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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이야기를 번역해 집으로 구현해내는 것이 건축가의 몫

INTERVIEW 02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www.studio-gaon.com 임형남·노은주 공동대표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집을 통해 추억을 만들고 인생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수십 년간 그 사실을 잊고 돈이 되는 부동산으로만 보고 지냈던 것 같다. 몇 년 살다 다른 곳으로 이사해 버리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어느덧 우리의 집에는 추억이 아닌 돈만 남았다.
부부이자 가온건축 대표인 임형남·노은주 건축가는 집을 대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에 질문을 던진다. 아동학대, 가족해체 등 각종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 바로 집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한 권의 책과 같다이야기를 잘 해석하고 풀어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반갑습니다. 부부 건축가이자 이야기 들어주는 건축가로도 유명하시던데요?
노은주(이하 노) 반가워요. 저희는 선후배로 만나 결혼 후 함께 일하게 돼 99년 설계사무소를 열었어요. 어쩌다 보니 얼굴이 매체에 알려지게 됐는데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임형남(이하 임)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살 사람을 알아야 제대로 짓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보니 이야기 들어주는 건축가라는 소리를 듣나 봅니다. 하하하.

전원·단독주택의 과거 인식은 어땠나요?
_ 전원·단독주택을 돈 있는 사람들의 집이라는 인식이 강하던 2000년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저희에게 의뢰하는 분들은 대부분 평범하지 않은 개인이 많았어요. 예술가나 기업가처럼 흔히 말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었죠. 아파트로 부동산 재미를 한창 보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주택 짓는다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봤어요. 그 돈으로 아파트 사지 왜 돈도 안 되는 집을 짓느냐는 거죠. 그러다보니 2003년부터 2007,8년까지만 해도 주택 설계 의뢰가 많이 없었어요. 요즘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에 관심이 많아진 건 외환위기 등 각종 요인으로 아파트 부동산 열풍이 식으면서부터죠.
_ 먼저 지적할 게 기형적으로 팽창한 아파트 시장입니다. 주택 수요를 흡수하고 사람들을 아파트에 가둬놨어요. 미디어도 가난한 사람은 단독주택, 잘 사는 사람은 아파트라는 공식을 집중적으로 인식시켰죠. 아파트 열풍에 막대한 이득을 본 건축회사만 신났었죠. 한 번 지어서 여러 명에게 분양할 수 있는 데다 원가공개도 안 하니까요. 그래서 십 수 년 동안 아파트만 신나게 지어댔어요. 그래서 아예 단독·전원주택 시장이 초토화 됐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건설회사 위기예요. 아파트 열풍을 주도하던 그 회사들은 자생력을 잃었어요. 이런 대국민적 위기의 근본에는 정부가 있어요. 별 신경 안 쓰고 방조했다는 점에서 크게 잘못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교육과 맞물려 있죠. 학군 좋은 곳 아파트에서 교육해야 성공한다는 이상한 믿음이 퍼져있어요. 실제로 저희에게 집을 설계하시는 대부분이 이미 자녀 교육을 끝냈거나, 신혼부부 등 입시교육과 무관한 경우가 많아요. 문제는 그 사이, 중간층이 굉장히 두꺼운데, 이들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사교육을 과감히 끊어야 지금의 기형적인 거주형태도 변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정부 대책은 없어요. 알아서 살아남아라 이거죠.

주거 형태가 인식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_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지금 우리 사회를 보세요. 기껏 빚내서 마련한 아파트에 아무도 없어요. 애들은 학원 가 있고, 엄마는 그 아이들 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아빠는 그 학원비랑 대출이자 내겠다고 야근하잖아요. 집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돈으로 볼게 아니라 그 곳에서 우리 가족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해요.
_ 다행인 것은 요즘 그런 고민을 하는 건축주들이 늘어났다는 거예요. 이전과 비교해 자기 삶에 대해 적극적인 사람들이 많아진 걸 느낍니다. 그 전에는 남들이 아파트 사니까 따라 사고, 남들 학원 보내니까 따라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그런 삶이 과연 좋은 삶일까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건축주의 자아가 뚜렷해졌고 안목도 높아졌어요. 저희로선 함께 작업하기 더 좋아진거죠. 물론,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주거문화는 아직 열악한 수준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고 봅니다.

