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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살다보면 가끔 적막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이럴 때는 어김없이 시골장터를 찾습니다. 5일마다 열리는 시장은 백화점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오리, 토끼를 구경할 수 있는 가축시장, 생선시장과 민속품시장 등……. 봄이면 고추, 상치 모종과 다년생화초를 사다 심습니다. 자고 나면 얼마만큼 더 자라있는 모습에 감탄할 수 있는 여유, 직접 기른 채소를 솎아내는 것, 자연을 씻는 즐거움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生)을 위한 삶이 아닐까요?”

도시의 찌든 삶을 회복하라는 듯, 소리 없는 비가 대지를 적신다. 이천시 신둔면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평소 같았으면 1시간 내에 도착할 거리였지만 이날은 무슨 일인지 고속도로 진입 훨씬 전부터 발목을 잡는다.

자칫 인터뷰시간에 늦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생각은 곧 현실로 다가왔고, 만남의 광장 입구의 화염 흔적은 왜 그렇게 거북이걸음을 했어야 했는지를 납득시켰다. 전통도자기를 재현하는 이남신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듯했다.

약속시간을 한 시간여 넘겨 도착한 곳은 행정구역상 이천시 신둔면 지성리에 위치한 ‘여명요’라는 요장(窯匠)이 있는 곳이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 비포장 언덕길을 지나 산자락까지 오르니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푸른빛 진 잔디와 늘푸른 소나무가 힘든 길 오느라 수고했다는 듯 살랑 바람을 일으킨다.

이남신은 청자전통작가 한명선 선생 밑에서 도자기 공부를 시작했다. 이천에서 생활한 지도 올해로 스무 해를 넘긴다. 원래 서울에서 생활했으나 도자기 만드는 일에 직접 몸담지 못해 홀로 이천에 내려왔다. 1년여 동안을 설득한 끝에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는 홍수가 지난 끝이면 옛 도요지를 다니며 파편을 수집하고 자료를 모아 전통도자기 재현에 앞장섰다. 유약의 두께며 흙의 색에 따라 큰 차이가 있어 도자기의 파편을 깨보고 느낌을 얻기 위함이었다. 전통적인 색감과 느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을 알 수 없이 계속되는 연구와 재현은 자신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활고를 가중시켰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색상을 얻기까지 상품을 내놓지 못해 생활고를 많이 겪기도 하죠. 무엇보다 제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어려움이 가장 컸어요” 라며 미안한 마음을 미소에 담아냈다.

장터나들이로 적막함 잊어
5년 전 공기 좋고 높은 지형에서 자연을 느끼고 싶다 생각에 전(田)과 임야 형태였던 부지 1000여 평을 구입했다. 그리고 180평의 건물을 얹혔다. 집 뒤편으로 전원주택 한 채와 자그마한 절이 있다. 산은 악산(惡山)이라 더 이상의 개발이 불가능하다.

조금은 외진 곳이지만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정상이기도 하다. 평소 생각했던 내용을 건축에 담아 의견을 제시했고 고문(古門) 등 자재를 구하러 지방에 다니기도 했다. 본관에는 전시장과 차방(茶房)이, 뒤편으로 주거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별도의 작업장 2동이 함께 한다. 이남신은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연의 품속에서 자랐다. 큰 아이가 이곳에 와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말이다.

그의 하루 일정은 아침에 일어나서 약간의 운동을 하고 가축사료를 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양이와 개, 토끼의 먹이를 챙겨주고 낙엽도 쓸어야 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자기 기초체험이 없는 날이면 개인작업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해가 서산을 넘는다. 전원에서 시골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적막하다는 생각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럴 때는 어김없이 5일마다 열리는 시골장터를 찾으면 백화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오리, 토끼를 구경할 수 있는 가축시장, 생선시장과 민속품시장이 함께 한다. 봄이면 고추, 상추 모종과 다년생 화초를 사다 심는다. 자고 나면 얼마만큼 자라있는 모습에 감탄한다. 이것이 바로 생(生)을 위한 삶이 아닐까.

사람도 자연의 일부
이남신은 13년을 연구해 완성해낸 달항아리 백자가 EXPO기간동안 조직위원회에 선정돼 기념작으로 청와대에 입점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것을 완성하는 일은 그림이 있는 항아리보다 훨씬 어려웠고 원하는 작품을 얻기까지 70∼80% 이상이 깨져나갔다. 좋은 흙을 구하고, 실험을 반복하는 일은 일생일작으로 끝나지 않기를 희망하는 작가들의 작지만 큰바람이다.

고려시대 청자의 재현 또한 가치 있는 만큼 어려움을 동반한다. 아직은 조상들이 만든 청자를 보고 재현하기에 미흡함이 많으나, 그는 머지않아 선보일 작품 연구에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현재 이천에는 300여 군데가 넘는 요장이 있습니다. 전통 도예를 연구하는 곳도 있고 공방의 개념으로 이용되기도 하죠. 조선백자가 세계 속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서양의 도자기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통 도자기의 재현은 민족의 작품이며 누군가 계승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신선함을 줄 수 있는 도자기의 계승과 발전은 가장 우리다운 것을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줍니다” 라고 이남신은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방목돼 길러지는 토끼가 배웅이라도 하듯 마당에서 풀을 뜯고 있다. 아무리 집토끼라지만 강아지보다 달갑게 사람의 품으로 안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 이 손이 낙엽이 되고 산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듯 말이다.

■ 글 김혜영 기자/ 사진 양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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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면서 채워 가는 삶 - 도예가 이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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