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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 경기도 이천 부래미마을은 전국 최초로 외부 인력 공모를 통해 마을을 이끌 사무장을 뽑는다고 알렸다.
그해 서울, 번듯한 직장에 근무하던 최형두(37세) 씨는 이소식을 접하고 자신도 모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음속 울림을 느꼈다. 고심 끝에 울림에 응답한 그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사무장직에 도전했다. 그런 그를 두고 적잖은 부래미마을 사람은 "바보 같은, 못난 놈. 서울에서 얼마나 할 짓이 없으면 여기까지 오냐"며 빈정댔다. 그리고 몇 년 후, 30가구가 전부였던 부래미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가장 모범적인 농촌관광체험마을로 우뚝 섰다.

글 홍정기 기자 사진 최영희 기자

 

 

 

2004년 농림부(현 농림수산식품부) 녹색농촌체험마을에 선정된 경기도 이천 부래미富걐美마을(율면 석산2리) 주민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부 지원을 받아 각종 사업을 벌여야 하는데 도무지 적임자를 찾을 수 없었다. 30여 가구가 전부인 마을 주민의 연령대가 높았기에, 이들에겐 이제 막 시작하는 농촌 관광 체험 사업을 이해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몇몇 의식 있는 사람이 머리를 맞대 해결책을 찾은 결과, '사무장'이라는 직함을 만들어 녹색농촌체험마을사업을 주도할 젊은 사람을 공모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전국 어디에서도 공모를 통해 외부 사람을 데려온 사례가 없어 이 역시도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가 난감해 하던 차에 주민과 인연을 맺고 있던 외부인에게 적임자가 있으면 추천해 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그는 회사 동료 최형두 씨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며 '친구 중 소개해 줄 만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우연한 기회에 결심한 귀촌, 인생의 진로를 바꾸다
"당시 저의 팀장님이었는데, 단순히 친구를 알아봐 달라고 한 이야기만으로 괜히 제 가슴이 뛰는거예요. ' 어? 내가 한번 해봐'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아, 내가 해야겠구나'라는 결심이 서더라고요."
형두 씨가 본인이 하겠다며 회사에 사표를 내자 팀장은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좋은 자리를 박차고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형두 씨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시만 해도 귀농이나 귀촌을 한다고 하면 '서울생활에 적응을 못했다', ' 사업실패로 큰 피해를 봤다'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뭇사람의 이런 시선에 형두 씨는 개의치 않았다. 본인 의지가 워낙 확고했기 때문이다.
정작 그를 순식간에 무너트린 건 부래미마을 사람들이었다.
"바보 같은, 못난 놈. 서울에서 얼마나 할 짓이 없으면 여기까지 오냐."
"왜 내려왔나 싶더라고요. 자신들이 필요해서 불러놓고 바보취급을 하니 억장이 무너지지요. 그래도 일부 반기는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 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하고 한동안 많은 고민을 했어요."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은 후 마을에 내려간 이때가 2004년 10월이다.
왜 이런 비아냥을 감수하면서까지 부래미마을에 집착했을까.
"제 기질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해보고 싶거든요. 솔직히 농촌 관광의 선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제 고향이 강원도 인제인데 고향 생각도 났고요. 젊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농촌을 만들고 싶었어요."

 

 



 

 

녹색농촌체험마을에 이어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에 선정돼 5년간 70억 원을 지원받게 됐지만, 당시 부래미마을에는 주민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건물 옆에 체험관 하나 있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운영이 엉망이어서 문의 전화가 오면 그 내용을 수기로 작성해 기록하는 수준이었다. 형두 씨는 행정시스템을 정비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홈페이지를 통한 예약 시스템을 갖추고 방문객 현황을 수시로 체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연간 방문객 3만 명… 전국적인 유명세 얻어
그리고 마을 주민과 개별 면담을 통해 그들이 지닌 재능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쌀, 포도, 복숭아, 고구마 등 이들이 재배하는 작물이 다양했고 게 중에는 도예를 공부한 사람, 염색 일을 하다 귀농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활용해 농산물 수확 체험, 도자기 만들기 체험, 염색 체험을 만들고 마을에서 떡 잘 만들기로 이름난 주민에게는 인절미 만들기 체험을 제안했다.
이렇게 하니 그럴싸한 농촌 체험 하루 일정이 완성됐다. 오전에는 농산물 수확 체험을 하고, 수확한 작물로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도자기, 염색, 인절미 만들기 체험을 하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예약은 홈페이지를 통해 받음으로써 방문객 수에 맞춘 사전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했다.

 

 

 

 

농촌 체험이나 관광이 낯설었던 시기여서 부래미마을의 이러한 시도는 도시민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족이나 단체 방문객이 해마다 급증해, 첫해 5천 명 남짓이던 연간 방문객이 5년 만에 6배 늘어 3만 명에 달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동시에 부래미마을의 성공 사례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다른 지자체 관계자의 방문도 줄을 이었다. 정부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여 형두 씨를 모델 삼아 2006년부터 농림부는 전국 농촌 마을을 대상으로 '사무장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요. 부래미마을 성공 사례가 모델이 되면서 정부로 부터 집중지원을 받게 됐어요. '그러면 좋은거 아니냐'하겠지만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요. 받는 만큼 성과를 내야하니까요. 인력과 할 수 있는 일이 뻔한데 매년 나은 성과를 내야 하니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형두 씨의 고민도 깊어졌다. 부래미마을이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마을이 인기를 끌면서 젊은 층 유입이 늘었다고는 하나 이제 막 귀농, 귀촌한 이들에게 본업을 제쳐놓고 마을 일만 맡길 순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형두씨가 찾은 해답은 이웃 마을과의 연계였다.
부래미마을에 없는 것이 이웃 마을에 있을 수 있고, 참여 주민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더 다양한 프로그램도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무엇보다 '더불어 잘 사는 농촌'을 바랐다.

