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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에서 만난 사람

귀농 4년만에 농가주택짓고 농지도 마련...

올해로 귀농한지도 벌써 4년째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완전한 농부의 모습으로 탈바꿈했으며 올 들어선 영농후계자로 선정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영농후계자로 선정돼, 지원 받은 영농자금으로는 1천8백평의 논도 구입했다. 처음으로 임철오씨 이름의 농지를 마련한 것이다.

막상 귀농을 결심하고 아내에게 처음 얘기를 꺼내던 날, 두 사람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가 흔쾌히 동의해 줄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생각지 않았으나 귀농에 대한 부부간의 생각차이가 의외로 컸다.
처가쪽 반응도 만만치 않았고 본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가에서는 서울집까지 찾아와 절대로 내려오지 마라며 귀농을 말렸다. 그러나 임철오씨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젊은이의 역할이 중요하고, 농업도 열심히만 하면 회사 생활보다 나을 수 있다고 꾸준히 설득했다. 한동안의 소란을 거쳤지만 주위의 반대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짐을 꾸려 시골로 향했다.

음성에서 516번 지방도로를 따라 괴산을 가다보면 목도강 닿기 전에 앵천리란 곳이 있다. 도로 옆에는 음성천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멀리 월악산 정상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괴산군 불정면 앵천리가 임철오 홍정의씨 부부의 귀농 보금자리다.

올해로 귀농한지도 벌써 4년째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완전한 농부의 모습으로 탈바꿈했으며 올 들어선 영농후계자로 선정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영농후계자로 선정돼 지원 받은 영농자금으로는 1천8백평의 논도 구입했다. 처음으로 임철오씨 이름의 농지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부부가 귀농에 성공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95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이 곳 고향으로 내려왔으나 누구하나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고 부모님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들은 동네사람들 보기 창피하다며 마실도 한동안 가지 않았다고 한다. 동네사람들 반응도 마찬가지 였는데 '머잖아 다시 서울로 다시 갈 사람들'이라며 쉽게 정을 주지 않았다. 요즘 말로 ‘왕따' 였다.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아내 홍정의씨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고 대학까지 마쳤던 아내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농사일에 모든 것을 바쳤다. 부모님의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 손에 물집이 생기는 일은 다반사였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참고 견디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그러기를 2년. 두 해가 지나자 비로소 서울티가 벗겨졌다. 피부는 까맣게 그을렸고 옷차림도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다. 어느새 동네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농가주택을 지을 수 있는 자격도 부여됐다.



임철오씨 부부는 5.5%짜리 5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의 주택자금 1천6백만원을 융자받아 집을 짓기로 했다. 서울서 내려올 때 가져온 전세자금, 그리고 그동안 모은 약간의 돈을 합쳤다. 집 모양은 곤지암에서 보았던 한 방송인의 집에서 힌트를 얻었다.
콘크리트 옹벽을 치고 내외 벽면엔 태안 반도에서 생산되는 옹기 벽돌로 외장 마감을 했다. 보통 벽돌 보다 4배나 비싼 장당 8백원씩 주고 구입했다. 건평32평 단층에 방2개, 화장실, 거실, 주방 그리고 15평정도의 창고도 만들었다. 건축비는 평당 2백만원 정도로 모두 6천4백만원 정도가 들었다.

번듯한 거처가 마련되자 모든 것이 안정됐고 농사일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4년째에 접어들자 제법 경작 면적도 늘었다. 그동안 경작했던 4천평의 논에 올해 마련한 1천8백평이 더해져 모두 5천8백평의 논농사를 짓게 됐다. 게다가 1천평의 고추 농사와 함께 인삼도 2천평이나 심었다. 만만치 않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면적이다.

인삼은 1평을 1칸으로 보는데 1칸당 3~6만원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수익성이 괜찮음에도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3~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쉽게 인삼에 손대는 농민들이 드물다. 하루하루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시간이 흘러간다. 지난 4년간의 세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땅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됐고 이제는 땅을 떠나선 살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귀농이후 한달이 멀다하고 서울에 다니러 가던 아내 홍정의씨도 이제는 서울행 발길이 뜸해졌다. 농촌 일손이 바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시골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임철오씨 부부는 농촌도 열심히 하면 도시생활보다 나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도시생활보다 더 부지런해야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田

글·사진 / 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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