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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달리 이야기

‘명달리 이야기’의 그 집, 30평 단층 황토주택

이 곳 저 곳 현장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혹시나 작은 현장이라고 방치하는 것은 아닐까 가슴 졸이실까 봐 우리는 다시 무리를 감수하고 책임자를 배치 시켰다. 그 후 밝아진 두 내외의 얼굴을 나는 기억한다. 마감 공정에 매일 같이 현장으로 출근했던 두 내외의 마음 또한 안다. 시간마다 커피와 빵, 음료수를 들고 다니며 농담으로 던지는 그 친근한 미소가 없었다면, 건축주의 그 애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명달리 집은 없었을 것이다. 시골에 묻힌 인생의 결단, 틀고 앉은 집을 부술 수밖에 없었던 고뇌, 둥지를 새로 트는 그 열망이 있었기에 지금의 명달리 집이 더욱 빛나는 것 일게다.

지난 3월부터 연재되어 5월, 6월까지 3회에 걸쳐 본지에 연재되던 ‘행인흙건축’ 이동일 대표의 ‘명달리 이야기’의 그 집이 지난 5월 완성되었다.

‘명달리’는 행정구역상 경기도 양평군 명달리에 속하지만 양평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양수리 일대나 양평 읍내와는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다.

양수리에서 수입리 카페촌까지 간 뒤 거기서 명달리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하여 계곡을 따라 10여 km를 더 가야하는데, 마치 강원도의 어느 산골 마을을 연상시킨다.

그동안 연재되어 잘 알려진 대로 건축주 내외는 모두 의사였다. 남편은 정형외과, 부인은 피부과 전문의로 한마디로 ‘잘 나가는 길’을 마다하고, 이 곳 시골에 묻혀 농사를 지으며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만큼 ‘명달리 이야기’는 단순한 주택 얘기가 아닌, ‘삶의 방식’과 ‘인생을 보는 관점’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이며, 진솔하고 잔잔한 이야기 전개로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집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 번호에선 독자들의 궁금증에 부응한다는 취지에서 완성된 황토주택의 안팎 모습을 소개하고, 세 번에 걸쳐 연재된 행인흙건축 이동일 대표의 ‘명달리 이야기’도 이번 호로 끝을 맺는다.

과거의 연재물에서 이어지는 글인 만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이해 차원에서 집을 허물고 다시 황토주택을 짓게 된 배경과 그 과정이 자세히 연재된 2002년 3월호와 5월호, 6월호를 차례대로 먼저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아쉽게도 건축주의 완곡한 고사(苦辭)에 내외분의 모습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편집자 주>

집이 다 되어 갈 때쯤..... 그리고 준공식 날도 김 선생님은 몇 번이나 ......“정말 집짓기를 잘했어, 이번에 집 지으면서 참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한 달 전부터는 나도 매일 같이 일했잖아요. 각 공정별로 사람들이 들어와서 일을 하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하더라고...... 책상물림, 탁상에 앉아서 이론으로 뭘 못해 봤겠어..... 부끄럽더라고요..... 일하는 사람 땀흘리는 사람이 최고예요. 이번에 다시 집을 짓지 않았더라면 이런 걸 몰랐을 꺼야”

“내 열망이 간절해서 인지 몰라요, 집을 부수지 않으려고 이 곳 저 곳 참 많이 돌아 다녀 봤는데 땅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 명달리 계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곳을 떠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 열망이 2년 정도 되었을 꺼야...... 헐고 다시 짓자고 결정했지. 한 3년 살아 봤으니 이 터는 내가 가장 잘 알거든요....... 그 때 마침 기사를 보고 행인에 전화를 했는데.... 똑딱, 똑딱, 똑딱 몇 십초 동안을 망설이더라고..... 그러더니 오라는 거야, 딱 걸렸지...”

“내가 짓고자 하는 집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게 분명해서 많이 어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되는 것은 되는 것이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예요, 나는 안 되는 건 빨리 포기해요. 내 생각을 시공사가 잘 받아주고, 일하는 사람들이 짜증 안 내고 함께 만들어 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나도 힘든 줄 몰랐어요”

집짓기를 정말 잘 했어

김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으면 나는 절로 웃음이 난다. 그리고 그 말들이 모두 가슴에 와 팍팍 박힌다.

