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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에는 백작수수쌀이라는 붉은 쌀이 유명하다. 올해 다섯 돌을 맞은 이 쌀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김백근. 그는 25년 농사 베테랑이자 1집 음반을 낸 가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를 노래하는 농부라부른다.

 

글 박지혜기자 사진 백희정 기자

 

 

 

투박해도 좋소 거칠어도 좋소/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언제나 떳떳하게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여// 목말라도 좋고 배고파도 좋소/ 그냥 자연과 함께 살아왔기에/ 언제나 푸념 없이 살아가는 자연의 사람들이여~'농부 김백근(48세) 씨가 작사 작곡한'농부의 마음'일부다. 바로 그와 가족, 이웃의 이야기다.
김백근 씨는 농부이자 가수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6대째 농사를 짓고있는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농부로 자랐다. 그렇기에 그가 가수의 꿈을 향해 집을 나선 것은 어쩌면 돌연변이 같은 행동이었다. 그의 아버지는'웬 딴따라 짓'이냐며 그가 기타줄 퉁기는 것을 영 못마땅해 했다.
수년간 유지해온 바람결에 날리는 긴 머리카락도 눈엣가시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던 기타는 젊은 날 그를 짜릿한 록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5인조 밴드를 결성해 음악인들의 아지트였던 신촌 일대를 누비며 20대 젊은 열정을 발산했다. 그러나 밴드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업소에서 연주하는 일이 그에게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고 타락한 예술가 같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고향집으로 들어와 농사에 매진했다.
"그때는 농사를 잘 몰랐어요. 일을 해야 하니까 무조건 새벽 서너 시면 일어나 밭으로 나갔어요."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해 한결 빠르고 수월하지만 그때만 해도 낫으로 베고 도리깨로 탈곡하던 시절이었다. 몸은 고달팠다. 품팔이로 남의 농사를 돕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몸을 던져 번 돈으로 기타줄을 사고 악기 사 모으는 재미에 더 바지런 할 수 있었다. 갓 시집 온 새댁이 그릇을 하나둘 갖추며 살림을 늘려가듯 그는 20년 동안 푼푼이 모은 돈으로 음악 작업실을 갖췄다.
"연 200만 원 벌 때도 어려움 없었어요. 시골에는 돈 쓸 일이 없거든요. 대신에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해요. 집고치는 일, 전선 연결하는 일…."

 

 

 

백작수수쌀을 탄생시키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아무리 못난 사람도 이 세상 모든 생명은 먹을 것아~ 찾더라''(쌀'중에서, 김백근작사·곡)
쌀은 그에게 음악 다음으로 삶의 큰 화두다. 그가 육종한 쌀은 광명지역 특산품이 됐다. 볍씨를 발견하고 개발하고 성분 분석을 통해 그것을 상품화하는 데만도 10년 가까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붉은 빛이 도는'백작 수수쌀'. 그의 이름'백'자를 따라 지은 백작伯爵은 오작五爵중 하나로 쌀 중에서도 귀족, 으뜸이라는 의미다. 수수쌀에 수수는'빼어날수秀''순수할 수粹'란 뜻을 담았다.
"2001년이던가, 논에서 일을 하다 우연히 붉은 볍씨를 발견했어요.
처음엔 이게 뭔가 하다가 한번 재배해 봤지요."
해를 거듭해 붉은 볍씨를 증식하며 7년간 실험과 실패 끝에 적미赤米20가마 수확에 성공했고 2007년 12월 백작수수쌀이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도 했다. 2008년 농협 직판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백작수수쌀은 기능형 쌀로 꾸준히 잘 나가고 있단다. 현미에 붉은색이 착색된 적미는 야생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고대미古代米로 현재 일반적인 백미白米 는 적미와 같은 착색미가 1만년 전 돌연변이를 일으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적미의 붉은 색소는 항산화 기능을 하는 카테킨, 안토시아닌 등 성분이 포함돼 있어 건강에 좋다. 경기도 농업기술원과 농협중앙회 식품안전연구원에서 성분분석 결과, 적미에는 단백질, 칼슘, 인, 철, 칼륨 등의 성분이 추청벼(일본에서 도입한 국내 장려 벼 품종)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분, 회분, 조지방, 포화지방산 등의 성분도 높게 나타났다.
"적미를 증식하는 과정에서 우리 집도 직접 밥을 지어 먹어 보니 쾌변에 좋고 막내가 몸이 허약해 픽 쓰러지기도 했는데 이걸 꾸준히 먹으니 쉬이 지치지 않고 건강해졌어요. 또 논을 임대해준 한 토지주는 당뇨병을 앓았는데 붉은 밥을 먹었더니 당수치가 내려갔다더라고요."
김 씨 가족은 1만 3000평 벼농사와 5000평 정도 밭농사를 한다. 이가운데 1000평 정도 백작수수쌀을 재배하고 있다. 수확한 모든 작물은지역 직판장에서 판매하는데 모두 인기가 좋아 일찌감치 소진된다. 여름에는 40가지 밭작물을 내다 파는데 한 가지를 맛본 사람들은"맛이 달라, 좋아"하면서 다른 먹을거리들도 모두 김 씨네에서 찾는단다. 그래서 힘은 들어도 가짓수를 줄일 수 없다. 맛이 좋은 특별한 비법이 있
나 물었더니 잘 모르겠단다.
"농부의 정성과 마음이 다 달라 그런가…?"

