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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에 나란히 서 있는 전원주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가호호 대문이 활짝 열렸다. 대문이라기보다 집 경계를 알리는 표시 정도로 작고 나지막하다. 울타리도 옆집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낮거나 수목으로 경계를 표시한 정도. 이러니 옆집과 사이를 트고 지내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지하철과 가까운 전원주택'으로 유명한 안산 원당마을은 요즘 보기 드물게 이웃과 두터운 정을 나누는'사람 냄새 나는'동네다.

박지혜 기자 사진 백희정 기자 취재협조 원당마을 www.wondangvillage.com

 

 

 

 

 

 

전원주택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죽 일렬로 줄지어 있는 경기 안산 초지동 원당마을. 가장 오래된 집은 10년이 넘었다는 그 세월의 흔적을 집 외부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파릇파릇하고 풍성하게 자리 잡은 정원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익스테리어. 집의 생김새는 제각각이나 이처럼 자연스럽게'나이 들어'생긴 운치만큼은 서로 닮아 조화를 이룬다.
이곳 원당마을이 궁금해 문 두드리는 기자에게 입주민 최영옥(57세)씨는"사는 데는 달라도 사람 사는 모습이야 다 똑같지"한다. 최 씨는 이곳에 제 1호 집을 지은 제 1호 입주민으로 이곳 주민자치회 초대 회장이기도 하다. 원당마을에 깃들어 사는 90여 가구 주민은 개성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하단다.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하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접근이 좋다 보니 주로 안산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직장을 둔 가구가 많다고 설명한다.
한국수자원공사를 시행자로 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조성 사업이 진행된 고잔신도시는 지하철 안산선 중앙역과 고잔역 남쪽에 위치한다. 단독주택지인 원당마을은 해당 지구 북쪽에 위치해 지하철과 도보로 불과 5분 거리다. 영동선 안산 나들목에 5~10분이면 접근 가능하고 서해안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도로와 만나는 고속도로 분기점과도 편리하게 이어진다. 말 그대로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에 위치해 동서남북 접근성이 탁월하다.
보통 전원주택에 살면 대중교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생필품 하나 사려 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기에 자동차가 필수품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도시민이 전원주택으로 이주하면서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본다. 하지만 원당마을은 예외다. 자동차 없이도 마트, 병원, 학교 접근이 가능하고 공원, 공연장, 운동장, 스포츠센터 등 여가·문화 시설도 인근에 잘 갖춰졌다. 이처럼 도심 못지않은 편의시설을 갖췄으면서 주거용지(29.0%)에 가까운 공원과 녹지(22.1%) 조성으로 곳곳에 크고 작은 자연 속 쉼터를 만날 수 있다.
주민자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배윤조 씨의 아내 강영희(56세) 씨는"아파트에서 벗어나 마당에서 수목을 가꾸고 페치카로 인테리어 한 집을 동경해 왔는데 남편 사업 때문에 전원으로 가는 게 불가능했어요"라며"여기는 100% 전원 속은 아니지만 도시보다 쾌적하고 도시처럼 편리해 살기 좋아요"라고 전한다. 남편 은퇴 후 보다 한적한 전원으로 이주할 계획인 강 씨는 이곳은 그곳으로 가는 간이역이라 말한다.
철근콘크리트 주택을 짓고 3년 전 원당마을 주민이 된 정순이(46세)씨는 이곳에 와서야 아파트의'무미건조함'을 실감했다고 한다." 아파트에선 사람 구경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아파트에 살 땐 늘 건강이 안 좋았어요. 좋은 환경을 찾아서 여기 입주 전에 강원도 횡성에 남편과 함께 직접 6평 원형 황토집을 짓고 그곳에서 지내기도 했어요."정씨는 횡성에서 차가 미끄러져 전복 사고를 겪은 후 무서워서 횡성으로 발길이 뜸해졌고 황토집은 아예 마을 사람들 쓰라고 내놨다. 그 후 아파트를 대체할 주거형태를 고민하다 원당마을을 알게 돼 정착하게 됐다.

 

 

 

 

 

 

