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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 국도따라 전원주택따라
안성에 지은 집

미리내성지가 있는 마을에 지은 목조주택 “집짓던 중 업체 부도로 고생 많이 했어요”

수원에서 자영업을 하는 강훈규씨는 전원주택을 짓기로 마음먹고 3년동안 구상을 했다. 어느 곳에 어떤 집을 지을까? 그러다 안성의 양성면 노곡리를 택해 내려와 부지 2백50평 연면적 47평의 목조주택을 지었다. 이곳을 택한 것은 우선 사업장이 있는 곳에서 1시간이내라는 것이며 평수도 두 부부와 아들, 딸 네가족이 살기에는 가장 적당하다는 계산에서 정했다.

용인에서 평택으로 행하는 45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안성군 양성면을 지나게 된다. 이곳 양성면의 외진 곳 얕은 골짜기에는 우리나라 최초 천주교 신부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미리내성지가 있다.
도로에서 미리내성지로 드는 진입로변에는 숲으로 우거진 아늑한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수원에서 24시 편의점을 운영하는 강훈규씨가 이곳 마을에 내려와 집을 지은 것은 작년이다. 그는 평소 전원주택에 관심이 많아 그동안 관련 책들을 사보며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러다 3년전부터 전원주택짓기에 대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아내와 함께 전국의 잘 지었다는 전원주택들을 찾아 다니며 구경도 하였고 마음에 드는 땅을 찾아 여러 곳을 쫓아 다녔다. 그러다 만난 곳이 이곳 양성면 노곡리 마을이다. 강훈규씨가 집지을 터를 마련하면서 가장 신경쓴 부분은 사업장이 있는 수원과의 연계성이었다. 수원에서 한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집을 지어야 사업에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지역은 용인이었으나 마음에 드는 곳은 가격이 이미 많이 올라 있어 경제적인 부담도 컷고 또 투자적인 측면에서도 이득이 없을 듯 했다. 그래서 용인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인 안성을 찾게 되었다. 안성은 용인의 인기에 눌려 이렇다할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지역이지만 주변경관도 좋고 가격도 용인과 비교해 평가절하된 지역이 많았다.

그렇게하여 재작년에 노곡리 마을 한쪽의 준농림지 2백50평을 평당 16만원에 구입했다. 이렇게 작은 평수의 땅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평수의 땅을 필요로 하는 크기만큼 잘라서 파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용허가를 받아 총 47평을 짓기로 하고 지금은 부도나 사업을 하지 않는 통나무주택업체와 평당 2백80만원에 건축계약을 맺었다.

부지 2백50평에 47평크기의 주택은 강씨 부부와 아들과 딸 등 네가족이 살 공간으로 가장 적당하다는 판단에서 정했다. 욕심이 앞서 너무 큰 평수의 땅을 구입하거나 집을 지어 입주후 힘들어 하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실속있고 경제적인 전원주택을 염두에 두었다.

그렇게하여 IMF가 막 시작되던 작년 1월 건축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건축을 시작하고 나니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고생도 많이 했다.



우선 시공업체를 잘못 선정한 것이 문제였다. 선정한 업체는 자금사정이 안좋아 부도직전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업체는 현장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건축계약을 할 때 이행보증보험을 받아두었지만 불안했다.
이행보증보험은 대한주택보증(주)(건설공제조합이 바뀜)나 보증보험회사에서 취급하는 보험상품으로 업체에 주택시공을 맡겼다 마무리 짓지 못할 경우 손해를 보장해 주는 제도다. 이런 안전장치를 미리 해두었는데도 IMF로 인해 많은 피해를 봤다. 특히 캐나다산 목재를 자재로 썼는데 환률이 인상되면서 부담이 커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공업체는 중도에 부도가 나버렸고 그래서 강훈규씨 본인이 현장소장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직접 집짓는 것을 챙기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좀 더 좋은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애초에는 데크를 생각지 않았다가도 데크를 시공했고 내부도 석고보드로 마감하려 계획을 했으나 원목으로 바꿨다.

이렇게 하다보니 애초 건축비를 2억2천만원 생각했으나 2억6천만원이 들었다. 강훈규씨 가족은 현재 수원에 살고 있다. 가족들은 이따금 이곳을 이용하지만 강훈규씨는 매일 내려온다. 그가 편의점 일을 끝내는 시간은 새벽이다. 이 집을 짓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 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 집을 짓고 부터는 새벽에 이곳으로 내려와 집도 가꾸고 텃밭도 돌본다.

여러모로 그는 이곳에 집짓기를 정말 잘하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나서 두 부부만 적적하게 사는 모습들을 많이 보는데 강훈규씨는 이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같아 매우 흡족하다.

아이들이 이곳 집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들이 결혼해 분가하여 살아도 주말이나 휴일을 택해 놀러오듯이 이 집을 다녀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다. 그래서 2층은 아들과 딸의 방을 각각 하나씩 꾸몄다. 나중 결혼해서도 다녀갈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집을 짓기위해 강훈규씨는 3년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손수 땅을 사고 전용허가를 받았다. 시공업체에 건축을 맡겼으나 중도에 부도나는 바람에 직접 현장을 챙겼다. 이렇게 집을 짓고 나니 그는 집짓는 일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그래서 전원주택을 짓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처음서부터 끝까지 자문을 해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田

글·사진 / 김경래

미리내 성지 매년 9월 현양대회에 참배객 3~4만명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미리내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였다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천주교 박해때 신자들이 숨어살던 곳으로 1895년 천주교회당이 설립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후 1896년 강도영 신부가 부임해 현재의 돌성당을 건축했다.

1976년 6성모성심수도회에서 성지관리 및 개발책임을 맡아 25만평의 부지에 수도원, 수녀원, 피정의 집, 예수수난 14처상, 겟세마니 동산을 건립했다. 맞은편 계곡에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된 묘역이 있다. 연중 순례객들이 끊이지 않으며 특히 매년 9월 현양대회에서는 전국에서 3~4만명의 참배객이 모인다.

미리내성지로 가기 위해서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안성나들목에서 공도면 소재지를 거쳐 18번지방도를 타고 양성면 소재지를 지난다. 그리고 용인 방면 45번 국도를 따라 장서리에서 미리내로 직진하면 된다. 또 영동고속도로 용인나들목에서 내려 남쪽 45번 국도를 따라 13㎞쯤 달리면 용인을 지나 송전(이동)삼거리가 된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45번 국도와 헤어져 좌회전하면 미리내 성지에 갈 수 있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남부터미널이나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안성까지 이동한 후 시내버스를 타면된다. 안성까지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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