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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런 모양의 집이 가능하지? 이강혁 씨가 지은 집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던진다. 소라집, 고래집, 나무 모양 집, 애니메이션 캐릭터 모양 집 등 그는 어떤 모양이든 집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 물론 집으로서의 기능도 빠지지 않는다. 불연마감재를 사용하고 단열을 충분히 한다.
그의 상상이 어떻게 집으로 만들어지는지 찾아가 봤다.
박지혜기자 사진 백희정 기자 스케치자료 및 취재협조 대조형(大造形) 010-3318-0888

 

 

 

전남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는 최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 찾아와 마을 일대가 잔치 분위기였다. 소라처럼 생긴 특이한 집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형상은 물론 까슬까슬한 표면 질감까지 영락없이 소라를 꼭 닮았을 뿐 아니라 공간 장식을 위한 조형물이 아닌 사람이 실제 사는 집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15평 아담한 규모의 내부도 일반 살림집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거실 겸 주방/식당, 침실, 욕실 그리고 다락까지, 주거공간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과연 이처럼 독특한 집을 지은 이는 어떤 사람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충북 당진 고대면 슬항리에서 또 다른 이색적인 전원주택 공사를 진행 중인 이강혁(50세) 씨를 만났다. 이번에는 고래집이다.
볼록한 정수리와 툭 튀어나온 주둥이, 둥글둥글한 배, 위로 치켜든 양 갈래 꼬리지느러미… 고래 모양의 커다란 조형물이 한창 세워지고 있다. 합판 조각과 각재로 이뤄진 고래 형태의 골조가 거의 완성 단계다. 고래집 길이는 최장 18m, 등 부분까지 높이는 5m 정도, 가장 높은 부분인 꼬리까지 높이는 7m 정도다. 대지 150평에 단층 20평 주택으로 계획됐다. 상부는 회색, 배는 흰색 계통으로 도장 마감해 고래 느낌을 낼 계획이고 호스와 펌프 장치를 설치해 머리 쪽에서 분수도 뿜을 예정이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에는 이 분수가 실내 기온을 낮추는 기능도 하게 된다.

 

 

 

 

 

 

짚 · 흙 · 숯 · 나무… 친환경 재료 사용

이강혁 씨는 홍익대학교에서 조소와 회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배고픈 순수 미술을 뒤로 하고 경제활동을 위해 건축/인테리어 분야에 뛰어들었다. 꾸준히 한 분야를 파고들면서 자신의 전공을 건축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잘 하지 않은 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 그는 다양한 시도 끝에 새로운 조형물 제작 방법을 창작하게 됐으며 1999년 조형물 제작 공법에 대한 특허 출원을 했다. 이어서 2009년 12월에는 현재의 소라집과 고래집을 있게 한 '재활용 자재를 이용한 조형 건축 시공법'에 대한 특허 출원을 했다. 재료제조부터 시공방법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현장 테스트와 연구를 통해 스스로 터득한 경험의 산물이기에 이 특허권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가 조형 건축에 사용하는 재활용 재료는 주로 볏짚과 종이박스다. 농촌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볏짚은 예로부터 흙과 함께 집 지을 때 사용하는 필수 재료이며 단열재로도 쓴다. 종이박스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목재 뼈대 위에 붙여 면을 만드는 데 그 어떤 재료보다 효과적이다. 자연스럽게 꺾이는 성질을 이용해 인공폭포의 돌 모양, 둥근 모양, 울퉁불퉁한 모양 등 어떠한 형태도 잡을 수 있어 이 씨에게 종이박스는 없어서는 안 될 재료다. 게다가 공짜이거나 저렴하다. 소라집에도 물론 종이박스가 쓰였다.
이처럼 그가 짓는 집은 모양이 톡톡 튀기도 하지만 그 내용물이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도 다시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사용하는 재료의 95% 정도가 친환경적입니다. 짚과 흙 그리고 숯처럼 자연물을 쓰고 건물을 해체할 경우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재사용할 수 있는 재료들을 주로 씁니다."
소라집, 고래집이 그렇듯 그가 만드는 집은 곡면이 많다. 그렇다면 내부는 어떨까. 내부는 일반 주택처럼 직선으로 이뤄져 있다. 가구를 배치하려면 직선이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곡면으로 생긴 자투리 공간은 붙박이장이나 다락 등으로 만들어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이런 의문도 생긴다. 곡면이나 울퉁불퉁한 조형 부분이 건축면적에 포함된다면 건축주 입장에선 손해다? 조형 부분을 외벽으로 친다면 그 안쪽은 버리는 공간이 되므로 그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외부 조형 부분과 별도로, 실제 사용하는 공간을 H빔과 목재로 골조를 만든다. 건축면적은 그 사각 프레임을 기준으로 삼고 조형 부분은 건축면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일반 주택의 외벽 바깥으로 튀어나온 처마와 같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조형 건축물 어떻게 짓나
조형 건축물의 구조는 어떻게 구성되나. 먼저 기초 위에 빔으로 기둥을 세우고 각재나 합판 자른 것 등 목재로 골조를 만든다. 조형을 이루는 뼈대와 실내 공간을 만드는 뼈대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기는데 이곳에 흙과 숯 그리고 짚을 번갈아 가며 충전해 단열층을 만든다.
"고래집의 경우 고래 주둥이에 해당하는 부분은 외벽 두께가 무려 140㎝입니다. 이처럼 곡면이 많은 외부 조형 부분과 내부 쪽 골조 사이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까 고민하다 가장 적합한 재료가 볏짚이라 생각했습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집 지을 때 사용해 온 것이라 사용에 무리가 없고 단열 효과도 있으니 여러모로 좋다고 판단했지요."