요즘 건축주들이 원하는 유형이 있나요?
_ 글쎄요. 뭐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 어려워요. 어떤 사람은 부엌을 중심에 놔 달라하고, 어떤 이는 거실을 별채처럼 쓰게 해달라고 요구해요. 집집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다 다른거죠. 요즘은 남에게 멋지게 보이는 집보다는 내가 쓰기 좋은 집, 실용성 높은 작은 집이 각광받고 있어요. 이제는 그 집에 무엇이 들어가고 어떻게 사용할지를 중요시 합니다. 그 안에 어떤 콘텐츠가 들어갈지는 사는 이에 따라 다르고요. 그렇다 보니 저희가 짓는 집의 모습도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죠.


설계할 때 애로사항은 무엇인가요?
_ 지면을 통해 당부드리고 싶은 게 상식적으로 생각해달라는 점입니다. 가끔 적은 예산을 가지고 큰 집을 지어달라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만약 싸게 지어주겠다고 접근한 회사가 있다면 분명 나중에 추가 공사비를 더 달라고 하거나 부실시공이 될 가능성이 커요. 아예 만나자마자 가설계 달라, 견적 얼마냐고 묻거나 일괄발주하는 시공사를 기준 삼아 왜 니들은 폭리를 취하느냐고 따져 묻기도 해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산 옷이랑 백화점에서 산 옷에 대해서 기대감이 다르잖아요? 건축도 그렇게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집 짓는 동안에는 귀를 닫으셨으면 해요. 집을 짓는다는 소문이 나기만 하면 주변에 사공이 많아져요. 집 지어본 친구, 시공사 다니는 처남, 친구 등 사람들의 조언이 계속 귀에 들어오게 돼요. 이분들의 문제는 대개 자신의 실패를 일반화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지은 집이 단열이 잘 안된다고 건축주한테 그런 식으로 집 지으면 안 된다고 조언하기도 하는데 보통 그런 경우는 부실시공이 많거든요.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 듣다 보면 오히려 집이 엉뚱하게 지어지고 돈과 시간만 버릴 수 있어요. 일단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으면 나의 내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 드리고 싶어요.
_ 시간을 넉넉히 잡고 시작했으면 해요. 저희 같은 경우 건축주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 걸리기도 하죠. 그 시간 동안 원하는 집 모습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함께 고민합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오랫동안 설계 잡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고 하는데 건축주와 마음만 맞으면 그 과정이 정말 즐거워요. 또 그래야 사는 이에게 맞는 집을 지을 수도 있죠. 저희로서도 건축주와 평균 1년은 붙어 다니니까 친척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기도 해요.
_ 실제로 충남 공주에 루체아의 뜰이라는 집을 공사한 적 있는데 그 건축주와도 즐겁게 일했어요. 그 때문인지 쓰러져가던 폐가가 아름다운 정원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 해 이제는 전국적 명소가 됐죠. 주인분도 그 집 덕분에 지역 명사가 다 되었고요. 그래서 찾아갈 때마다 그분이 한턱 쏘시기도 했어요. 하하하.

집이 놓이는 땅에 대해서도 관심이 깊으시던데요?
_ , 건축가라면 땅에 큰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풍수지리에 대해 미신이라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집을 지으며 쌓은 지혜가 바로 풍수예요. 이 일을 하면서 전국을 다니다보니 땅이 조금씩 읽히면서 풍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어요. 자연의 결에 맞춰 집을 지어야 이롭다는 것을 과거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잘 알게 됐고요.
본래 우리나라 건축 특징은 바로 땅을 무서워하고,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위나 산이 있다고 없애지 않고 거기에 맞춰 집을 지어왔죠. 자연에 잠깐 얹혀살아야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선조들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바로 지난 2011년 발생한 서울 우면동 산사태가 극명하게 이 점을 보여줬습니다. 산을 없애고 옹벽 만들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한 두 시간 집중호우에 토사가 무너져 인명피해까지 났었잖아요. 지금 4대 강에서 벌어지는 환경오염도 마찬가지죠. 자연이 가는 길에 사람이 함부로 정면 개입해선 안돼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땅에 대한 철학이죠.

