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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는 시인이자 육군사관학교 교수인 이기윤(50) 씨가 전원생활을 위해 새롭게 뿌리내린 곳이다. 본지에 1년 가까이 생동감 있는 전원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세월리로 향하는 기자의 마음은 처음과 같이 설레기만 했다.

양수리를 거쳐 양평대교를 지나 십오 리(6㎞)쯤 지나오자 곤지암·이포 방면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자리 잡은 마을 세월리에 도착했다. 88번 지방도로와 44번 지방도로가 교차하는 곳으로 양자산의 수려함과 남한강의 수줍은 미소가 먼저 객을 맞는다. 근처에는 경치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곳이 많아 연인들과 사진가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이 교수를 만나기로 한 곳은 세월 머리방 앞이다.
“세월머리방? 바로 저기지. 지금은 문을 닫았는데……. 가도 아무것도 없어.” “이기윤 교수? 새로 이사온 집? 저기 골목으로 들어가야 될 걸.”이라고 답해준 친절한 아주머니 덕에 초행길이라 더듬거려야했을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다.

마을 앞을 지나는 냇물이 너무 맑아 달이 그냥 지나지 못하고 몸을 씻고 가 세월리(洗月里)로 전해진다는 아름다운 곳. 이 교수가 이곳을 알게 된 것은 1998년이다. 평소 다산 정약용 선생을 존경해온 터라 육사 문학부 생도들과 함께 봄이면 남양주 능대리에 위치한 정약용 생가와 묘소 참배를 위해 자주 들르던 곳이었는데, 그 해 화가인 후배가 산수유마을로 이사를 했고 그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능대리를 거쳐 도립리로 가야 했다. 바로 도립리로 가는 길 중간에 세월 리가 위치한다. 그 첫 만남에 반해 이곳에 뿌리내릴 결심을 했다.

청송 심씨의 집성촌인 마을에는 현재 213세대 500여 명이 살고 있으며 단일동네로는 양평에서 제일 크다. 이 교수는 지난해 7월, 농가주택과 함께 부지 165평을 매입하고 백색의 집을 얹혔다. 9월까지 트럭 100대 분량의 흘과 돌을 쌓고, 집짓기는 10월부터 그 이듬해 3월까지 이어졌다. 공사가 한창이던 10월부터 12월까지 추운 날씨로 인한 시멘트 양생의 어려움으로 진통을 겪기도 했다.

농민들의 삶 속에 동화된 집
건축당시 부인 김영희(49) 씨는 집을 2층으로 얹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전원생활을 계획하고 전원으로 이주한 사람 중에는 농민들의 삶 속에 동화되지 못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현대인들의 주거생활을 살펴보면 생활 할 수 있는 최소 공간으로 묶여 이웃끼리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네 시골을 보면 형태적으로는 떨어져 있으나, 열린 공간에서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집을 2층으로 얹는 것은 경관을 확보한다는 지배욕이 앞서는 개인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건축의 구조는 43평의 주거동과 10평의 별도 건물로 구분된다. 별도의 건물은 현재 상경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부인 김 씨를 위한 화실이다.

주거동의 실내 구조는 현관입구를 기준으로 우측으로 방, 좌측으로는 거실로 구성돼 있다. 부부침실과 자녀 방이 욕실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주방의 조리대 부분이 거실과 벽을 두고 있어 분리된 공간으로 독립성을 갖는다. 주방 건너편에는 서재가 있고 넓은 창을 통해 안개 피어나는 배밭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다용도실과 보일러실이 별도로 구성돼 있다. 화실은 부인을 위한 독립된 공간으로 꾸몄다. 화장실과 간이 주방이 준비돼 있고 벽면 상단이 유리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책상을 만들어 마을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한다. 또 해마다 열리는 한일작가 교류전에 참가하며 문화의 발전과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옛 집과 같이 아궁이를 쓸 수 없으니 건축당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난방이다. 넓은 창이 많지만 겨울을 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난방은 심야전기보일러를 이용한다. 식수는 1984년 개통된 마을 간이상수도를 이용하고 있다. 다랫골의 맨 위 양자산 줄기에서 시작되는 이 물은 매끈한 온천과 같고 단맛이 혀끝을 감돈다.

집 앞 키 큰 나무 위에 지은 까치집에 찾아든 까치의 울음소리가 정답고 평화로운 세월리. 그 안에서 자연훼손을 걱정하며 자연을 아끼고 걱정하는 이 교수의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돈다. “자연에 순응하는 집을 짓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과제”라고.

떠나가는 사람들, 떠나온 사람들
이 교수의 가족들은 육군사관학교 관사 아파트에서 23년 간 생활했다. 때문에 그의 큰아들 상훈(24)이 아버지와 같은 육군사관생도의 길을 지원했을 때는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간의 기초 군사훈련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이 교수의 눈빛에서 단단한 부성애가 전해졌다. 둘째 아들 상섭(22)은 현재 대학교에 다니며 주말이면 어김없이 세월리를 찾는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전원으로 이사 온 가족이 있다. 3년 간 자신의 집을 손수 짓고 있는 임철승 씨가 바로 그다. 이 교수의 전원일기 주제가 되기도 했지만 세월리를 향한 그와 가족들의 결심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그의 사랑스런 두 아이 동형, 동완이 형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게 먼발치로 뵌다. 간식 먹을 시간도 없이 학원가방을 바꿔들고 서둘러 집을 나서는 도시의 아이들과 달리 주위를 관찰하고 이야기하며 여유로운 걸음을 걷는 아이들의 미소가 행복해 보였다. “참교육이란 이런 거겠지…….”혼자 중얼거려 본다.

“우리 동네는 텃세가 없다”고 말하며 외지인과 화합해야 마을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마을 이장 심재준 씨. 까치가 울기 전, 이른 아침부터 어김없이 “아‥ 아‥ 마을 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로 시작되는 낭랑한 이장님의 마을방송은 주민들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골사람들 나름대로의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의 통솔력과 현명함으로 원만한 해결을 얻는다고.

한길에는 동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알 수는 없었으나 심익보, 심재욱 부자의 미소를 본 듯하고, 마을일이라면 언제나 앞장서 일하는 세월리 청년 심용보 씨의 예쁜 결혼소망이 이뤄지길 희망하며, 동네 슈퍼 주인 내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듯한 착각이 든다.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역사의 등뼈를 베개 삼고, 마음 어른들과 주민들이 보내주는 따뜻하고 정겨운 인심을 이불 삼아 전원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겠노라”는 이 교수의 굳은 다짐을 엿보고 돌아오는 길은 한없이 즐겁고 뿌듯하기만 하다.

■ 글·사진 김혜영 기자

■ 건축 정보

위 치 : 경기도 양평군 가평읍 금대리
건축형태 : 경량철골조주택
대지면적 : 165평
건축면적 : 본관 43평 + 화실 10평
외벽마감 : 시멘트 사이딩
내벽마감 : 실크벽지
천장마감 : 실크벽지
난 방 : 심야전기보일러
지붕마감 : 아스팔트슁글
식수공급 : 간이 상수도
건 축 비 : 평당 230만 원
조경비용 : 2000만 원

■ 설계 : 토우건축사사무소 (031-774-0545)
■ 시공 : 융성건업 (011-320-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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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과 함께 하는 삶, 양평 43평 경량철골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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