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이제 가면 언제오나 오실 날을 일러 주오~"
선소리꾼의 메기는 소리에,
"에헤 에헤에에 너화 넘자 너화 너~"
상여 멘 상여꾼들이 뒷소리를 받는다. 그 뒤로 상주가 차마 고개를 못 들고, 마을 사람들이 구슬프게 늘어진다. 상여에 올라 탄 망자亡者는 자신을 위해 들려주는 마지막 이생의 노래에 귀 기울이고 이생의 미련을 접으려 한다. 정든 땅을 밟는 마지막 걸음이 무겁다.
경기도 일산을 떠나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에 귀촌한 박일문 씨도 주민의 일원으로 상행을 뒤따른다. 도시에서는 익숙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익숙한 풍경이 될 것인가 생각하면 기분이 착잡하다.
"시골이 다 그렇겠지만 20가구 남짓한 이 마을에는 젊은이는 다 떠나고 50여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고 있어요. 아이들과 젊은이를 찾아보기 힘들지요. 마을을 지탱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마저 세상을 떠나시고 나면 이 마을에는 빈 집만 남고, 결국 죽은 마을 죽은 농촌이 되는 거지요."

 

 

시골 폐교에 둥지 튼 사연

 

대기업 홍보 책임을 담당하던 박일문 씨가 농촌 사회에 확대경을 들이댄 계기는 기존 관행과 도시 삶의 팍팍함을 벗어던지고 친환경제품 유통 회사를 차려 생의 전환점을 가진 것이었다. 도시에 사무실을 차린 그는 인터넷쇼핑몰 이름을 '내추럴존(Naturalzone-자연지대)'이라고 지으면서 명칭과 사업 내용과도 부합되는 곳으로 사무실 이전을 계획하게 됐다. 수도권 접근성이 좋기에 도시인의 발길이 잦아 도시 못지않은 인파와 자연 훼손이 진행된 경기 강원 지역을 지양하고 그의 고향이 있기도 한 전라도 지역 위주로 적당한 부지를 살폈다고 한다. 비용 절감과 접근성이 유리하다는 장점을 근거로 초등학교 폐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1994년 이래 생겨난 폐교가 전국에 5000곳을 훌쩍 넘으니 폐교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년간 방치돼 마치 도깨비라도 나올 것 같은 흉물스런 모양새나, 장기간 깃들어 살기에는 부족한 입지 조건 등으로 마땅한 폐교를 만나는 일에 꽤 진땀을 뺐다.
부지 선정 시 주안점을 둔 것은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룬 자연조건이 좋은 곳, 도로와 어느 정도 근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은 곳, 마을과 적당히 거리를 둬 아늑한 기운이 감도는 곳, 바로 그러한 삼박자를 절묘하게 갖춘 곳이 그가 2003년 매입한 구 연평초등학교 부지였다. 지역 주민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땅이었지만 그의 눈엔 금싸라기 땅임에 분명했다. 무려 폐교 100곳 이상을 둘러본 후에 얻은 수확이었다.

 

 

주민들과 협력하여 농촌체험마을로 가꾸다

 

1999년 문을 닫은 연평초등학교는 박일문 씨와 그 직원들에 의해 2003년 새롭게 단장되기 시작했고 이듬해 '하늘내 들꽃마을'이라는 새로운 현판을 내걸었다. 하늘내는 마을 진입로를 따라 흐르는 천천천天川川을 우리말로 부른 것이다. 그리고 들꽃마을이라는 이름처럼 지천에 각양각색의 들꽃이 널브러진 자연의 얼굴 그대로를 간직한 아름다운 마을 모습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모래밭 운동장 대신 푸른 잔디 벌판이 생겼고 6개의 교실에는 바닥을 온돌마루로 개조하고 창문에는 패브릭 커튼을 달아 시골학교 교실의 정취도 살리면서 아늑하도록 단체숙소로 꾸몄다. 박 씨는 마당에 황토집을 짓기 위해 남원 봉성황토마을에서 황토집 건축 기술도 전수 받았는데 함께 기술을 익힌 동료들의 손을 빌려 손수 소규모 원형 황토집을 지었다. 처음엔 3동을 지었다가 뜨끈한 구들방 인기가 좋은 걸 보고 추후에 2동을 더 지었다.
애초 박 씨의 사무실과 인터넷쇼핑몰 회원들을 위해 꾸민 '하늘내 들꽃마을'은 농촌체험마을 프로그램으로 사업이 확장되면서 천천면 연평리 신전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그의 사무실은 체험마을 본부, 도농교류센터로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무진장 주름살 펴지다

