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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공원으로 꾸민 집

북향에 배머리 전면창을 낸, 가평 43평 단층 스틸하우스

3000평 부지 내에 생명력을 테마로 한 수많은 조각품들을 진열했다. 그 한가운데 가파른 지붕의 물매와 뱃머리 형태의 창호 디자인을 한 45평 단층 스틸하우스가 자리한다. 실내는 거실 천장의 경사도 살려 전면창을 냄으로써 시원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북향이다 보니 툭 튀어나온 전면창으로 동향빛과 서향빛을 최대한 받아들이게 했다. 높은 지붕을 활용하여 다락방과 다락거실을 앉혔는데, 양옆에 까치창을 설치하여 보다 넓게 사용했다. 다락에 앉아 1층 거실 및 외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다. 독립형 주방에서 외부 덱으로 바로 나가도록 하여 화사한 날 야외에서의 식사가 가능하다. 안방과 침실을 분리하여, 안방이 소응접실 기능을 하도록 했다.

주말을 맞이하여 상춘객(賞春客)들의 차량행렬로 북한강변 45번 경춘국도가 몸살을 앓는다.

내년에 경춘고속도로(46km)가 뚫리고 경춘국도 확장공사가 완료되면 좀 나아질까.

혹자는 서울에서 춘천까지 1시간, 가평지역은 30분대면 진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경기도 가평군 임초리로 가기 위하여 그나마 한적하리란 생각에 양평군 문호리에서 308번 지방도로로 접어들었다.

수입리를 지나는 길이 소요하여 차창 밖으로 내다보니 주말농장을 찾은 고사리손들이 모종삽을 들고 무엇인가를 한창 심고 있다.

맨땅을 밟고 흙을 만지는 즐거움이란 나이하고는 무관한가 보다. 조총천이 흐르는 가평군 상면 임초리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는 송영일 씨(60세)가 그러하다.

20년 전 마련한 부지에 집지어 정착
서울토박이인 송영일 씨는 H일보 문화부기자로 28년 간 재직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근처에서 살다보니 시골에 집 한 채 짓는 게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 방학하면 시골 외갓집으로 놀러 가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사회에서 기반을 잡은 80년 대 초반부터 전원생활에 대한 꿈을 이루고자 서울 중심 50킬로미터 반경 시골 땅은 안 밟아 본 곳이 없을 정도다.

마흔을 맞던 해인 1983년 조종천으로 스케치여행을 왔다가 민박을 하면서 우연찮게 그 꿈을 이루었다.

“여기서 며칠만 묵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하던 그의 말에 집주인이 “소원이면 이 집을 120만원에 사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북향인 것이 좀 걸렸으나 ‘북향 북문집에서 부자가 난다’는 말도 있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흔쾌히 계약금 10만원을 걸었다.

이듬해 알고 보니 땅주인이 따로 있어서 어쩔 수없이 땅을 사야했는데, 내친김에 평당 6000원에 3000평을 사들였다.

그 후 주말 전원주택으로 사용하며 20여 년을 오갔다. 당시에 심은 밤톨이 부쩍 자라 해마다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전원주택이란 개념이 뿌리내리기 전부터 전원생활을 해온 셈이다.

1996년 신문사에서 뼈를 묻겠다던 그에게 위기가 닥쳤다. 부장급 이상은 모두 사표를 내라는 통고였다.

‘장교로 복무하다 입사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냐’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에게도 현실로 나타났다.

1945년 이전에 출생한 사람의 사표를 모두 수리한 것이다. 퇴직 후 생활 리듬이 깨져 힘에 겨워했는데,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이 전원 속에 자리한 보금자리였다.

퇴사 후에는 평소 관심을 기울였던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우고자 조각대학원에 다녔다. 전원에 작업실을 만들고 조각에 몰두하면서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까지 작은 집수리도 기술자를 불러서 했는데, 여러 가지 조각공구를 만지다 보니 손수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작업실은 150여 년 된 농가를 부수고 다시 지은 것인데 후회가 막심합니다. 조각에 심취하면서 고가(古家)의 운치를 살리는 쪽으로 리모델링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 때문이죠.”

