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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조성된 독특한 정원이다. 앞머리를 내린 듯한 뾰족한 지붕으로 풍성한 풀꽃이 살짝살짝 내다보여 한달음에 지붕 위로 올라가고픈 충동이 인다. 지붕으로 오르는 계단도 풀꽃 천지다. 문득 주인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진다. 풀꽃을 아이 다루듯 보살피는 아내와 정원을 구경하는 방문객의 볼거리까지 신경 쓰는 세심한 남편의 땀과 정성으로 완성된 이채로운 '풀꽃지붕'이다.

한송이 기자 사진 홍정기 기자 취재협조 남해 원예예술촌 055-867-4702 www.housengarden.net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박종혜 씨 정원을 비유하는 데 이보다 적당한 말이 있을까. 그녀는 10년 전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집에서 심심해하지 말고 꽃이나 배워보든지…"라는 말에 꽃과 인연을 맺었다. 꽃꽂이로 시작한 것이 실내정원을 거쳐 남해 '풀꽃지붕'의 이름을 단 지붕정원으로까지 이어졌다. 남해 원예예술촌 내 100평 남짓 작은 부지에 조성된 곳이지만 그 어느 정원보다 방문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남해 원예예술촌은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손바닥정원연구회'가 주축이 돼 조성한 마을이다. 박 씨는 이 모임의 오랜 회원으로 해마다 원예 전시회 이후 버려지거나 죽어가는 꽃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원예예술촌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남해에서 원예예술촌 사업에 관심을 갖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회원 모두 고개를 흔들었지요. 대부분 수도권 거주자들인데 생활 터전을 뒤로하고 멀리 떠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한 번 구경이나 해보자며 찾았던 그곳에서 박 씨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길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남해를 다녀온 날 도저히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단지가 조성된 후에는 그때 받은 감동만큼 가슴이 울리지는 않아요. 고지가 높은 그 땅 위에서 멀리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남해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때 다들 여기가 아니면 안 되겠다 했지요. 아직은 한 달에 세네 번밖에 못 들르지만 언젠가는 여유 부리며 남해에서 살 날이 오겠죠."

 

 



 

 

지붕정원의 Key, 기초를 다져라
남해로 갈 것을 결정한 후 그녀는 집이 들어서기도 벅찬 100평 땅을 어떻게 독특하게 꾸밀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정원을 지붕 위로 올리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지붕을 활용하면 공간 제약도 피할 수 있을뿐더러 누구보다 독특한 테마를 지녀 마을의 성격과도 딱 맞아 떨어졌다. 문제는 '어떻게'였다. 국내외 서적은 물론 인터넷에서 조차 지붕정원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지붕에 잔디를 까는 이는 더러 있어도 꽃은 여름에 타버리기 일쑤고 배수, 방수, 관수 등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사실 그녀 역시 처음 1년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실내정원 위주로 10년을 꽃과 친하게 지냈으니 웬만큼 하면 되겠지 했어요. 집 설계부터 배수, 방수에 철저히 신경 썼고 무엇보다 바로 곁에서 자연이 돌봐주는 것만큼 완벽한 환경은 없을 거라 생각했고요."
무엇보다 기초를 탄탄히 쌓는 것에 역점을 뒀다. 지붕에 경사가 져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도록 방부목을 곳곳에 세웠고 자연 배수를 가능케 하는 세덤블록을 적극 활용했다. 세덤블록의 2/3는 수분을 많이 머금고 천천히 내보내는 화산사로 채워 비가 많이 오거나 한여름에도 걱정이 없도록 했다. 그 위를 맑은 물이 흘러내리게 돕는 부직포를 깔고 마지막으로 인공토를 덮어 풀꽃들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녀는 흙은 많이 깔면 깔수록 식물들이 좋아하나 지붕의 깊이와 면적에 따라 그 양을 조절할 것을 조언했다. 기초를 튼튼히 하고 나니 서울에 올라와 있어도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단다.

 

 





 

 

꽃 박사 아내와 디자인 박사 남편
정원을 재정비하면서 계단 정원과 지하 건물 지붕 정원 등 꽃 가꿀 공간도 넉넉해졌다. 사계절 화려한 색채를 유지하는 백일홍, 천일홍 등의 일년초와 플록스같이 추위에 강하면서 번식력 좋은 다년초 위주로 심고 블루세이지 등의 허브도 곳곳에 놓았다. 그 외에도 채송화와 비슷하게 생긴 다년초 송엽국, 붉게 물드는 석산, 자줏빛 노루오줌 등이 지붕 위를 다채롭게 꾸미고 있다.
디자인 산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애초 반대했던 것과 달리 '하려면 완벽하게 하자'며 아내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풀꽃지붕의 포토 존이 된 독특한 모양의 조각물 벤치도 남편이 서울대 최해광 교수의 디자인 전시에서 눈여겨본 것을 직접 문의해 제작한 것이다.
"이왕 남들에게 보여주는 장소라면 남녀노소 좋아할만한 볼거리를 두어야 좋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울타리 옆 새집도 남편 아이디어예요. 저는 딱 식물로 정원을 어떻게 가꿀까 고민했는데 남편은 그 외적인 부분도 고려하더라고요. 덕분에 남녀노소 좋아하는 장소가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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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혜 씨가 꽃을 선택하는 기준은 따로 없다. 타샤튜더의 책에서 읽은 타샤의 이념이 그녀에겐 최고의 가이드라인이다.
"타샤튜더는 틀에 박힌 꽃밭 조성을 거부하고 그때그때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어울리겠다 싶은 곳이면 어디든 심었다고 해요. 복잡해 보일까 하는 걱정도 안 했대요. 나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정원에 손을 대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꽃은 여기저기 심어본 후 나중에 가장 잘 자라는 곳을 골라 더 심어주기도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죽었구나 했던 꽃이 몇 개월 후 중구난방으로 피어나기도 하니 오히려 배의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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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지붕을 수놓다 _ 남해 박종혜 씨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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