 

'마을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시골엔 이제 젊은 사람이 없고, 아이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들꽃마을을 운영하고부터 도시에서 젊은 사람들이 마을로 와주니 자기들은 그 젊은 사람들을 대접하고, 만나는 것이 정말 좋다고 하셨다. 정이 그리워 뭐 한 가지 싸주고, 더 주지 못해 안달이 난 분들이셨다. 각자 싸가지고 온 것들만 해도 제법이다. 난 묵은김치를 얻어 싸가지고 왔다.' ( '하늘내 들꽃마을' 방문객 후기 중 일부 )

 

 

변화된 것은 폐교뿐만이 아니었다. 20여 가구로 구성된 마을 전체가 달라졌다. 그 변화에 물꼬를 튼 것은 박일문 씨였다. 그는 들꽃마을에 숙박시설이 마련되자 도시 사람들을 초대했다. 하늘내 들꽃마을이 농림부 주최, 한국농촌공사 도·농교류센터가 주관한 '농촌마을가꾸기 경진대회'에서 최우수 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된 2006년에는 방문객 수가 이미 1만 명을 넘어섰다. 올해는 3만 명 정도다.
"한번은 마을을 돌다가 할아버지가 밭에서 고구마 캐는 걸 우연히 봤어요. 할아버지께 그 고구마 캐서 뭐에 쓰냐고 여쭸더니 그냥 식구들 먹는다고 그러더라고요. 속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시사람들이 봤으면 아주 좋아할 거였으니까요. 해서 할아버지께 말씀 드렸죠. 이제는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이 심어서 식구들 몫은 챙기고 나머지는 저한테 파세요라고."
이런 방식으로 들꽃마을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밭을 갈아엎어서 호박고구마를 필두로 각종 농작물 생산량을 늘렸다. 박 씨의 쇼핑몰을 통해 안정적으로 유통된 덕분에 농가마다 소득이 늘었고 박 씨는 가까이서 믿을 수 있는 농산품을 확보할 수 있기에 상호 윈-윈(Win-Win)의 모멘텀을 얻게 된 것이다.
어디 농산품뿐인가. 들꽃마을 본부 내 숙소가 부족해지자 농가에서 민박을 치게 되었고 농촌체험 프로그램 제공을 위해 각 농가에서 역할을 분담해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다. 농촌체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농작물 수확 체험-처음에는 호박고구마 전량을 쇼핑몰에서 판매했는데 요즘은 60% 이상이 수확체험에서 팔려나간다고,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한다는 경운기 타고 마을 한바퀴, 손두부 만들기, 천연염색 체험, 사물놀이 배우기, 물고기 잡기, 미니솟대와 나무곤충 만들기……. 들꽃지기 박 씨도 진행에 가담한다. 밤하늘 관측과 야생화 관찰.
이런 연유로 이곳에는 투잡(Two Job, 겹벌이)족이 많다.
사실 시골이 대체로 그렇듯 원주민의 텃세로 박 씨는 정착 초기에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에야 그들에게 수익도 생기게 하고 일도 만들어 주는 등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어줬으니 '우리 젊은 양반'하며 반기는 소리가 절로 나지 않겠는가.


*

 

들꽃마을 본부에 붙은 '도농교류센터'라는 말이 무색치 않을 정도로 박일문 씨는 '귀농인 돕기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마을에는 벌써 귀농한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고령화가 진행되던 마을이 다시 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대강은 이렇다. 첫째, 귀농을 원하나 농촌에서 뭘 해야 할지 하는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마을 사무장직에 임명해 월급으로 걱정을 덜어준다. 둘째, 농지를 임대해 주고 농사법을 익히게 하면서 자립을 돕는다. 셋째, 어느 시점에서 수확체험을 귀농인의 농가에서만 하도록 지원한다. 이렇게 3년간 지원 체제가 이뤄진다. 21세기형 '새마을 운동'의 일면을 보는 듯하다. 들꽃마을의 귀농인 돕기 프로젝트가 전국 농촌에서 대거 펼쳐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자못 궁금해진다.

 

 

- 박지혜 기자 사진 서상신 기자 취재협조 하늘내 들꽃마을 063-353-5185 www.slowzone.co.kr -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골폐교에 둥지틀고 도시 - 농촌짝짓기 : 장수 ‘하늘내 들꽃마을’ 박일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