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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재료로 글 짓고 밥 짓고… 
윤혜신 작가의 1인 3색
대부분 전원생활이라면 복잡한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풀밭을 매며 자연을 누릴 거라 생각하고 그런 삶이 행복한 것이라 정형화한다. 하지만, 여기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당진으로 내려와 다양한 삶을 누리며 사는 이가 있다. 자연에서 온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인생을 더 풍부하게 빚어가는 윤혜신 작가를 소개한다.
 
이수민 기자
사진 백홍기 기자
작가 윤혜신

윤혜신 작가는 요리연구가이자 화가이고 동화 작가다. 그중 그녀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도와준 건 그녀의 손맛이었다. 그녀의 요리 솜씨는 외할머니와 시어머니로부터 내려왔다. 지금의 산과 들에 널려있는 제철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솜씨는 어린 시절 방학마다 놀러 간 외갓집에서 외할머니가 차려주신 소박한 밥상을 통해 자연스레 몸에 밴 결과물이다.

윤 작가의 궁중요리 실력은 혼인 후 시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시어머니의 살림 솜씨는 주부 9단을 넘어 100단이었다. 늘 밖에서 일하는 윤 작가의 친정 엄마와는 다른 차원의 솜씨였다. 집 안 구석구석은 늘 정리 정돈이 잘 돼있고 깔끔하며 품위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혼인하며 시어머니 옆에서 살림살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살림 솜씨 중 요리 솜씨가 특히 좋았다. 청소면 청소, 빨래면 빨래 뭐든 잘 했지만 음식 솜씨는 인간문화재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시어머니의 아버지는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을 가르치던 문인화(선비나 사대부들이 여흥으로 자신들의 심중을 표현하여 그리는 그림) 선생이었는데, 궁을 같이 드나들던 시어머니의 어머니가 수라간 상궁들과 친하게 지내며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궁중 음식을 배웠다고 한다. 그녀는 친정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여러 가지 요리들을 시어머니 옆에서 하나씩 배우면서 재미도 있고 신기해 열심히 따라 했고 그렇게 궁중 요리에 눈을 뜨게 됐다.
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요리들. 단호박찜, 표고버섯 고추장구이, 연근 버섯 구이다(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녀는 시어머니가 물려준 놋그릇을 꺼내 식탁에 올린다.



자연이 주는 식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려 요리한다.
위로부터 내려받은 요리 솜씨
외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전수받은 덕에 그녀는 지금 자연요리 전문가와 궁중요리 전문가를 겸하고 있다. 전업주부였던 그녀가 처음부터 요리연구가로 이름을 알린 건 아니다. 그녀의 요리를 맛본 지인들이 감탄하며 요리 수업을 요청했는데, 그렇게 지인들을 가르치며 시작한 작은 요리 수업은 그녀를 EBS 요리 프로그램의 요리 선생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할머니와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요리 솜씨는 한식당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녀가 한식당을 시작하게 된 것은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였다. 윤혜신 작가와 그녀의 남편은 모두 서울 토박이로 줄곧 서울에서 살았지만, 남편이 자신의 꿈은 자연과 어울렁 더울렁 사는 것이라는 얘기에 둘이 같이 그 꿈을 이루고자 당진에서 새롭게 터를 잡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식당 ‘미당’을 열게 된 것이다. 물론 식당 일을 해본 적 없던 그녀이기에 문을 열고 처음 3년 동안은 고생을 했단다. 자연 식재료를 그대로 사용해 천연 조미료로 버무려 간을 슴슴하게 해서 내놓으니 ‘싱겁다’ ‘맛없다’ 타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말이 마음 쓰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할머니와 시어머니에게 배운 그대로 음식을 만들어 내놓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번 왔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다. 그렇게 그녀의 한식당 ‘미당’은 20여 년 가까이 그녀 삶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던 지난해 3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에 이 기회에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크게 마음먹고 식당을 접었다. 지금은 그 자리 옆에 작은 건물 하나를 지어 카페 피어라를 열었고 작은 딸이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셰프인 작은 사위와 함께 국숫집을 계획하고 있다.
카페 ‘피어라’ 입구.
윤혜신 작가가 운영하던 한식당 ‘미당’이 있던 건물. 지금은 둘째 딸의 카페 ‘피어라’손님들의 자리다.
윤 작가의 집은 일터이자 놀이터, 쉼터를 담고 있는 확장된 공간이다.