3000평 부지 내에는 생명력을 테마로 한 수많은 조각품들을 진열했다. 그 한가운데 가파른 지붕의 물매와 뱃머리 형태의 창호 디자인을 한 45평 단층 스틸하우스가 자리한다.

이 집을 짓고서부터 주말에만 찾던 전원으로 완전 이주한 것이다.

동네 주민과 어울리려 펜스도 없애
“처음에는 전원 분위기에 어울리는 황토집을 지으려고 했으나, 시공이 간편하고 공기(工期)가 빠른 스틸하우스를 택했습니다.

가평은 겨울에 추운 지역인데 스틸하우스는 외기(外氣)로부터 단열 효과가 좋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죠.

시공은 ‘(주)한국 스파큐 스틸하우스’에서 했는데 설계에서 시공까지 제집처럼 믿음직스럽게 해준 게 맘에 들었어요.

조각을 하다보니 용접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는데 흡족한 집이 지어졌습니다.”

부지를 마련한 20여 년 전부터 머릿속으로 수백 채의 집을 지었다 부쉈다 하기를 반복했다.

건축설계협의 때 북향이기에 창문을 많이 뽑고, 거실은 넓게, 안방은 동쪽에, 화장실은 서쪽에 낼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원칙을 세우고 이메일로 서류를 주고받으면서 설계도를 완성하고 건축에 들어갔다.

건축비는 평당 350만원 들었는데, 당초 30평으로 짓기로 한 것이 다락방까지 합하여 45평이 됐다.

27평의 덱(Deck)은 방부목을 직접 구해 손수 짓다보니 평당 50∼60만원 들 것을 모두 합하여 500만원으로 끝냈다. 지금의 주차장도 덱을 만들다 남은 자재를 모아 만드는 중이다.

이 집은 단층에 다락이 있는 형태로, 거실 천장의 경사도를 살려 전면창을 냄으로써 시원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툭 튀어나온 전면창으로는 동향빛과 서향빛을 최대한 받아들이게 했다.

높은 지붕을 활용하여 다락방과 다락거실을 앉혔는데, 양옆에 까치창을 설치하여 보다 넓게 사용할 수 있다.

다락에 앉아 1층 거실 및 외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다. 독립형 주방에서 외부 덱으로 바로 나가도록 하여 화사한 날 야외에서의 식사가 가능하다. 안방과 침실을 분리하여, 안방이 소응접실 기능을 하도록 했다.

건축주 송영일 씨는 “조각을 하고 정원을 가꾸며 하루종일 움직이기에 도회지보다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막연한 생각에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가 되돌아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씁쓸하다고.

“전원생활의 실패 원인은 생활이나 문화 차이로 마을주민과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전원주택을 지으면 펜스부터 치곤 하죠. 우리 집도 처음엔 250만원을 들여 펜스를 쳤다가 주민들하고 담을 쌓는 것 같아 모두 없앴습니다.

또 촉촉이 젖듯이 한 발 한 발 주민 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인건비 조금 절약한다고 외지인하고 일하기보다는 동네사람과 함께 땀흘려 일하면서 건실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소문이 빠른 곳이라 한 번 벽을 쌓으면 허물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그는 10년 앞을 내다보고 조각공원을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조경은 돈으로 되는 게 아니라 세월이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또한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듯이 정원의 나무도 소나무만 심으란 법이 없다고 한다.

전화로 정원에 심을 해당화, 홍매화, 소나무, 대추나무 묘목과 함께 성장 촉진제를 주문하는 그에게서 전원생활의 쏠쏠한 재미를 엿보았다. 田

■ 글 윤홍로 기자 / 사진 김혜영 기자

■ 건축 정보
·위 치 : 경기도 가평군 상면 임초리
·건축형태 : 철골조 단열보강 패널식
·대지면적 : 150평
·건축면적 : 45평
·외벽마감 : 드라이비트 은모래색
·내벽마감 : 실크벽지
·바닥마감 : 온돌마루
·지붕마감 : 육각 아스팔트싱글

■설계, 시공 : (주)한국 스파-큐 스틸하우스(02-561-1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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