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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수준의 향상과 교통여건 개선, 여기에 주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최근 2∼3년 간 꾸준히 확산되던 전원주택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전원주택 전문업체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3년 안에 전원주택으로 옮겨가겠다고 답한 사람이 응답자의 6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깜짝 놀랄 결과이고, 거대도시 집중이 불러오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감안할 때, 매우 고무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수요가 늘어나면 자연히 공급의 질도 높아진다. 소비자는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얻게 되고, 서두르지 않더라도 정직하고 경험많고 또 믿을 만한 업체 중, 자신에게 꼭 맞는 곳을 선택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논의에 있어, 전원주택 시장의 급성장과 부가산업 확대라는 제도적, 물리적 쟁점만 부각될 뿐 정작 그것의 원인이자 결과인 전원생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대안 등이 빠져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삶의 질이나 교통 여건의 개선 등은 성공적으로 전원에 정착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원은, 혹은 전원생활은 그 자체로 건강하고 낭만적이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걸 주고자 한다고 해서, 그 모두를 우리가 꼭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전원생활은 먼저 기대하기보다는 먼저 찾고 다가서는 것이며,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때문에 땅사고 집짓는 일은 전원생활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엇으로 시작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오산에 목조주택을 짓고 사는 이환묵 씨는 전원생활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자연은 어떻게 사귀는 것이며, 전원생활이란 어떻게 시작하는 것인지, 전원과의 조화와 화합은 어떻게 만들어 가는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모던하면서도 단아한 느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오산I.C로 나가 시끌벅적한 시내를 지나 정남방향으로 들어가다 보면 한적한 외곽마을이 나온다. 듬성듬성 개발의 흔적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편도 2차선 도로 주변에 드물게 보이는 민가들은 낯익은 초야(草野)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산시 서동, 넓직히 터를 잡은 집들이 가을의 풍성한 햇빛을 마당 가득 품어 안고 있는 곳, 그곳에 이환묵 씨의 전원주택이 있다.

거친 풀 사이로 화목난로의 연통과 오렌지색 파라솔이 봉긋하게 보일 뿐,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지만 잘 정리된 조경과 경사지붕의 완만한 곡선은 전통목구조의 단아한 느낌을 준다.

또 대부분의 목조주택이 주는 깔끔하고 경쾌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지붕처마, 벽체코너, 창문테두리까지 같은 색상으로 처리해 통일된 이미지를 주며, 전면창을 낸 중앙 벽면과 지붕 위 연통 부분에 인조스톤을 사용해 안정감 있고 중후한 분위기다. 처마를 길게 뽑아 출입구를 독립적으로 강조하고 강화 플라스틱으로 된 데크와 방부목의 펜스도 인상적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조경인데, 건축주 이환묵 씨가 직접 조성했다. 나무도 꽃도 잔디도 모두 이환묵 씨가 가꾸고 보존한 원시림의 일부로, 건축 당시 다치지 않게 조심하느라 애도 많이 먹었다고.

보통 3,000∼4,000만원이 든다는 전원주택 조경이지만, 이환묵 씨가 정원 조성을 위해 목돈을 들인 것은 조경석 외엔 거의 없다. 이것도 크레인으로 직접 사다 옮겨와 석공을 불러 손질한 것이다.

아치게이트나 쉘타, 정자나 연못같은 그럴듯한 조경시설물 하나 없지만, 줄기뽕나무가 자라는 파고라나 자연석과 원목을 활용한 디딤돌, 작은 호박돌담으로 경계 지은 정감 있는 화단 등은 모두 그의 솜씨다. 농고 입업과를 졸업한 그는 전원생활을 결심하면서부터 꾸준히 조경공부를 해왔다. “내 손으로 했다고 하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더군요. 그렇다고 쉽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99% 노동이예요. 엄청난 노동이죠. 저한테는 그게 이 일을 해보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였어요. 정성들여 생명을 키우는 기쁨이야 말도 못하죠. 사심도 없어지고 마음이 참 맑아지는 것 같아요.

자연은 빈손을 내미는 법이 없어요. 노력한 만큼 돌려주거든요. 그래서 여름 내 여기서 흘린 땀이 저렇게 단풍으로 드는 거잖아요.”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정원 한쪽에 자리한 공작단풍이 유난히 붉어 보인다.

