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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있는 집

엄소리는 예닐곱 채 가옥이 조롱박 모양으로 늘어선 작은 동네다. 주변을 얕은 야산이 감싸고 움푹 들어간 지형이라 한 겨울에도 꽤 따뜻한 편이다.

양평 방면 6번 국도로 가다 옥천면 쪽으로 좌회전, 유명한 옥천냉면을 지나면 설악면 가는 국도가 다시 나타난다. 그 도로변의 멋진 산세가 그대로 타고 내리는 끝자락이 바로 엄소리다.

경기도에 ‘아직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한적한 동네. 경사진 작은 텃밭의 귀퉁이마다 오래된 농가 일곱 채가 들어선 모습이 평화로운데, 난데 없는 백색 스틸하우스 한 채가 시선을 뺐는다.

어떻게 봐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오래된 농가와 번쩍(?)이는 서구식 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은 아마도 ‘전원’ 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일 게다.

건축주 윤성분 씨가 지난 겨울에 530평의 농지를 평당 20만 원에 구입, 130평을 대지로 전용해 31평짜리 스틸하우스를 지었다.

원래 경북 상주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젊은 시절, 학업 때문에 서울로 상경했고 졸업 후에 모 외국계 회사를 10여 년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실로 우연한 기회에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데, 친한 친구가 뜻밖의 사고를 당해 얼떨결에 그의 사업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워낙 준비 없이 시작했던 일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모든 게 그의 뜻대로 되질 않았고, 결국 몇 년 후에 사업을 정리하고 말았다.

이후 마음을 가다듬고 평소 꿈꿔왔던 화훼사업도 시작해 보았지만, 이번엔 IMF라는 거대한 산이 또다시 그를 막아섰다.

이렇게 두 차례의 고배를 마셨던 그가 택한 길은 고향에 내려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윤 씨는 다시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은 이미 그의 기억 속에 묻혀있던 고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윤 씨는 전원생활에의 꿈을 펼칠 곳을 물색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곳에 집을 짓게 됐다.

툇마루와 3면에 창을 낸 거실

처음에는 텃밭이 있는 서측의 높은 지대를 건축부지로 사용하려 했지만, 인접 주택에서 사용하는 창고용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있어 지금의 낮은 자리에 지었다.

일조와 통풍이 좋은 남쪽과 동쪽에 퍼블릭 공간을 두고 북쪽으로는 다용도실 등 사용 빈도가 낮은 공간을 배치해 에너지의 완충 지대가 되도록 했다. 주 출입은 동측 도로변에서 완만한 계단을 통하도록 돼있다.

내부 배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바로 거실이다. 거실을 마치 따로 떼어낸 듯이 떨어뜨리고 3면을 개방해 전통가옥의 대청마루와 같은 공간감을 얻고자 했다. 주방 겸 식당도 동쪽의 조망과 남쪽의 채광을 최대한 고려했다.

주방이 다소 작아진 게 흠인데, 다용도실을 넓혀 그런대로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안방에는 작은 옷방과 부속 욕실을 하나의 유닛으로 만들었고, 안방과 거실, 현관 입구에는 방부목으로 툇마루와 테라스를 두어 전원의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설계자인 (주)미래환경 최남석 사장은 이 주택을 설계할 때 크게 두 가지에 주안점을 두었다. ‘첫째는 어느 방향에서든 무언가 표정을 갖는 얼굴을 그려내는 것이며, 두 번째는 고전적 형태와 현대적 형태 간의 어울림’이다.

다시 말하면 전자의 경우 집을 네 방향에서 봤을 때 각 면마다 나름의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도록 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거실은 모던한 래프터(Rafter) 구조의 경사지붕으로 하되 다른 부분은 전통적인 박공지붕으로 처리하고는 이 두 형태를 좀 더 수평에 가까운 한 덩어리로 연결 지어 이질적인 서로를 병립(竝立)시킨다는 이야기다.

건물의 단면을 보면 1층 바닥의 높이는 걸터앉기에 적당한 툇마루를 기준으로 잡아 석 단 정도의 높이를 취했다.

그리고 천장의 높이는 보통의 마감자재 규격과 에너지의 효율성 등을 고려해 2.4미터로 하되, 거실 부분은 래프터 지붕의 경사면을 그대로 놓아 3.6미터 내외의 높은 천장이 되어 중심적인 공간감이 나도록 했다.

이렇게 짓는 데 소요된 건축비는 설계비를 제하고 1억 원이다. 건축 과정에서 조금씩 욕심을 내다 보니 처음 예상보다 더 비싸졌다.

한적한 전원생활로의 이동

건축주 윤 씨는 원래 목조주택을 지으려고 했는데,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난 (주)미래환경의 디자인 컨셉이 마음에 들어 스틸하우스로 결정했단다. 집을 다 지은 지금 큰 후회는 없지만 부엌과 욕실이 작은 게 다소 아쉽다고.

기름보일러를 쓰는데 난방비는 아직 겨울을 보낸 적이 없어 정확한 비용은 알 수 없다. 무엇보다도 윤 씨는 인근에 큰 오염원이 없어 지하수가 차고 깨끗해 식수걱정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이고 밥을 지어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인근 야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약수라 하여 외지사람들이 일부러 이를 찾아올 정도란다.

10분 거리에 면 단위의 동네가 있어 시장을 보거나 병원, 우체국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 다만 워낙 외진 곳이라서 조금 적적하고 밤이면 무서울 때도 있다는 게 흠이다.

이 마을의 여덟 집 중에는 다섯 집만이 사람이 살고 있고, 세 집은 비어있는 상태다. 남아있는 다섯 집도 모두 혼자사는 노인들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나마 이들 중 한 사람만 빼고 겨울이면 도시로 모두 떠났다가 봄이 돼야 다시 돌아온다고 하니 결국 겨울이면 이 마을에는 두 가족만 남아있는 셈이다.

우리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모습이다. 다만 윤 씨네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세 딸이 주말에 이곳에 내려와 집안 일을 거들어 주곤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큰 욕심이 없으므로 걱정할 것도 별로 없어요. 다만 지금까지 잘 자라준 세 딸이 모두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게 작은 소망입니다.”

지난 비로 넘어진 정원석을 다시 쌓느라 분주한 틈에도 윤씨 부부는 세 딸 걱정이다.
“화훼농장이요? 글쎄요.”

윤 씨의 오랜 꿈이었던 난(蘭)농장에 대해 묻자 ‘기회가 온다면 다시 해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다’며 말 끝을 흐린다.

‘난 농장은 시설비 등 워낙 자본이 많이 필요한 데다 위험부담이 높은 사업이라 쉽게 덤벼들 수 만은 없다’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그의 눈은 남아 있는 400평의 텃밭을 향했다.


경기도권이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 새로 둥지를 튼 윤 씨 부부의 전원생활. 다른 전원주택에 비해 불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서울과 멀지 않은 곳에서 조용함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田

■ 글·사진 / 신동성 기자

■ 건축정보
· 위 치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엄소리
· 대지면적 : 120.09평
· 건축면적 : 31.06평(건폐율 25.87%)
· 연 면 적 : 36.37평(용적율 30.29%)
· 층수구조 : 지상1층 및 다락
· 외벽마감 : 시멘트사이딩
· 내벽마감 : 페인트
· 바닥마감 : 온돌마루
·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 구 조 재 : 경량철골조
· 난방형태 : 기름보일러
· 식수공급 : 지하 암반수

■ 설계 및 시공:(주)미래환경(02-353-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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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미와 현대의 조화 이룬, 가평 31평 스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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