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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찻상의 얼굴 쓰다듬다
목리木理의 예술가 박인규

 

아무 소리 못 하고 묵묵히 그 자리에 붙박여 있는 나무. 나무는 외롭다. 나무는 쓸쓸하다. 나무는 싱그러운 바람을 줄 뿐 아니라 몸을 던져 물건이 돼서도 사람에게 끊임없는 시선을 주지만 사람은 나무에게 따듯한 눈길 한번 던지지 않는다. 박인규는 그런 나무를 알아주는 목수다. 충북 제천시 시골 폐교에 작업장을 마련해 놓고 나무와 눈 맞춤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났다. 자신은 매개자일 뿐, 상의 모양은 하늘이 만들어 놓았다는 그의 말에 고수高手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글 박지혜 기자 사진 서상신 기자 취재협조 박인규
www.bom33.co.kr

 

"자, 이제 너를 베야겠다…… 나무야 미안하다, 대신 너를 쓸모 있게 만들어줄게."


흔히 나무를 다루는 이들이 하는 말은 작품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것. 상床만드는 박인규 목수가 나무의 생명을 앗을 때도 나무에게 대는 핑계가 그것이다.


"보통 재목을 사다 쓰지만 손수 벌목을 할 때가 있어요. 그것도 생명 있는 거라고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도 하고'내가 일을 하려면 이걸 베야 하는데 나무한테 좀 미안하네'하는 생각에 도끼를 대기 전 잠시 나무와 약속 한 가지 하지요."


그렇게 약속까지 해 놓고 자신의 불찰로 찜통에서 시커멓게 불에 타 형체가 사라진 나무토막을 볼 때가 있다. 한밤중 찜통에 넣고 찔 동안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깜박 깊은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나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찔러 문득 잠에서 깨었을 땐 이미 늦었다.

' 아, 쓸모 있는 상으로 만들어 주마고 약속까지 했는데'.

면목 없다. 나무한텐 약속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돈으로 따지자면 몇 백만 원어치를 불에 태워버렸으니 가난한 목수의 가슴이 쓰리다. 나무뿌리만큼 질긴 근기根氣를 자랑하는 박 목수 그도 사람이니 살다가 실의에 빠질 때가있다. 그럴 때 그에게 힘을 주는 것 역시 나무와의 약속이다.

 

1 박 목수의 작업실에는 온통 제재된 나무가 둘러쳐져 있다. 하나 더 추가시킨다면 불도 있다. 불은 나무를 죽이지만 적절히 이용하면 제대로 된 상을 만들어 준다. 2 절단 작업을 하는 박 목수. 나무의 어느 부위에서 절단하느냐가 중요하다. 그에 따라 나무가 지닌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할 수도 개성을 죽일 수도 있으니까.

 

 

 

 

 

나를 다듬는다 생각하며

 

박 목수는 10년 전 처음 나무로 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목수가 되기 전에 그는 공사판 노동자이거나 문인文人이었다. 고층 건물에서 낙상해 하반신 마비를 앓은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계기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인생을 재정립하도록 했다.

 

 

1 2 상의 완성도를 가름하는 사포질. 하면 할수록 사람의 힘으로는 그려넣을 수 없는 묘한 무늬 결이 차츰 정교해진다. 과거, 이 깨끗하고 뽀얀 속살을 보고 박 목수는 상 만드는 목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3 박 목수의 손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는 이처럼 평범하고 그저'나무 동가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볼품없는 나무가'작품'으로 재탄생될 것을 확신하기에 그는 작업을 이어간다. 4 5년쯤 가지고 있던 밤나무에 청동과 황동을 박아 입힌 다음 부식작업을 다섯 번 정도 한 보이차 전용 초록물고기 상. 그의 몸과 마음이 가난할 때 처절하게 한 작업이라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하고 그의 곁에 두었다. 5 나무가 지닌 자연스런 결을 잘 살려내는 일도 박 목수의 업이다.

 

 


"한번은 물가에서 물에 밀려온 나무 동가리를 보았어요. 그 초라함이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걸 깎아 보니 깨끗한 속살이 보이는 게 전혀 색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게 아니겠어요? 잘 다듬으면 쓸모 있는 것이 되겠구나 했지요."