 

 

 

사람만이 생명이 아니다
농부의 마음은 단순하다.
"해가 나와 줬으면 할 때 해가 나오고, 꽃이 예쁘게 피고 튼튼한 열매가 맺히길 바랄 때 꼭 그렇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가장 기쁘지요."
그는 농사 덕분에 새로운 눈을 갖게 됐다.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감흥은 그의 노래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농사 초기, 한 날 밭에 나온 아내가"벌레가 있는데?"했고 그 다음엔 벌레들이 떼 지어 작물을 갉아먹는 모습에 놀란 부부는 죽여 없애기 바빴다. 그런데 그렇다고수확이 더 좋았던 건 아니다. 벌레를 애써 죽이려 하지 않아도 됨을 농사가 몸에 익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자 자연히 알게 됐다.
"참새 떼가 후드득 내려오더니 벌레를 잡아먹는 거예요. 그때,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약까지 쳐가며 굳이 우리가 죽이지 않아도 자연이 알아서 해 준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그 후론 그냥 내버려둬요. 벌레도 먹고 우리도 먹고… 그게 생태인걸요."
수확기, 그는 감사함과 미안함 두 마음이 교차한다. 작은 씨앗이 살기 위해 번식하고 뿌리 내리는 걸보면서생명을느낀다." 이것도하나의생명이고우리소유도아닌데꺾을자격이있나해서  미안한 거죠."그래서 지난해 3월 그의 콘서트 포스터에는 달과 풀과 이슬 이미지와'생명 우리는…'
이라는 글을 써 넣었다.
그는 농사짓는 틈틈이 봄 정기공연을 하고 그 외 여기저기 그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무대에 서고 있다. 공연 수익금 전액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착한 일도 한다. 광명시청 가정복지과를 통해 독거노인과 결식아동을 돕고 있으며 그냥 돈으로 기부하는 게 아니라 쌀을 구입해 기부함으로써 농가도 돕는다. 일거양득의 기부 활동인 셈이다.
이런선한마음도아량넓은대지大地의품에서25년간의농사로생겨난것이다." 땅은다받아줘요. 겪어 보니 그랬어요."그가 방랑을 끝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 땅은 아무렇지 않게 그를 받아주었다. 농사짓도록 몸을 내주었다. 최근 도시농업 콘서트에서 연주한 그는 귀농 희망자들에게 말했다.
"귀농을 원하는 분들, 땅은 대환영할 거예요. 나도 대환영이고요."
사람의 주름에서 세월의 풍파를 느끼듯 가락골 그의 집은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그가 태어나 자란, 그의 나이보다 더 나이 많은 집은 식구가 늘 때마다 품을 늘려온 덕에 허리가 휘었다. 그 한 모퉁이, 햇살과 달빛이 손바닥만큼 드는 그의 작업실은 노동이 끝난 해질녘 흙빛으로 물든 그의 손을 토닥여준다. 뜨거운 태양과의 사투로 녹초가 된 마음에 한 줄기 위안이다.
고된 몸으로 기타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잠이 들 때면 억울하다. 그럼에도 그를 기다려주는 음악이 있어 농사도 부지런히 할 수 있다. 농사가 없었다면 노래하는 김백근도 없고 노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농부 김백근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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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만난 사람 I 세상 모든 생명은 먹을 것 찾습디다 - 노래하는 농부 김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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