내가 건축을 하는 이유를, 그리고 해야 하는 까닭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말은 하시지 않지만 김 선생님 내외분 모두 가슴 졸이셨을 것이다.

처음 상담을 할 때부터 ‘거리가 너무 멀다’고......, ‘일반 관리가 잘 될지 모르겠다’고...... 하던 상황에서 목수 일이 한 번 어긋나고, 공사 책임자가 잠시 다른 현장으로 이동했을 때, ‘혹시 이 현장을 방치하는 것은 아닐까’ 가슴 철렁 하셨을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순 예전의 통나무집을 지을 때 두 달이면 다 될 집이 6개월을 넘겼다고 한다)

이 곳 저 곳 현장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혹시나 작은 현장이라고 방치하는 것은 아닐까 가슴 졸이실까 봐 우리는 다시 무리를 감수하고 책임자를 배치 시켰다.

그 후 밝아진 두 내외의 얼굴을 나는 기억한다. 마감 공정에 매일 같이 현장으로 출근했던 두 내외의 마음 또한 안다.

시간마다 커피와 빵, 음료수를 들고 다니며 농담으로 던지는 그 친근한 미소가 없었다면, 건축주의 그 애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명달리 집은 없었을 것이다.

시골에 묻힌 인생의 결단, 틀고 앉은 집을 부술 수밖에 없었던 고뇌, 둥지를 새로 트는 그 열망이 있었기에 지금의 명달리 집이 더욱 빛나는 것일 게다.

모든 것은 하늘이 한다

“내가 의사였을 때, 부러진 뼈 제 자리에 갖다 놔 딱 맞추고는 내가 고쳤다고 생각했지......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건 내가 고친 게 아니라 나는 그저 뼈를 제 자리에 갖다 가만 놓은 거야..... 나머지는 자기들이 다 알아서 새 살 돋고 뼈 아물고 한 거지, 그 건 하늘이 하는 거야”

그렇다. ‘하늘이 하는 거야’ 라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인간은 몇 십 년을 산다. 내가 잘 나서 무얼 했다는 헛 명예를 지고 그렇게 아둥바둥 거리다...... 그 격전지를 벗어나면 깨닫는다. 자연의 순리 하늘의 뜻, ‘천리(天理)’를 얻는다.

집을 지으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1년에 상담을 거쳐가는 사람만 해도 1백여명은 넘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얼마면 이렇게 지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부터 이런 흠 저런 흠 마땅찮아 하면서 ‘뭐 이리 돈이 많이 드냐’고 하는 사람들까지......

겪어 보니 정말 집은 아무나 지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건축을 의뢰하는 사람이나 집을 짓는 시공사나 모두 절실한 사람, 간절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될 일 같다.

돈으로 짓는 ‘허장성세’의 집, 돈벌이만을 위해 건축을 하는 집장사의 집으로선 소망을 담지 못한다.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집은 소망하는 건축주와 열정적인 시공사가 함께 존재하여야만 한다. 그럴 때 나머지 모든 것은 하늘이 알아서 할 것이다.

가슴 속에 담는다

아비나 어미를 떠올릴 때처럼, 명달리 두 내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왜 일까? 보고 싶음은 또 무엇일까?...... 가슴속에 담는다. 田

■ 주택의 주요 특징

- 간이 주추에 홈을 파고 목재기둥을 세워 목재의 변형 방지
- 거실은 삼량식(대들보, 서까래 노출 천정) 구조
- 거실하단은 루버 마감, 상단은 황토미장 노출
- 외벽 창틀하단은 인조석에 넓은 줄눈처리(한옥 느낌), 상단은 황토미장
- 외부 우드샷시, 내부 창살창호지 여닫이창
- 낮은 대문 출입구, 옛날대문, 행거 중문
- 작은방은 구들 및 일반난방 겸용
- 재래부엌에 간이마루, 아궁이 여닫힘
- 심야전기보일러, 온수기, 벽난로, 합병정화조
- 붙박이장 및 책꽂이 설치

■ 글 이동일(행인흙건축 대표)/사진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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