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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은 전원주택

건축주와 시공업체가 믿음으로 함께 지은 40평 목구조 흙집

건축 설계의 초안이 나왔는데 예상치 않게 T자형 평면이었다. 부지의 앞에 저수지가 있기 때문에 물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 욕심이 컸는데 거실 전면이 저수지로 향해 있는 돌출형 건축 설계는 내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거기다 어머니를 모실 부모방은 남향에 쪽마루가 있는 큰 창이 배치되어 있고, 안방 또한 남향으로 열려 있었다. 거실과 주방은 연결되어 있으나 수납 칸막이로 장식하여 모양과 용도를 다양하게 하였다. 창 형태로 열려있고, 주방의 창이 거실창과 앞뒤로 나 있어 통풍과 환기에 그만이었다.

임준상씨는 지난달 오랜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안성에 내려와 40평 규모의 목구조 황토집을 지었다. 은퇴후의 전원생활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지 10년만의 일이다. 우리의 전통 주거 방식인 목구조 황토집을 짓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 중에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집을 짓고 입주하기까지 과정과 느낌을 담은 건축주 임준상씨의 글을 싣는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

아주 어려서 고향을 떠나 객지로 떠 돈지 40여년만에 고향 땅 한 켠에 몇 년전 터를 마련했다. 건설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리비아 수로공사 현장을 끝으로 정년 퇴직한 이후 노년을 누일 고향 땅에 정을 붙였다.

오랜 시간동안 외국 현장으로 떠나 있던 터라 아내에게도 미안했고, 혼자되신 어머님과도 집을 합쳐 자식된 도리를 다하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조바심이 났다. 마음은 먹었지만 경제적 여건이나 조건이 성숙치 못하여 몇 년을 미루어 왔으나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마련한 부지에는 컨테이너 하나에 살림이 가득 찼고, 노년의 친구가 되어줄 개들도 서너마리씩 벌써 자식들을 얻은 터라 이제 새 집만 지으면 고향으로의 완전한 귀향을 이루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시공업체를 찾다
오래도록 토목 장비를 다루어왔고, 현장 일이라면 이골이 났지만 집이란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전문분야 동료나 후배들에게 설계도 의뢰해 보고, 수십 번을 뜯었다 고쳤다, 다시 지어보았지만 막상 실행이 안되고 보니 ‘견물생심’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근 10년간을 준비해온 터라 땅도 마련했겠다, 시작만 하면 되는 일인데 가진 돈에 맞추려고 생각해 보니 선뜻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평생을 몸담을 집이고, 내 자식들이 후대를 이으며 살아갈 고향의 집인데 아무에게나 맡겨 집을 지을 순 없는 문제였다.

몇 날을 두고 인터넷을 통해 시공사를 조사하였다. 마음속엔 황토집을 그리고 있었지만 기와로된 한옥 아니면 허술한 초가만을 보아왔던 터라 뭔가 미흡해 보이기도 했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서구 목조주택 형태로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을 가 보기도 했으나 실해 보이지 않고, 설계도 우리 살림집이 아닌 듯한 복잡한 구조처럼 느껴졌다. 스틸하우스는 외양은 깔끔한데 정감이 떨어졌다. 살아온 과정이 그랬던가, 고향으로의 귀향 때문이었을까?
자꾸 현대 흙집을 표방한 흙건축 회사의 홈페이지에 손이 갔다. 여러 차례 탐독한 가운데 시간이 지나며 가슴에 와 닿는 믿음이 생겼다.

몸담았던 건설사가 한참 힘들었을 때 회사를 정리한 터라, 어려움을 이겨낸 지금의 시공 회사에 더 정감이 갔는지 모르겠다. 회사 이력에 당당히 부도난 이력을 표시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자기 길을 밝히고 있는 회사 연혁은 내 마음을 잡아 당겼다. 그래, 이런 정신과 노력이라면 이 친구들은 뭔가 다를꺼야, 얼굴을 대면하진 않았지만 믿음이 갔다.