우리 땅에 맞는 집을 짓다보니 한옥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_ 한옥을 전통기법 그대로 재연한다기보다, 지금의 기술력으로 한옥의 가치를 구현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굳이 전통 목구조를 쓰지 않아도, 한옥의 공간배치는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실제로 저희가 설계한 충남 금산의 금산주택이 한옥인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한옥은 아니고 그 공간 양식을 빌려온 집입니다.
_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 공간 배치를 금산주택에 접목시켰어요. 도산서원은 경이라는 철학을 그대로 구현한 건축물이라고 보는데, 공간 간 위계가 섞여있으면서도 자유스러운 높은 수준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죠. 또 자연을 관조하고 즐기는 자세가 녹아있어, 금산주택에 그 철학을 빌려오고자 노력했어요. 아마도 금산주택을 대중들이 좋아해주는 이유도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내년 패시브하우스의 본격 도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_ 패시브의 정의가 너무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해있는 점이 문제라고 봐요. 패시브하우스를 지으려면 창의 크기를 줄이고 단열에 신경 써야 하는데, 남향으로 낸 집은 창을 크게 내도 충분히 따뜻하거든요. 단열 기술도 좋아졌고요. 만약 패시브화하기 위해 창을 줄이거나 자연환기를 막는다면 오히려 저희 설계 이념과는 반대돼 버리죠.
_ 어떤 집이 건강한 집인지에 대해 먼저 되짚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어느 정도 창을 크게 내고 웃풍이 있는 집이 좋다고 보거든요. 공기순환이 잘 되니까요. 하지만 패시브하우스처럼 억지로 공기를 순환시키게 되면 오히려 집안 공기가 더 나빠질 거라 생각해요. 서울 타워팰리스만 봐도 건물 내부 안에서 공기가 순환하잖아요? 과연 그 공기가 건강에 좋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한 인터뷰에서 건축이 문화가 돼야 한다고 하셨던데 무슨 의미인가요?
_ (웃음)그렇게 거창한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요. 공간에 대한 다양한 기호가 생겨야 한다는 뜻이에요. 우리나라에는 음식에 대한 다양한 취향은 있어도 공간에 대해서는 그런 기호 자체가 없어요. 아파트라는 정형화된 공간에서만 살다 보니 공간에 대한 경험 자체가 없어요. 그렇다 보니 애써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내부는 아파트로 꾸미는 사례도 적지 않죠. 아파트에서 살아온 건축학과 학생들도 공간에 대한 창의력도, 의지도 없어요. 많이 안타깝죠.
_ 건축의 가장 좋은 재료는 생각이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집 속에 이야기와 철학이 들어갔어요. 퇴계 이황은 경, 우암 송시열 선생은 회통會通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집에 담았죠. 생각을 집에 투영하는 것이 곧 건축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집을 너무 물리적으로만 봐요. ·내장재는 뭘 쓸지, 지붕은 어떻게 하고, 안에는 뭘 넣을지만 고민하죠. 그러니 막상 집을 지어도 공허해져요. 그 공허함에 또 뭔가를 채우려고 하고. 이제는 다시 예전처럼 삶의 이야기가 집에 담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추구하는 생각이 가풍이 되고 후손들이 집을 볼 때 그 생각이 읽히도록 지어져야 합니다. 그게 바로 문화 그 자체가 되죠.

앞으로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지 말씀해주세요
_ 사람의 이야기를 잘 담고 싶습니다. 건축은 건축주와 함께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 이야기를 잘 번역해서 땅에 심어놓는 사람이고요.
_ 집 짓다 늙는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건축하는 일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잖아요? 꿈을 집으로 만드는 작업이니까요. 그런데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건너뛰거나 생략하곤 해요. 즐거운 집짓기를 원한다면 설계 과정을 오래하셨음 해요. 탄탄한 설계가 신뢰를 만들고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는 기반이 될 거라 봅니다.
_ 저희는 재미없는 일은 하지 말고 재미있는 일만 하자는 게 모토인 만큼, 앞으로도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사람들 이야기 즐겁게 잘 들으면서요. 하하하.

Profile

가온건축
임형남·노은주 공동대표

2011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2012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KBS 한밤의 문화산책> <SBS스페셜_학교의 눈물>, <MBC스페셜>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는 나무처럼 자라는 집,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작은 집, 큰 생각, 사람을 살리는 집등이 있다. 현재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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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2. “사람의 이야기를 번역해 집으로 구현해내는 것이 건축가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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