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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동북부에 자리한 도농복합도시인 남양주시. 서울 노원구 공릉동과 경계를 이루는데 태릉선수촌에서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남양주시 별내면이다.

키 재기를 하듯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콘크리트 숲 옆에 고즈넉하게 전원(田園)이 펼쳐진다.

남양주시는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특별대책지역, 상수원보호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에 묶여 전체 면적의 80%가 토지이용규제를 받고 있다. 콘크리트 숲에 잠식되지 않은 채 전원을 간직한 이유이기도 하다.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불암산자락에 팔작지붕을 인 한옥이 한가로이 번잡한 도심을 굽어보고 있다. 비로부터 벽체를 보호하고 햇빛을 피하는 그늘을 만들려고 처마를 길게 뽑았다.

며느리서까래라고도 하는 부연(附椽)을 덧달아 처마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기품을 높였다. 또한 기단(基壇)이 제법 높은 편인데, 돌 대신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대리석을 덧붙였다.

특이하게도 한옥을 지어 입주한 건축주 구자현(60세) 씨는 빌라를 전문으로 시공하는 건축업자다.

현대건축업자 한옥을 짓다
건축주와 행인흙건축 이동일 사장과의 만남은 작년 봄,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소개를 받아 전화했으니 카탈로그 좀 보내 주세요.”

“그보다는 현장을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며칠 후, 4월 중순 건축주는 여주 하품리 공사 현장을 찾아 이 사장과 첫 대면을 했다.
“나도 업잔데, 콘크리트집만 수십 년을 졌어요. 내가 살 집은 건강에 좋다는 흙집으로 지으려고요. 한옥으론 안 지어 봐서……. 평당 얼마면 짓죠.”

기초 상담이 끝나자마자 이 사장이 현장 답사를 한 곳은 서울 외곽 천연의 전원주택지였다.

“그린벨트지역이라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니, 설계 초안을 작성해서 건축설계사무소에 보내줘요. 콘크리트집 전문가인 내가 지하실을 둔 기초공사는 할 테니 뼈대만 세워 줘요. 나무도 좋은 놈으로 하고, 서까래도 육송으로 해서 부연도 달고, 기와도 좋은 놈으로 쓰고……. 흙벽돌은 큰 거 작은 거 두 장을 덧대서 잘 좀 해 줘요.”

이 사장은 서울이나 다름없는 곳에 한옥형 흙집이 진출한다는 설레임으로 시공을 시작했다. 한편으론 ‘건축업자라, 뭔가 까다롭고 끝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하는 우려도 했다.

노원구 중계동 상가주택에 살던 건축주는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그린벨트에 묶인 불암산자락 610평의 부지를 8년 전 평당 40만 원에 매입했다. 그리고 천혜의 전원주택지를 구했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가 이웃하며 살자고 해서 300평을 넘겼다.

그린벨트에서 허가를 받아 건축할 수 있는 권리인 이축권(移築權)을 사들이면서 건축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용인이 고향인 건축주는 한옥에서 나고 자랐다. 콘크리트집을 전문으로 시공하면서도 늘 나무와 흙만으로 지은 푸근한 고향집을 떠올렸다. 일에 짓눌린 심신도 고향집에서 하루 이틀 묵고 온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개운했다. 건축주가 한옥을 지을 요량으로 행인흙건축을 찾은 이유다.

이 사장은 지대가 높은 동남향 터에 뒷산의 산세까지를 고려한 ‘ㄱ’자 형태의 설계안을 설계사무소에 보냈다. 얼마 후 ‘지하층을 포함한 설계안이 확정됐고, 건축허가 절차에 착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로부터 석 달 뒤, 건축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견적서 안 보내요. 웬 장마가 이렇게 긴지. 10월 중순에 입주해야 돼요. 지하층 공사 끝나면 바로 일 시작할 테니 어서 올라와요.”

그렇게 해서 지루한 장마가 끝나기를 애타게 기다려 건축주는 손수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빨리 서둘러요. 내가 안 할 줄 알았나 보지. 이 놈의 장마 땜에 일이 많이 늦어졌어…….”

그런데 그 뒤에 한 차례 강풍이 몰아쳤다. 건축주는 뒷산의 흙이 무너져 내려 지하층 한 벽을 밀어냈지만 눈 하나 까딱 않고 10여 일 후 지하층을 벙커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흙물이 동네로 흘러 내려 민원이 만만찮았는데 그 모두를 거침없이 헤쳐나갔다.

콘크리트 기초가 끝난 후, 목재가 도착하고 본격적인 목수작업이 시작됐다. 주 목재는 북미산 햄록(Hemlock)을 사용했는데, 서까래만큼은 강화산 육송을 사용했다.

건축주는 낙엽송도 생각했지만 왠지 기계로 뽑아 낸 것 같아 자연미가 배어 나오는 육송을 고집한 것이다.

“나는 콘크리트집 전문가지 흙집은 몰라요. 이 사장, 모든 걸 믿고 맡길 테니 잘만 지어 줘요.”

목수작업 전 건축주가 건넨 말이다. 업자 대 업자로서 이 사장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목수작업에 일체 간여치 않는 건축주의 배포에 놀랐을 정도다.

장마와 전투 끝에 완공한 집
한옥의 기본은 목수에게 달렸다는 이동일 사장.

“집을 구성하는 뼈대와 지붕의 모양이 집 전체의 느낌을 좌우합니다. 그만큼 목수일이 중요하죠. 나이 많은 목수들은 시간에 개의치 않고 집을 짜는데, 시간을 다투는 이 집은 다행히도 젊은 목수들이 시공을 담당해 진척이 빨랐습니다.”