4월 말의 어느 토요일 늦은 시간 첫 만남에서 농지전용과 건축설계, 견적의뢰를 부탁했다. 두 번째의 만남에서 농지전용허가부지를 결정하고 절차에 들어감과 동시에 건축설계에 착수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밝히고 그에 따른 건축 면적과 자재 사양을 정해갔다. 그리고 한달 후 드디어 집터를 닦는 포크레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T자형 건축 설계를 확정하다
건축 설계의 초안이 나왔는데 예상치 않게 T자형 평면이었다. 부지의 앞에 저수지가 있기 때문에 물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 욕심이 컸는데 거실 전면이 저수지로 향해 있는 돌출형 건축 설계는 내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거기다 어머니를 모실 부모방은 남향에 쪽마루가 있는 큰 창이 배치되어 있고, 안방 또한 남향으로 열려 있었다. 거실과 주방은 연결되어 있으나 수납 칸막이로 장식하여 모양과 용도를 다양하게 하였다. 창 형태로 열려있고, 주방의 창이 거실창과 앞뒤로 나 있어 통풍과 환기에 그만이었다.

까다로운 품성의 어머님과 건강에 조금씩 자신을 잃는 아내, 그리고 우리 후손들이 모두 편안하게 몸담을 수 있는 구조, 그리고 땅의 지형과 자연을 최대한 반영하여 배치된 설계는 시공사에 대한 또 하나의 믿음으로 굳혀졌다.

일의 절반은 목수일이네
집을 짓고 있는 터 뒷편 컨테이너에 이미 짐들이 모두 이사와 있는 형국이라 본의 아니게 집 짓는 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켜보았다. 내 집을 짓는데 내 손길이 닿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었고, 믿음으로 시작하였으니 믿거니 하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픈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과연 집 짓는 일은 인생과 다르지 않았다. 기초공사가 끝나고 집의 뼈대를 세울 나무를 다듬고 깎고 홈을 내 골격이 잡힐 때까지 목수들의 손놀림과 땀방울은 너무도 컸다. 처마를 만드는 서까래가 돌고 한옥의 팔작지붕 형태로 지붕선이 나타날 때 밤잠을 못 이룰 만큼 그 즐거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일이 어디 즐거울 수만은 있는가? 시공사나 나 또한 미처 고려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T자형 건축물이다 보니 현관 출입구의 지붕선이 본채의 처마선으로 인해 정 가운데 중앙에 위치하지 못하고 한편으로 몰린 것처럼 보였다. 현관만큼은 그 지붕선이 중앙을 딱 하니 바라보았으면 좋겠는데, 빗물 처리 경사면과 이것저것 모두를 고려한 시공이긴 하였지만 마음속에 떨떠름하게 남는 문제가 되었다. 시공사는 나의 이런 문제 제기를 흔쾌히 받아들여 두 번을 고치고서야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흙집인데 집 짓는 일의 절반이 목수일이라니...... 한 달여에 걸친 간단치 않은 목수 작업 속에 선조들의 지혜와 한국의 멋, 집에 깃든 정신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현장밥 30년, 하루 하루가 즐거운 집짓기
쓸고 줍고, 또 하루를 보내면서 시공사의 모든 협력업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누구여..... 현장밥 30년이여......”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번 틀어 보기도 하고, 마음이 흡족하면 그 저녁엔 어김없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내었다. 골격이 세워지고 지붕 위에 아스팔트싱글 지붕이 덮이고서야 본격적인 흙일이 시작되었다. 기둥과 기둥사이에 흙벽돌로 벽체가 세워지고 서까래 사이사이엔 작은 흙벽돌이 끼워졌다. 화장실 안쪽엔 시멘트 벽돌이 한 겹 더 쌓아지고 그리고 황토미장과 방수미장, 황토방이 만들어졌다.

