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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헤르만 헤세의《싯다르타》에 감동 받았으며 비록 누더기 차림이나 정신세계는 부유했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412~323 B.C.)처럼 살고 싶었다는 도완녀 씨. 돈연스님과 도반으로 연인으로 서로에게 선생이 되어 길을 걷다 보니 어릴 적 동경했던 모습에 다가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강원도 정선 임계면 가목리, 해발 650미터, 사방을 둘러보면 시야에 잡히는 건 변화무쌍한 구름과 초목뿐인 이곳에서 된장 주무르던 손으로 사람을 어루만지는 그녀를 만났다.

박지혜기자 사진 고경수 기자

 

 

 

 

 

 

티끌마저도 아름다운 도완녀(57세) 씨의 집 마당. 8000여 평 부지에 세 채의 박공지붕을 인 건물이 어깨를 나란히 견주고 있다. 갓 지은 집들처럼 흰색 시멘트사이딩과 벽돌을 두른 외양이 매끈하다. 그 앞 너른 대지 위로 새하얀 도라지꽃이 끝 간데없이 만발하다. 도시에선 잊고 지나쳐버리는 계절의 진면목이다.
도완녀 씨는 '메주와 첼리스트(㈜메첼)'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돌연 스님과 결혼해 산골로 들어간 첼리스트로 된장에게 연주해주는 첼리스트로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느 인생이 파란만장하지 않겠나만 도 씨는 그야말로 파란만장을 겪었다.
명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독일과 국내 대학 강단에 섰으며 국내외 순회공연은 물론 예술 기획 · 경영 분야까지 첼리스트로 예술경영인으로 그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지인이던 일곱 살 연상인 돈연스님(본명 나종하)으로부터 '가목리에 들어와 첼로 연습을 하지 않겠소'하는 프러포즈를 받고 1993년 5월 정선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태생부터 서울인 그녀가 길 하나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원시림의 두메산골에 들어온 자체가 삶의 큰 변화였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을 적잖이 놀라게 했을 터였다. 게다가 첼로는 뒷전이고 남편이 하던 된장 사업을 돕기 시작해 15개 장독을 5500개로 불렸을 정도로 사업을 키웠다. 물론 끊임없이 크고 작은 연주회를 가졌다. 된장이 잘 익도록 항아리들 사이에서 첼로켜는 것을 포함해서.
돈연스님이 1989년 정선에 들어와 된장을 담기 시작했으니 지난해 메첼은 창립 20주기를 맞았다. 그리고 올 초 그녀는 메첼 대표직에서 손을 털고 산으로 들어갔다.

 

 

산골에서 극기의 세월 보내고
"점심 먹지 말고 오지. 내가 만든 반찬이 참 맛있는데."
초면인 기자에게 오랜만에 놀러 온 친구에게 하듯 말을 툭툭 놓고 친근하게 대한다.
"덥지? 우린 선풍기도 없이 살어."
거실 전면 분합문을 활짝 여니 산들바람이 들락날락해 바깥 기온은 35℃ 남짓 되나 실내에선 크게 더운 줄 모르겠다. 게다가 거실 벽난로엔 불이 지펴졌다. 쓰레기를 태우는 중이란다.
도 씨는 체구가 아담하고 야무진 모습이다. 20년 남짓 산골 노동으로 뼈와 살이 단단히 다져진 것일까. 전원에선 깨끗한 물과 공기, 갖가지 먹을거리… 주는 것도 많지만 거저 주기만 하지 않는다. 대가로 노동이 따른다. 손이 가야 첼로가 가락을 짜내듯 시골 살이 역시 손이 가야 온전한 삶이 되고 기쁨이 배가된다. 장독이 수천 개로 늘어난 만큼, 밭이 수만 평으로 커진 만큼, 메첼 매출액이 수십억 대로 승승장구한 만큼 그 뒤꼍엔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혹독하단 표현을 했다.

 

 

 

 

 

 

 

"자연은 혹독해. 극기克己가 필요해."
생계형 귀농인 경우 맞는 말이다. 도시에선 최고경영자가 관리 역할만 잘하면 되지만 시골에선 밭 일구기부터 파종, 수확, 가공, 유통, 홍보까지 농산품 생산 및 판매 전 공정에서 힘을 쏟아야 한다. 도 씨는 일꾼들은 물론 관광객들 식사까지 손수 만들어 먹였다 한다. 게다가 메첼 정선 공장이 관광지로 되면서 먼 길 찾아온 손님들에게 첼로 연주까지 선사했으니 훈장 달 만한 손이다.
그녀는 뜬금없이 "우리 공장은 두 번이나 불이 났어"한다. " 93년 95년 이었는데 95년에는 마을에 야반도주설까지 돌았지"하며 신나는 모험담이라도 되는 듯 말한다. 특유의 긍정적 사고와 인내가 그녀를 성공의 경지로 이끌었고 혹독함을 극기하는 원천이 된 듯하다.
"가목리에 한방의료 타운 만들 계획이야"
기자는 그녀가 소위 잘나가던 메첼 대표를 사퇴한 까닭이 자못 궁금했다. 2007년 메첼 본사를 정선에서 경기 연천으로 옮긴 후 민관합작품이 된 연천 공장에 관이 관여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졌다 한다. 자유를 빼앗겼을 성싶다.
"3월 계룡산 산신전에서 백일기도를 했어. 정말 치열했어."
만물이 소생하는 봄, 그녀는 무속인들의 수행 터전인 계룡산에서 자신과의 사투를 벌였다. 첼로 연주도 된장 만드는 일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듯 백일기도도 마찬가지. 과거 두 가지 수행으로 단련된 내력이 있기에 백일기도에서도 어렵사리 답을 얻었다.
그녀는 앞으로 심신이 아픈 사람을 위해 헌신할 예정이란다.

 

 

 

 

"이곳에 독채형 건물을 열 채 정도 만들어 한방의료관광 타운을 만들 계획이야. 2, 3년 후엔 완성되겠지."
이곳에 3년여 전 지은 명상원에선 된장찜질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된장찜질요법은 그녀가 앞으로 세울 의료타운의 핵심 프로그램이 될 모양이다. 토털 헬스 케어로, 된장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고 명상으로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4시간 동안 진행되는 된장찜질은 일차적으로 몸속 노폐물인 숙변을 제거하고 신장에서 거르지 못한 요산이나 요독 등을 빼준다. 나아가 간 청소 등 모든 장기 활동이 원활하도록 돕고 손상된 인체를 복원시킨다 . 1년에 한 번 된장찜질을 하면 10년간 암 예방 효과가 있단다. 한마디로 만병의 근원을 뿌리 뽑고 체질 개선에 효과가 있다. 도 씨는 2년 전 돈연스님이 고혈압과 당뇨 등으로 몸져누웠을 때 된장찜질 효과를 보고 지난해 이를 상품화시켰다.
그런 건강요법이 아니라도 가목리에 들어와 지내는 것만으로 병이 달아나고 건강해 질 듯하다. '이렇게 길이 날 줄알았으면 이 땅을 안샀지'하는 돈연스님이 20년전 부지를 구입할 당시만 해도 지프도 겨우 들어올 정도의 수풀 우거진 황무지였단다. 그럼에도 이곳은 여전히 자연의 기운이 왕성하다.
하나 더, 대자연을 무대이자 청중으로 삼은 첼리스트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다. 이 날도 첼로 가락이 정선 하늘 자락을 울렸다. 풀벌레와 바람도 숨을 죽인 가운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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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와 첼리스트’ 도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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