둘째 딸의 카페 ‘피어라’가 있는 건물.
주변 산새를 해치지 않은 지붕을 가진 ‘미당’이 있던 건물의 옆모습. 1층에는 윤혜신 작가 부부가 살고 있다.
집은 일터이자 쉼터
집에 일터, 놀이터, 쉼터를 둔 윤혜신 작가에게 집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집은 언제나 나를 담고 보호하고, 농경민 아내인(여기저기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유목민’ 남편과 상반되는 의미) 내 삶을 가꾸는 최소의 단위이자 최고의 장소에요. 집을 쓸고 닦고 가꾸면서 나의 가능성을 되짚어 보곤 해요. 여기에서 집은 벽 안 만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고 집 밖의 텃밭, 꽃밭, 뒤란같이 확장된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녀는 집에서 밥 짓고 바느질하고, 글도 쓰고 고양이도 기르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도 떨며 하루를 채워간다. 그리고 고된 일이 끝난 뒤 잠자리에 들어서 꿀잠도 잔다. 윤 작가 삶의 95%가 집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자연 속에서 매일 다른 삶을 사는 그녀는 계절에 따라 어떻게 생활할까?

“집 안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주면서 살아요. 봄에는 환한 색의 이부자리를 깔고 그릇도 하얀 도자기로 바꾸죠. 예쁜 화분으로 실내를 장식하거나 봄꽃으로 꽃꽂이를 하고요. 여름에는 시원한 색감의 천으로 소파를 감싸고 인견과 린넨 이불을 꺼내요. 희고 푸른색의 찬기들로 식사를 하고 집안을 쾌적하게 하죠. 가을에는 가을색의 쿠션으로 분위기를 내고 감색의 차렵이불을 덮어요. 음식은 호박, 마, 토란 같은 달고 따스한 식재료로 몸을 보해줘요. 겨울엔 오가닉면솜을 두툼하게 넣은 푸근한 이불과 뜨개질로 마무리한 무릎덮개나 쿠션을 많이 둬요. 불빛을 따스하게 하고 국이나 찌개를 자주 끓여 몸을 녹여요. 그릇도 어머님이 물려주신 놋그릇을 써요. 계절이 바뀌고 꽃들이 피고 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지만 시골생활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이 아름답죠. 물론 좋은 일만 있진 않아요. 나쁜 일로 속상하고 슬프고 괴로운 일들도 생기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그게 삶이죠.”
윤혜신 작가의 집 안. 그녀를 닮아 품위와 단아함이 느껴진다.
남편과 둘의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 공간. 하지만 그녀의 조리하는 공간은 부엌만을 일컫진 않는다. 요리의 재료가 있는 곳, 시장과 텃밭, 슈퍼마켓도 요리를 상상하는 공간이기에 또 다른 조리공간이 된다.
그녀의 집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적벽돌을 안팎으로 둘렀다.
정원 생활자로 꽉 채워진 하루
한식당 ‘미당’을 접고, 식당 일을 안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이른 새벽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 정원 손질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만큼 맘껏 할 수 있다는 거란다. 남편은 나무 위주로 가꾸고, 그녀는 초화류 위주로 관리한다. 지난 1년간 시간 없어서 못하던 정원 일을 많이도 했다. 손 가는 만큼, 식물도 잘 자라고 아름다움도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을 몰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윤혜신 작가는 당진에 와서 신춘문예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녀는 ‘미당’을 운영하며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 등을 글로 풀어냈고 월간 잡지《작은 책》과《개똥이네 집》에 그 글들을 연재했다. 그 외에《착한 요리 상식사전》(동녘라이프),《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올랜》(백 년 후),《사계절 갈라 메뉴》(백 년 후),《자연을 올린 제철 밥상》(영진미디어) 등을 썼다.
윤혜신 작가. 한식당을 접고 좋은 것은 이른 새벽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 정원 손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을 몰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단다.


윤 작가의 집 안 곳곳에는 그녀의 손길이 닿은 화분들이 즐비하다.

독특한 향의 당귀 꽃과 세이지 꽃과 윤혜신 작가. 
앞으로의 꿈은 동화요리연구가
윤혜신 작가는 꿈꾸던 화가의 꿈도 이루며 살고 있다. 5년 전 서울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드로잉 수업을 들으며 그림을 하나씩 완성했고 한 출판사의 추천으로 수업 작품 전시회에 냈던 그림으로 책 <꽃할배>를 출간했다.

그녀의 꿈은 지금도 계속된다.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맛을 표현하는 동화를 직접 쓰고 그림도 그려볼 계획이다. 꾸민 글이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둔 감동적이면서 아이 어른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식과 엮여있는 감동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한다.
카페 ‘피어라’는 SNS에서 청보리밭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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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 PEOPLE] 자연 재료로 글 짓고 밥 짓고… 윤혜신 작가의 1인 3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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