흙벽돌의 규격은 가로 30㎝, 폭 20㎝, 높이 14㎝인데 흙이다 보니 규격이 조금씩 차이가 났다. 손으로 찍은 흙벽돌보다 기계압으로 찍은 문양 흙벽돌이라 강도에 있어서나 모양에 있어 보기에 좋았다. 흙벽에는 가는 철망을 대고 황토분과 향나무 톱밥 등을 섞은 황토라 일반 흙집에서 나타나는 흙벽의 갈라짐이나 터짐은 없었다.


여름 장마를 지나고 찌는 듯한 한낮 더위인데 집안에 들어가니 서늘할 정도로 시원했다. 흙 냄새도 너무 좋았다. 조선살이 들어간 목창과 조선살이 박힌 문이 달리자 이제 집이 되었구나 하는 기쁨이 몰려왔다.

현장은 모두 같은 것이다. 내 일처럼, 내 집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그 집은 반듯하게 되고, 그 시공사는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집의 마감재를 더 좋고 화려한 것을 써서 치장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집을 짓는 과정 하나하나에 집은 생명력이 살아있는 것이다. 몸이 실해야지 치장한다고 가려지는가?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그 점에서 나와 시공사는 정신의 끈이 닿아 있었다.

믿음, 그것은 처음과 끝을 한결같게 해준다
나는 친구들이 집을 지으며 시공업체를 한 두번 바꾸는 사례를 보았었다. 가장 큰 것은 서로의 이해 관계일 것이다. 시공사는 많이 남기려하고, 건축주는 더 좋은 자재와 마감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시공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의 과정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현장 운영능력이 있는가 없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하다보니 타산이 안 맞는다고 손을 떼는 일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시공사 책임자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으로 집이 되어 가는 과정과 투입되는 비용도 거의 태반 다 알게되고 보니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은 더욱 커졌다. 나중에 서로 결산을 해보니 시공사는 거의 노력 봉사한 결과가 되었다. 이는 내가 건설 현장에서 30년을 누볐기 때문에 시공사에서 일일이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사항이다.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시공사의 성심이 이윤을 떠나 집을 완성케 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집을 ‘고향에 귀의하는 사람의 편안한 종가’로 만들어 준 시공사와 협력업체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 믿음의 끝은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비록 노력 봉사일 지 모르지만 그 노력들이 하나하나 쌓이면 큰산을 이룰 것이다.

도시를 떠나고 싶은 분들이나 후세 자손들에게 할아버지가 지은 집을 물려주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쯤 이 집을 방문하여 집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 본다면 성심껏 답해 줄 예정이다.

시공사 못지 않게 처음부터 끝까지 집 짓는 모든 공정과 일꾼 한분 한분을 석달 이상 같이 호홉하며 완성한 집이기 때문에 충분한 답변을 해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田


■글·임준상/사진· 류재청

■건축정보
위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용설 저수지 주변)
대지 면적: 6백90평(이중 1백50평 대지 전용, 구거 점용 약 40평, 잔여 농지 약 5백여평)

건축 면적: 단층 40평

건축 구조: 한옥 목구조 + 황토벽돌 + 아스팔트싱글

실내 구조: 방 3(안방, 부모방, 자녀방), 거실,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등

특징: T자형 건축설계로 거실에서 전면의 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부모방 창을
한옥식으로 낮게 하고 방 앞에 쪽마루를 두어 마실온 할머니들과의 담소를 할 수 있는
조건과 저수지 조망이 용이토록 구성했다.
심야전기보일러실을 1평 정도 크게하여 농기구 등 보관 창고로 이용토록 구성하고,
주택 뒷편으로 연못을 배치해 후정 개념으로 꾸몄다.

총 공사비: 농지전용 토목설계비 및 제세금, 측량비- 약 5백만원
본 건물 - 1억 1천만원(평당 2백75만원)
심야전기보일러+벽난로+가로등- 약 8백만원
자연석 쌓기 및 연못, 조경공사- 1천5백만원
총 공사비 합계: 1억3천8백만원

■설계 및 시공 : 행인 흙건축 (031-335-8133 / www.hang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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