까지 3년 동안 이곳 덕유산자락에서 집 지은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세 가지를 꼽으라면 옷 짓기[衣] 밥 짓기[食] 집 짓기[住]일 것이다. 밥짓기는 안사람이 주로 해결해 주기 때문에 나는 거의 초보수준에 불과한 반병신이다. 옷 짓기는 너무 쉽고도 편리하게 구해서 입을 수 있는 시대여서 그런지 더 그렇다.

세 가지 중에 다행히 집 짓기 하나만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니 그리 내세울 것도 못된다. 그럼에도 내 집 짓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려는 이유가 있다.

입주해서 3년이 지난 요즘에도 우리 집에는 심심치 않게 방문객들이 원근거리를 마다않고 찾아오시는가 하면 수시로 전화로 집 짓는 데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는 분들이 많다.

잘 지은 집은 아니지만 한옥 대목수로 집 짓는 일을 하다가 내 집을 3년 동안 직접 지으면서 경험한 지식들은 나처럼 집을 직접 지으려는 분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시작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고, 건축업체에 위탁하려는 분들에게는 속지 않고 제대로 지을 수 있는 안내가 될 수 있으리라.

한옥과 황토로 집 짓기를 하게 된 것은 가장 생태적인 주택을 찾다가 보니 귀결된 것이기에 다른 방식의 주택과 어느 것이 더 좋다는 비교 우위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한옥 목수로 사찰 재실 살림집을 짓는 데 목수일을 여러 번 해봤지만, 내 집은 단 한 번뿐인 집 짓기이기에 지금 돌아보면 아쉬운 부분도 많다. 글을 써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부족한 부분들도 밝혀질 것이다.

"Denken ist Sein- 생각하는 것이 바로 존재하는 것이다"

근세철학에서 현대철학으로 넘어오는 봉우리에 서있는 철학자 헤겔의 대명제다.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합리론은 낡은 철학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 명제가 어떻게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서' 실현되었는지 내 집을 3년간 지은 이야기를 통해서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도시생활을 하는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들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회색빛 시멘트 도시를 떠나서 초록의 대자연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자식교육, 직장, 경제적인 문제나 혹은 안사람의 반대 때문에 그 꿈을 잠시 접고 사는 것뿐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불과 몇 해 전까지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으니까…….

마흔 살이 넘도록 총각으로 살아오던 나는 필요에 의해서 대학을 두 번 다녔고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거의 공부만 하며 살아왔다. 박사과정 5학기를 마칠 무렵 집사람과 어떻게 운명적인 인연이 닿았는지 잠시 그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서울에서 약국을 10년 이상 운영하던 그녀는 당시에는 조제약을 제조할 수 있는 시기였기에 제법 운영을 잘 했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약사로서 환자의 건강보다는 돈벌이로 전락하는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더 마음에 갈등을 일으킨 요인은 약물의 오남용에 대한 심각한 딜레마였다고 한다.

요즘 감기약의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도되는 것을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양약이라면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거부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 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감기에 걸려 약을 조제해 달라고 찾아온 고객에게 약을 팔 생각은 하지 않고 '집에 가서 푹 쉬면서 콩나물국에 파뿌리를 넣어서 끓여 드시라'고 처방을 하니 고객 입장에서는 황당하니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집사람은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서너 평의 약국에서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느끼고 어디 시골에 가서 땅 1만 평을 사기로 결심했단다. 시간 날 때마다 부동산업자들의 소개로 서해안부터 강원도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나와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처녀가 부동산 중개하는 남자들과 깊은 산속을 다니는 것을 불안하게 본 나는 동행인으로 나서게 되어 우리는 땅을 구하는 대신 아기를 갖게 되었다.

아기가 생기게 되자 나는 더 이상 공부만 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머리로 먹고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손과 발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실존적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약사인 아내는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전공을 포기했고 내가 생활을 책임져야 하니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게다가 아들이 태어나고 잠시 서울 한 아파트에서 살면서 어릴 적 살던 시골의 정취가 정서적으로 아이의 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절실하게 느끼면서 어서 도시를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연의 품에 안길 미래를 꿈꾸며

우리 나이 또래들이 대부분 그렇듯 내가 태어난 곳 역시 전형적인 시골이고 그곳에서 성장하며 살았던 나는 얼마 되지 않은 인생살이 동안 어릴 적 경험했던 풍요로운 자연환경이 주었던 자산에 감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늦둥이 아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자연을 마음껏 누리도록 해 주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으로 전통한옥 목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내도 내 생각에 동의했기에 쉽게 목수일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사실 전망 없는 인문학 전공은 배곯는 현실이니 셈 빠른 아내도 못 이기는 체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가장으로서 가솔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과 동시에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은 일, 내 집을 직접 지어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업으로 한옥 목수는 매력적이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시골 목수여서 틈틈이 배워놓은 일은 목수 일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 다시 끌과 톱 그리고 망치를 잡으니 비로소 내 남은 삶을 투자할 만한 일거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목수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서 직업적으로 목수일은 그리 많이 해보지 않았다. 한옥 짓는 일을 하러 이곳저곳을 몇 년간 다니면서 나의 관심은 돈벌이보다 내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전통한옥으로 집을 짓되 우리의 경제상황에 맞게 그리고 내 손으로 직접 지을 수 있는 집은 어떤 집일까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시간들이었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나의 큰 뜻을 믿고 묵묵히 참아준 아내가 있어서 꿈을 이룰 수 있었지, 그렇지 않으면 '생각하는 것(Denken)'만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내 집을 직접 내 손으로 짓는 일(Sein)'이었다.田

<다음 호에 계속>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하늘재 이야기 I] 내 집은 내 손으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