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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지은 집

나무 다듬고, 흙벽돌 찍어 손수 지은 2층 목구조 황토집

처음 황토집을 짓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조그만 초가집처럼 아담하게 지으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욕심이 생겨 당초 계획보다 훨씬 좋은 집이 되었다. 남편은 원래 성격도 강인하고 추진력도 있다. 또한 여행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황토집이나 통나무집을 많이 구경했다. 직간접의 경험을 통해 황토의 성질과 특성을 이미 많이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의 갈등도 없이 이미 주택의 유형은 흙집으로 결정했다.

최정문 장경희씨 댁은 2층 목구조 황토집이다. 여느 집과 달리 그야말로 건축주의 땀과 노력이 그대로 밴 건축주가 직접 지은 집이다.
최초의 구상은 물론,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구해다 마당에 쌓아 놓고 다듬는 일 그리고 흙벽돌까지 직접 틀을 짜서 찍어내기까지....

물론 부분적으로 목수나 다른 인부들의 손 길이 닿기는 했지만 고도의 기능을 요구하는 전문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모든 작업을 손수 진행했다.

건축 과정과 그간의 느낌은 담은 장경희씨의 글을 싣는다. 우리 집은 현충사 옆 언덕의 자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으로 백암교회와 마당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이 땅을 사게 된 동기는 항상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온양 시내와 가까운데다 날이 좋으면 온양 시내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 때문이었다.

그동안 남편과 나는 좋은 땅을 찾아 여러 곳을 다녔지만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 지금의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우리 기준에서 보았을 때 땅값이 만만치 않아(평당 15만원) 여러 번 망설였지만 결국 위치가 마음에 들어 구입을 하게 되었다. 땅의 평수는 5백평이 조금 안되었다.

건축일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마당 한쪽에 10평짜리 통나무집을 짓고 임시 살림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과 내가, 그리고 부분적으로 목수나 인부들의 손을 빌려 지은 집이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나무를 구하는 일부터, 마당에 쌓아놓고 껍질을 벗기며 다듬는 일까지, 그리고 흙벽돌조차 손수 틀을 짜서 일일이 찍어 낸 것이다. 집을 짓기 위해 임시로 지은 통나무집 역시 우리 두 내외가 손수 지었다.

우선 경사가 심해 15톤 트럭 1백50대 분의 흙을 쏟아 부어야 했다. 흙 반죽을 해서 틀을 짜서 흙벽돌을 직접 아저씨들과 함께 만들었다. 나는 이 때부터 일하는 아저씨들 새참과 점심을 준비해야 했다.

그때 당시엔 물도 없어 교회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고, 부엌도 없고 싱크대도 없는 정말 피난민 같은 생활이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넉넉지 못한 우리 실정에서 인건비를 줄이고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곳에 땅을 마련하고 집을 짓겠다고 왔을 때가 우리 아들 훈서 3살 때였다. 마땅히 맡길 사람도 없던 터라 야생마처럼 흙 속에서 흙장난을 하며 자라야 했고, 얼굴은 새까맣게 변했고, 아저씨들 틈에 끼어 함께 새참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젓가락질까지 배웠다

언젠가는 삽질 흉내까지 내기도 했는데, 이 때는 정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몰랐다.처음 황토집을 짓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조그만 초가집처럼 아담하게 지으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욕심이 생겨 당초 계획보다 훨씬 좋은 집이 되었다.


남편은 원래 성격도 강인하고 추진력도 있다. 또한 여행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황토집이나 통나무집을 많이 구경했다.
직간접의 경험을 통해 황토의 성질과 특성을 이미 많이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의 갈등도 없이 이미 주택의 유형은 흙집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방바닥에는 참숯과 맥반석을 깔았으며, 내부 벽면은 한지를 바르고 외벽도 천연 황토로 마무리했다.

아저씨들은 여기에 무언가를 인공적으로 섞어야 된다고 했지만, 남편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황토집을 원했다.

흙 반죽하는 것과 여러 가지 재료 준비하는데는 일반 건축보다 복잡했고, 모든 것이 더디고 인건비도 훨씬 많이 들었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의 밥짓기 생활도 훨씬 힘들었다.

겨울이면 매서운 바람과 강추위에 떨어야 했고, 여름이면 한바탕 모기와의 전쟁도 치러야 했는데 나중엔 정말 모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아직 시골 생활에 적응이 되지 못한 탓에 남편을 원망하며 울며 후회했던 날들도 있었다. 남편은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몸소 함께 일을 했고, 나는 나대로 쉴 틈 없이 밥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그런 고생 끝에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도 특이한 황토집이 완성되었다. 완전 한옥도 아니고, 현대식집도 아니다. 아직은 젊은 나이라고 할 수 있는 30대 중반에 나의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유산을 물려받았거나 돈이 많아 지은 것도 아니다. 중간에 행정적인 문제 때문에 준공이 더뎠지만 힘들었던 만큼 집에 대한 애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전구며 작은 못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손수 준비하며 지은 집이기에 우리 부부에겐 더없이 소중한 집이다. 이 집을 통해 우리 가족은 그동안 지쳤던 육신이 새 힘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일반집과 우리집의 차이라면 우선 벌레가 많이 생긴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청소를 하지만 거미나 여타의 곤충들이 끊임없이 생긴다.

벌레가 생기는 것은 그만큼 자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곤충들이 마음놓고 살수 있는 곳이라면 사람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의 일은 지금 생각해 보면 모험이었다. 모르고 시작했고 일을 진행하면서도 그 것이 모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런 상황들을 미리 알고 있었고, 이 것이 모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진행도중 내내 움츠러들었을 것이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3년 동안의 세월을 회고해 보면 ‘희노애락’의 모든 경험을 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를 결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젊기에 조금 바빴고 지쳤을 뿐이다.

우리 가족은 황토집을 짓고 살면서 자연을 거스르는 자가 아니라, 순리대로 자연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집을 지으면서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을을 전하고 싶다.田

■ 글 장경희 사진 류재청


■ 건축정보

위치: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3구
부지면적: 4백63평(농지, 임야 혼합)
부지구입년도: 97년 ·부지구입금액: 평당 15만원
건물형태: 2층 목구조 흙집(2층은 평수에 들어가지 않는 다락)
건축공사기간: 97년 6월~2001년 11월
건평: 바닥면적 30평, 2층 다락 24평
실내구조: 1층- 방 3, 거실, 주방, 화장실 2층- 방 2, 거실
구조체: 국산 낙엽송
벽체 구조: 황토벽돌(황토+볏짚)
내부 마감: 미장(황토+마)후 한지 도배
외부마감: 미장(황토+마) ·지붕마감: 동판
난방형태: 기름보일러, 화목보일러, 아궁이
식수: 지하수
총건축비: 1억5천만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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