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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라는 개념을 텃밭에 입히면 어떤 모습일까. 역시 예술가는 달랐다. 조각가 강은엽 씨에게 텃밭은 캔버스Canvas다. 직선이 아닌 여러 형태 각을 만들어 고랑을 내고 밭에서 자라는 작물을 물감으로 둔갑시켜 색을 입힌다. 그래서 그의 텃밭은 작물이 열렸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강은엽씨는 말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비용이 더들어 가지도 않는다. 약간의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홍정기 기자 사진제공 강은엽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갓 개발이 끝난 대단지 아파트를 가로질러 산기슭으로 가다 보면 오래전 형성된 작은 마을 하나가 있다. 등산객과 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한 즐비한 식당들 사이에 조각가 강은엽 씨의 전원주택이 놓였다. 모던한 분위기가 물씬한 주택 대문을 열자 왼편에 면적이 본채보다 넓어 보이는 텃밭의 위세가 상당하다.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오른편에 작은 정원이 조성됐지만 텃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강은엽 씨가 텃밭에 들인 공이 대단하다.

 

 

 

 

"텃밭은 나의 작업 무대"

조각가 강은엽. 그의 작품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가 말한다. "텃밭은 나의 작업무대"라고. 14년전 청계전원주택으로 이주했을 당시 경사진 대지를 그대로 활용해 조성한 텃밭을 그는 예술가로서 기질을 맘껏 발휘해 색 조화가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색채 텃밭'이다.
먼저 작물이 열릴 모습을 상상해 가상 도면을 그린다. 특별한 재주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작물 색을 고려해 보기 좋은 모습으로 배열시키면 된다.
고랑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직각 아닌 여러 각을 만들어 고랑을 내면 차별화된 텃밭을 얻을 수 있다. 강은엽 씨 텃밭을 본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 직업이 그래서인지 남들과 다르게 밭을 캔버스로 여긴 강은엽 조각가는 밭 형태를 모두 삼각형이나 예각으로 이루어진 땅으로 만들어 자라고 열리게 될 채소들을 마치 물감처럼 생각한 후 배치해 이를 그림처럼 보이게 했다."
강은엽 씨는 "어떻게 하면 채소를 조경처럼 예쁘게 디자인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색채 텃밭이라는 것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생각 끝에 "텃밭 형태에 맞춰 색을 입히고 고랑에 라인을 주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면서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장마로 사라진 텃밭 그래도 작업은 계속 된다

아쉽게도 더 이상 그의 색채 텃밭을 볼 수 없다. 몇 년 전 장마로 경사진 텃밭이 쓸리면서 지금은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시 촬영해 놓은 자료 사진과 스케치, 조감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텃밭에 대한 애정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친환경 농사법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경사진 땅을 극복해 단을 만들어 조성한 텃밭이 새로운 작업 무대다. 밭에서 난 잡초 등의 풀과 음식물 찌꺼기로 거름을 만들어 유기농 작물을 얻는다. 모양이 좀 허술하고 벌레 좀 먹은들 어떠하랴.
식탁에 오르는 상추, 고추 같은 기본 작물은 물론 도심지 밖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아스파라거스, 루콜라, 파슬리 그리고 각종 허브류가 철마다 건강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 미니 생김새를 탓할게 아니다. "집에서 먹는 채소류는 다 텃밭이 공급해요. 텃밭에서 하는 일이 많아지니 육체 건강도 얻고 정신이 자연에 가까워지면서 감사하는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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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전성시대] 캔버스에 그리듯 텃밭을 디자인하다, 조각가 강은엽의 ‘색채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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