실내 공간은 방을 넓게 빼 공용공간을 좁혔지만 직장다니는 자녀들의 사생활을 배려해 가족실의 규모는 크게 잡지 않았다. 오픈된 주방은 현관과 동선을 잇고 주방 입구 맞은편에 있는 다용도실 겸 창고 옆으로는 바로 부출입구를 만들어 후정과 연결시켰다.

경사지붕을 이용한 다락방은 직장다니는 딸의 2층 침실에 부속시키고, 뻐구기창과 작은 덱을 내어 아늑하면서도 개인적인 공간의 느낌을 유도했다. 또 2층 복도의 고창(高窓)과 거실 안쪽에 위치한 천창을 통해 채광과 환기를 확보하고 실내 분위기를 밝게 계획했다.

목조의 내구성을 고려해 나무의 변형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북미산 각재로 골조시공하고 몰딩재나 실내 문에 모두 원목을 사용해 질감을 살렸다. 또 하수배관의 냄새와 소음을 줄이고 배수가 원활히 되도록 스톡벤트를 설치했다. 건축비는 심야전기보일러를 직접 설치한 것을 빼면 평당 320만 원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지어진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전원생활, 행복한 보물찾기
건축주 이환묵 씨는 원래 오산이 고향으로 30년 가까이 도시에서 생활하다 얼마 전 32년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명예퇴직 후 이곳으로 옮겨왔다. 흙과 나무, 논밭과 살고 싶어 오랫동안 전원생활을 갈망했다는 그는 94년 부지를 매입했다.

농지였던 땅을 평당 15만 원에 300평을 샀는데, 108평은 밭으로 남기고 160평만 대지로 용도변경했다. 대지법상 자연녹지라 건폐율이 20% 밖에 안돼 건축 면적이 좀 부족한 듯 싶었지만, 네 식구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다고.

“도시 살 때 정기적으로 매달 이비인후과를 다녔어요. 귀도 멍멍하고 코도 답답하고 만성이었죠. 9급 공무원에서 시작해 32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더니 오십 넘어 몸이 여기저기 삐걱거리더라고. 작년 12월에 여기 내려와서는 지금까지 병원 한번 안갔어요. 너무 바빠서 앓아 누울 시간도 없지만, 이젠 귀도 맑아지고 갈 필요가 없는 거죠”.

말단 공무원에서 시작해 오산시청 행정국장 출신의 고급 공무원이 되기까지 그가 겪은 세월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겠지만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며 전원생활에 불만은 손톱만큼도 없다고 한다. 이환묵 씨의 가족은 다행히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 마음을 이해해준 덕분에 가족들의 만장일치로 전원생활을 결정했다. 게다가 출가한 큰딸 내외까지 자주 찾아와 온가족이 함께 지내는 시간도 월등히 늘었다고.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이들은 많지만, 전원생활을 진정으로 즐기며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직접 키운 옥수수를 쪄내며 올해는 비가 많이 와 실하지 못하다고 사람 좋게 웃는 이환묵 씨의 전원생활은 매일 매일이 자연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보물찾기 같다.

평생 고생하셨으니 좀 편하게 쉬시지 왜 여태 바쁘게 사시냐는 말에 “농사꾼의 아들이 돌아와야 할 곳으로 제대로 찾아 온거죠.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예요. 이렇게 좋은 곳이 세상에 또 어디 있어요”라며 맑은 얼굴로 웃는 그에게서 진한 흙냄새가 나는 듯했다. 田

■ 글 엄치언 기자, 사진 박일 기자
■ 자료협조/푸른나이테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오산시 서동
·건축형태 : 경량목구조(내·외벽 2″×6″)
·대지면적 : 300평
·건축면적 : 44평
·내부마감 : 석고보드, 벽지
·외부마감 : 시멘트사이딩 +인조스톤
·지붕마감 : 이중그림자슁글
·바닥마감 : 온돌마루
·창 호 재 : U-PVC시스템창호
·난방형태 : 심야전기보일러
·식수공급 : 상수도
·건축비용 : 평당 320만 원

■ 설계/시공 : 푸른나이테 (031-902-3123,
www.greenannualr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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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게 지은, 오산 44평 2층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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