'나도 다듬으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싶은 생각에 문장으로 치면 일종의 대유법처럼, 못 쓰게 된 나무를 마치 자신이라 여기고 쓸모 있도록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상 만드는 작업의 출발이었다.

박 목수는 작업장에 놓인 재목과 상 작품들을 크게 둘러보며 이곳에는 좋은 나무는 하나도 없다 한다. 목수 일의 출발에 예의 의미가 있었기에 쓸 데 없는 나무를 재목으로 쓴다.


상 만들기 그 구도의 작업

 

 

 

 

박 목수는 상 만들기에 앞서 계산적으로 의도적으로 디자인하지 않는다. 나무와 끊임없이 대화할 뿐이다.


"나무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에요."

나무가 그에게 말을 걸어 주문을 할 때까지 끊임없이 나무를 목도目睹한다.


"스스로를 비우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요. 나무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이 사라지고 나무가 내 안에서 가득 차 나무를 어찌 다루면 좋을지 답이 나오지요."


나무와의 대화를 통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무에 가하는 자신의 몸짓을 그냥 내버려둘 뿐이다. 그는 목수 작업을 '공부'라고 표현했는데 그에게 있어 상 만드는 일은 단순히 사람의 도구를 생산하는 일이라기보다 구도求道의 과정에 가깝다.


"나무와 첫 눈맞춤을 하는 순간'무엇으로 쓸 건가'느껴봐요. 어떤 경우는 퍼뜩 형상이 떠오를 때도 있고 어떤 경우는 아무리 꿰뚫어 봐도 안 떠오르는 경우도 있어요. 몇 년이 흘러도 답이 안 나는 경우도 있지요."


답을 얻지 못하면 하릴없이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그의 작업장에는 제재목들이 벽면 사방 빼곡이 세로로 기대어 있는데 7년간 벽에 서 있는 나무도 있다.


소설가 이외수와 물고기 상

 

6 1990년 폐교된 충북 제천시 소재 구 삼선초등학교에 자리 잡은 박 목수의 작업장. 7 작품으로 쓰이길 대기중인 제재된 나무들. 8'상 높이의 과학'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상 다리 분리형도 만들어봤다. 이 돌배나무 상에는 돌이 그대로 박혀 있다. 9 박 목수의 손에서 떠나 전시회에 나갈 상들이 교실에 전시돼 있다.

 

 

 

15년 스승과 제자 사이인 소설가 이외수는 그에게 인생의 답과 작품의 소재에 대한 힌트를 던져 주는 존재다. 박 목수는 이따금씩 화천 그의 집으로 찾아간다. 이외수 선생은 선문답으로 박 목수에게 깨달음을 준다. 한 날은 이외수 선생이 물고기를 그려 주었다. 그림을 받아들고 제천 작업장으로 온 박 목수는 아무 생각 없이 상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물고기 형상이 돼 있었다.
박 목수 작품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물고기 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그 1호를 이외수 선생에게 선물했더니 이 선생 왈曰.

 

"죽~ 인다".

 

평소 이 선생 최고의 찬사 표현이'죽~인다'는 것을 잘 아는 박 목수는 흥이 나지 않았을까. 또 박 목수는 사용자가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상 높이의 과학'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이외수 선생에게 집필할 때 쓰시라고 상을 선물했더니 이 선생 왈曰.

 

"너, 상에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이렇게 편하냐?"


*

 

 

박인규 목수의 명함에도 나와있는 느티나무 찻상.
"내가 한 일은 샌딩질밖에 없다.
목수가 아무리 기교를 부리고 머리를 써도
하늘이 내린 저 모양은 감히 흉내도 못 낸다.
많은 공부를 하게 한 상이다." 

 

2007년 서울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박 목수는 공부 10년 후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다. 올해 5월 인사동 목인갤러리에서 세 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아무리 큰돈을 지불한다 해도'임자'가 아니면 상을 내어 주지 않는다는 박인규 목수는 그의 상이 임자의 곁에서 그 초라하고 쓸모없던 과거를
딛고 100퍼센트 완성된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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