 

 

 

 

 

 

그러나 최근 몇 년사이 생태건축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스트로베일하우스(짚단벽집)와는 다르다고 이 씨는 설명한다. "스트로베일하우스는 짚단이 골조를 이루는 형태고 이것은 단열재와 조형물 충전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벽과 지붕 속 빈 공간에 짚을 충전한 후 외부 쪽에 박스를 붙인다. 마감 작업을 위한 면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 박스 면 위에 시공하는 재료와 시공법도 그가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 조형물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마감 재료를 연구한 그는 크랙과 변형이 잘 생기지 않고 방수 기능이 있는 특수 모르타르를 개발했다. 시공 방법은, 박스 면 위에 와이어메쉬나 메탈라스를 고정한 후 특수 모르타르를 5㎝ 두께로 두툼하게 바른다. 그 위에 특수 모르타르 전용 도장 마감하면 외장이 완성된다.
건축주 요구에 따라 다른 일반적인 외벽 마감재를 사용할 수도 있다. 내부 쪽 시공과정은 일반 주택과 같다. 목재 골조 위에 합판-석고보드-최종 마감재순으로 시공하며 건축주 요구에 따라 단열재(스티로폼 등)를 추가할 수 있고 벽지, 도장, 루버 등 다양한 내벽 마감이 가능하다.
현재 짓고 있는 고래집을 보면 지붕 속에도 볏짚이 가득 들어갔다. 지붕 속 바닥에 먼저 숯과 황토를 깔고 짚과 황토를 번갈아가며 채워 넣는다. 여기에 사용하는 숯은, 숯 공장에서 숯을 솎아내는 작업 과정에서 맨 마지막 남은 자잘한 숯(길이 3~10㎝)을 사용한다.
재활용 자재를 주로 쓴다고 해서 조형 건축물 건축비가 저렴한 것은 아니다. 원형 래핑된 볏짚은 한 묶음에 6만 원으로 고래집의 경우 30묶음이 들어가므로 총 180만 원 든다. 그 대신 보편적으로 쓰는 스티로폼으로 시공한다면 총 150만 원.
시공의 편리함에서도 스티로폼이 더 낫다. 그러나 재활용 재료는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는 변수는 있다. 이 씨는 고래집 현장 인근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여물로 쓰지못하는 볏짚을 반값에 구입했다.

 

 

 

 

 

 

상상 속의 집을 짓다
조형 건축물 공법을 사용해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다고 이 씨는 말한다. 최근에는 거창에 조성 예정인 테마공원에 4동의 조형 건축물 의뢰가 들어와 디자인 중이라고 한다. 소라집과 나무 위의 집 등 사람들의 눈을 동그랗게 할 특이한 건물이 곧 거창에 등장할 예정이다.
그는 때때로 고정관념과의 싸움도 해야 한다. 집의 형태가 사각형에 박공지붕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맞설 때면 마음이 언짢아지는 순간도 있다. 무주 소라집 지을 때의 일이다. 소라집 바로 옆 등산로로 다니는 사람들이 소라집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백발성성한 노인을 이 씨는 기억한다.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며 소라집을 보시고 갔어요. 처음에는 '뭐 하러 쓸 데 없는 짓 하나'라는 투로 1분 정도 소라집을 봤고, 그 다음 날에는 2분, 다음 날에는 5분…
그리고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30분 정도 아예 옆에 앉아서 지켜보시더라구요. 나중에 집이 완성된 걸 보시더니, '대단하다'고 칭찬을 거듭해주셨어요."
그는 예술가이자 건축가로서 창작 정신을 발휘하고, 독점권을 가진 기술을 보급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어찌 보면 자유로운 형태의 집을 연출하는 건축 과정에서 만큼은 행위예술가다. 조형 건축물을 대중화시키는 게 꿈이라는 그는 테마공원이나 펜션 단지처럼 조형 건축물이 단지를 이루고 조화롭게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건축과 미술의 접목,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상상 속의 집을 현실화하는 그는 오늘도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듯 집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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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상상의 날개를 달다, 조형 건축물 짓는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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