아파트 벗어나니 사람이 보이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곳도 없어요"라는 심정환(52세) 씨는 원당마을에 5년간 거주하다 개인 사정으로 잠시 집을 임대한 상태다. 2년 후 복귀할 계획이란다. 심 씨는 전원주택을 짓고자 양평 용인 등 여러 곳을 돌아봤지만 이만큼 모든 것을 충족한 데가 없었단다. 단지라도 외따로 떨어져 고립된 느낌이 들고 편의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해 보였다는 것. 심 씨는"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이곳에서 보냈어요"라며"도심 아파트에선 느낄 수 없는 이웃의 정을 느꼈기에 마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에요"란다. 그는 마을이 형성되던 초기 주민자치회에서 이 마을 자연 명칭을 그대로 따서 주택단지를 원당마을이라 명명한 이야기도 전해줬다.
2001년경 한 경량 목조주택 시공업체가 이곳 필지를 구입해 건축주들에게 분양하면서 목조주택을 공급했는데 총 26채의 목조주택을 지었다. 한 업체에 건축을 맡긴 건축주들은 자연스럽게 친하게 됐단다.
이 일대가 허허벌판이었을 때 제일 처음으로 주택을 올린 최영옥 씨는"지금은 가구 수가 늘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집은 서로 안 친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20가구 미만이었을 때는 집집마다 문을 열어 놓고 지내한 가족처럼 매일 얼굴 보며 살았어요"한다." 저 집 숟가락이 어디 있는지도 알 정도였으니까요"라 덧붙인다.
"겨울이면 추워서 바깥출입이 뜸하다가도 꽃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문 열고 나와요. 마당에서 식사하는 집도 많은데 식사 중에 이웃이 보이면 서로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함께 식사하자고 손짓해요. 수저만 놓으면 식사할 수 있는 분위기죠. 아파트에선 상상도 못할 일 아닌가요."
서울에 거주하다 원당마을 서쪽 반월공단에 남편 우 문 씨의 사업장이 있는 관계로 아예 안산으로 집을 옮긴 최 씨는 애초 고잔신도시 신축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리고 딱 9개월 살고 원당마을로 들어왔다. 아파트 15층이라 전망이 좋았음에도 마음이 답답하고 새집증후군으로 병원신세까지 졌다. 게다가 윗집 옆집 아이들이 내는 소음도 적잖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이곳으로 이주 후 모든 불편함이 말끔히 해결됐다.
"입주 1년 정도 됐을 때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무에게도 알린적이 없는데 원당마을 사람들이 단 한 집도 빠짐없이 장례식장에 찾아와서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알고 다들 왔을까 했지요. 친지도 개인 사정으로 못 오기도 하는데 이웃들이 찾아와 주는 데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심지어 아직 잘 모르는 이웃도 와줬어요. 감동이었어요."

 

 

마당은 커뮤니티 공간
주택 단지는 일정 규모 이상이면 커뮤니티 시설(주민공동건물)을 갖춰야 하고 최근 지어지는 고급 전원주택단지는 그 규모가 작더라도 커뮤니티 시설 확보에 노력하는 추세다. 여기서 여가 활동을 비롯해 주민간 소통도 일어난다.
그런데 원당마을엔 따로 커뮤니티 시설이 없어도 큰 불편을 못 느낀다. 바로 입주민 각자의 집 마당이 커뮤니티 센터가 되기 때문이다. 마당은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공간이 된다. 마당에서 음악회도 열고 회의도 하고 잔치도 벌인다. 원당마을 사람들은 마당이 사람에게 이처럼 편안함과 여유와 자유를 준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하나같이"아파트에서 살 땐 옆집 사람 얼굴도 몰랐는데 이곳에선 마당이 있으니 현관문을 자주 열어보게 되고, 자연스레 이웃과 마주치고 대화로 이어지게 된다"고 한다.
"입주 3년 정도 돼 주민들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가을음악회를 열기로 했어요. 한 달 반 정도 매일같이 모여 노래 연습을 한 시간도 즐거운 추억이에요. 10월의 어느 멋진 밤, 10여 가구 가족들이 정원에 모여 음악회를 열었지요. 조명으로 꾸며 분위기를 돋운 정원에 누구는 손수 만든 호두파이를, 누구는 와인을… 그렇게 각자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나와 로맨틱한 시간을 보냈어요."
입주 4년 차 강영희 씨도"이곳에 처음 왔을 때 가을음악회나 경로잔치 하는 걸 보고'이곳에 살면 이벤트가 많아 재밌겠네'하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올 가을에도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원당마을 색소포니스트 홍명선씨는 이웃이 연주를 청하면 기꺼이 달려간다. 정순이 씨는"어제는 우리 집에서 연주했어요"한다. 취재 당일도 스스럼없이 회장님 댁 마당에 모인 이웃들에게 멋진 연주 실력을 뽐냈다.
원당마을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이 모은 연회비로 매해 5월 경로잔치와 마을 유지관리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동사무소를 통해 기부하거나 식료품을 구입해 결손가정에 전달하는 등 좋은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영국의 시인 존 던은'어떤 인간도 고립된 섬이 아니다'며 사람의 사회성을 강조했다. 몇 년 전부터 참살이(Well-being)가 화두로 떠오르며 자연의 가치가 부각된 경향이 있다. 그에 못지않게'사람과 정을 나누는 것'도 참살이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임을 원당마을에서 느낀다.

 

 

 

 

 

"원당마을엔 사람 사는 재미가 있어요"

 

 

최영옥 씨는 원당마을이 조성되던 초기 2001년, 이곳에 처음으로 경량 목조주택을 지었다. 신축 아파트에서는 9개월밖에 못 살았는데 이 마을에선 벌써 10년째다. 아파트에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았지만 이곳에선 누가 이사 오는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보고 싶어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게 되고 알게 된다고 한다. 바로, 마당이 있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이웃들과 인사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다.
그가 신축 아파트에서는 얼마 못 살고 나왔지만 원당 목조주택에 오래 사는 데는 이웃의 두터운 정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파트에서는 새집증후군으로 병원 신세까지 졌지만 목조주택에서는 새집임에도 그런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 "실내가 쾌적할 뿐 아니라 10년째 살지만 그동안 하자나 유지관리가 필요한 부분도 없었어요. 조적집이나 콘크리트집 같으면 곰팡이도 폈을 텐데 이 집은 전혀 없어요. 그리고 요즘 같은 장마철에도 실내는 꿉꿉하지 않고 뽀송뽀송한 느낌이 들어요."
건강도 되찾고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사람 사는 맛을 알게 한 원당마을은 이제 그녀의 제2의 고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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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형 전원주택에서 답을 얻다] “마당은 우리의 파티장이에요” 교통 · 자연 · 편의시설 삼박자 완벽한 안산 원당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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