 

농촌 성장을 위한 핵심 키워드는 '네트워킹'
마을 주민에게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고 이웃 마을과의 '네트워킹'을 제안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 이제 막 안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벌리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왜 이웃마을까지 신경써야 하느냐'며 반대하는 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래미마을에서 5년을 지내면서 더욱 발전적인 모델에 대해 고민하다 개인적으로 내놓은 답이 '네트워킹'이었어요. 마을과 마을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면 시너지가 대단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주민 반대에 부딪혀 잠시 뜻을 접었던 형두 씨에게 새로운 소식이 날아왔다. 강원도 평창그린투어사업단에서 사무장을 모집한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이미 조성된 평창군 14개 체험마을과 관광협회, 숙박 업체 등 여러 단체가 모여 만든 평창그린투어사업단을 책임지고 운영할 사무장을 공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두 씨는 또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도 그의 선택은 도전이었다. 잘 나가는 서울 직장을 때려치우고 부래미마을로의 귀촌을 결심했던 것처럼, 새로운 도전을 위해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평창그린투어사업단이 농촌 마을 네트워킹에 최적의 모델이라고 판단한 형두 씨는, 지원 사업이 끝나기까지 1년 6개월 동안 근무했다.
"평창군은 영동고속도로를 기준으로 북쪽은 봉평, 대관령 등이 있어 관광 활성화가 잘 됐지만 남쪽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조사 해보니 평창을 찾는 방문객 80%가 북쪽 지역에서만 머물다 가더라고요. 그래서 남북 간 격차를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일을 진행했어요."
찾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 보존이 잘 돼 있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쪽 마을을 중심으로 생태체험을 적극 도입했고 이 역시 대성공이었다. 평창 여행객들의 편의를 돕고자 수도권 관광버스 회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첫해 지원금이 5천만 원 수준이던 것이 2년 차에는 2억 원까지 올랐다. 늘어난 지원금만큼 관광객이 평창을 찾은 것이다.

 

관官주도 농촌 체험마을 조성 사업의 허와 실
전국 농촌에 유행처럼 번지는 농촌 체험마을 조성 사업 등과 같은 각종 관 주도 사업에 대해 형두 씨는 적잖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전혀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하향식 정책 수립이 문제다.
"정부나 지자체의 관점과 저와 같은 현장 실무자나 주민의 관점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어요. 계획을 세우고 '여기에 맞게 써라'라고 하는데 정작 주민이 필요한 것은 그게 아닌 경우가 허다해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 계획서를 작성해 올리라고 하는데 결국 담당 공무원이 다 수정한 채 위로 보고되거든요. 결국 우리, 주민의 뜻이 아닌 담당 공무원의 뜻이 전달되는 겁니다."
담당 공무원의 빈번한 교체도 일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전혀 관계되지 않은 부서에서 오면 되레 마을 주민이 공무원을 지도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그리고 형두 씨는 현장에 나와 직접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무원은 토요일, 일요일에 쉬잖아요. 반면 우리는 그때가 가장 바쁘거든요. 주민이 그나마 쉴 수 있는 요일이 월요일이나 화요일이에요.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월요일에 보고서를 올려야 하니 쉴 때 연락을 해서는 '왜 빨리 보고를 안 하느냐'며 재촉을 해요. 주말에 잠깐이라도 현장에 나오면 정말 보고한 것처럼 방문객이 오는지,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지다 알 수 있을 텐데, 나오지않아요. 그러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제가 담당 공무원하고 주먹다툼까지 갈 뻔한 적이 있어요. 사업비가 마치 자기 돈인 양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지원비를 주지 않겠다'는 거예요. 정부에서 마을을 보고 지원해줬지 공무원을 보고 준 게 아니잖아요."

 

 





 

한편, 형두 씨는 농촌 체험이나 관광으로 성공하는 마을은 20%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실패하는 마을의 이유를 살펴봤더니 내부 갈등으로 제대로 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해 낭패를 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연 사업비가 똑바로 쓰이는지, 주민끼리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장파, 위원장파, 귀농파, 원주민파 등등으로 갈려 적잖은 갈등이 생기는 모양이다.
형두 씨는 현재 시급한 과제로 정부가 농촌체험 마을로 선정됐다가 실패한 지역, 사업이 지지부진한 지역 등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원 사업에 선정돼 각종 인프라를 구축했는데 2~3년이 지나도 성과가 없으면 마을은 더욱 황폐해져요. 농촌에 가면 사업 실패로 폐허가 된 건축물이 적지 않거든요. 정부나 지자체는 컨설팅 업체만 믿고 맡겨 두는 데 사실 그들은 계약이 끝나면 나 몰라라 해요. 자신들이 할 건 다 했다 이거죠. 남은 주민만 피해를 봅니다. 사실 피해라고 할 것도 없지요. 다들 연세가 많은 분들이니 그냥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면 되는데, 낭비한 예산은 어떻게 합니까. 정부도 이제 잘 되는 곳만 찾아 지원할 게 아니라, 실패한 지역의 사후관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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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람들은 귀촌한 나를 두고 “바보같은, 못난 놈”이라고 했다 - 농촌관광체험마을조성사업의 선구자 최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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