목수작업을 한 처음 일주일은 화창한 날씨 덕에 거침이 없이 진행됐다. 기둥과 처마도리, 보의 홈 따기 기계를 도입해 속도가 빨랐다.

젊은 시공팀은 기둥과 뼈대 세우기 열흘, 지붕이기 열흘, 이렇게 이십 일 만에 끝내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억수로 퍼붓는 빗줄기는 작업을 가로막았다. 시공팀은 비가 그치면 목수작업에 투입됐다가 비가 퍼부으면 빠지는 ‘5분 대기조’와 같았다.

비상대기가 길어지자 효율이 떨어지고 시공팀도 지쳐갔다. 하지만 젊은 시공팀답게 상황을 반전하는 저력을 나타냈다.

“새벽 6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강행군이 이어졌고, 비가 올 걸 대비해 야간작업도 병행했습니다. 시공 이사가 그러더군요. ‘저 친구들은 지금 노가다를 하는 게 아냐. 전투야! 전투를 치르는 중이라고.’ 시쳇말로 하루 품을 파는 게 아닌 온 몸을 다해 목수작업 그 자체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모습이 닮은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이 사장뿐만 아니라 이를 묵묵히 지켜 본 건축주도 “젊은 사람들이 한옥을 짓는 것도 놀라웠는데 일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해요. 집이 아닌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거 같았으니까요”라고 말할 정도다.

그렇게 악전고투(惡戰苦鬪)를 치른 후에야 서까래와 평고대(平高臺 : 처마 끝에 가로로 놓은 오리목)와 개판(蓋板 : 서까래와 부연, 목반자 따위 위에 까는 널)이 얹어지고, 부연(附椽 )이 달렸다. 추녀 끝에서 휘어져들어 간 서까래와 부연은 한옥 지붕선의 맛을 그대로 살려냈다.

돌출된 현관 지붕과 거실 그리고 집의 양쪽 지붕에 목기연(박공 머리의 박공널에 직각으로 거는 짧은 서까래)을 단 박공이 팔작지붕의 전통미를 더한다. 그 이음매를 지네철(박공의 두 쪽이 마주 닿는 이음매에 걸쳐 박는 지네 모양의 쇳조각)과 장식으로 마감했다.

그리고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가 선을 잡고 추녀기와 얹는 자리에 연함(기와 받침 부재)까지……. 그때 이 사장은 전통과 현대한옥이 만나는 과정에서 고민을 했다고.

“장연과 단연으로 이뤄지는 전통 오량집(다섯 개의 도리로 구성된 지붕틀의 꾸밈새)으로 지붕선은 살리되 구조는 안정적인 트러스 방식으로 대체하고 그 위에 O.S.B 방수합판으로 마감했습니다. 한편 거실에만 별도의 오량 천장을 낸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으나, 이 또한 한옥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기와집하면 으레 지붕에 기와를 이을 때, 산자(지붕 서까래 위나 고미 위에 흙을 받쳐 기와를 이기 위해 가는 나무오리나 싸리나무 따위로 엮은 것) 위에 황토를 이겨서 깐다.

이를 ‘알매’라고 하는데 요즘처럼 지붕과 천장을 단열하고, 방수 시트에 못으로 고정하는 현대기와 시공에서 흙은 지붕의 하중만 얹을 뿐이라고. 건축주는 조선기와를 닮은 현대기와를 선택했다.

“조선기와는 해가 지나면 겉이 터서 벗겨지고 풀이 자라요. 반면 모양이 똑같은 조선기와는 3년에 한 번 칠만 하면 30년 이상 갑니다. 물론 동기와를 얹을까 생각도 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죠.”

벽체는 황토벽돌 30㎝짜리를 눕혀 쌓은 후 작은 것으로 감쌌다. 외벽은 줄눈마감을, 내벽은 황토를 바른 후 벽지마감을 했다. 방에는 황토를 발라 마감한 후 장판지를 깔았으나 거실과 복도, 주방 등은 황토와 시멘트를 혼합해 바른 후 원목마루를 깔았다.

지루한 장마 속에 별내면 한옥이 제 모습을 갖춘 11월 건축주는 이주를 했다. 시간은 두 달여 걸렸는데 실지로 일을 한 시간은 한 달이 채 못됐다. 이십 일 만에 끝내겠다는 장담은 무색해졌지만, 불암산자락에 덩그렇게 자리잡은 한옥에서 시공팀이나 건축주 모두 맑은 가을 하늘을 보았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살 맛 나는 집
건축주 부인 김춘남(56세) 씨는 금년 봄 울밑에 호박을, 텃밭에 푸성귀를 심는 꿈에 부풀어 있다. 개운하게 맞이하는 아침마다 뒷산을 거닐며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킨다.

서울에서 불과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기 층이 다르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53평이라 청소하기가 다소 버겁지만 남편이 6남매 중 맏이라 집안 대소사를 치르려면 넓은 평수는 아니라고 한다. 금년 서른한 살인 아들이 장가를 가고 하나둘 식구가 늘 것까지 생각해 지은 집이기도 하다.

현관에 들어서면 다소 긴 복도 우측 끝에는 거실이 좌측에는 주방과 두 개의 자녀방이 나온다. 복도를 통해 자녀방으로 직접 들어가도록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 건축주의 배려다.

유독 동물을 좋아하는 건축주는 상가주택에 살 때 옥상에서 동물들을 키웠다. 옥상에 갇혀 지내는 녀석들을 보면 안쓰러웠는데, 이제 넓은 마당을 맘껏 뛰노는 열한 마리의 개를 보면서 매우 흡족해 한다.

요즈음에는 부인만큼이나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240여 평의 마당에 텃밭을 만들고 잔디와 과수나무도 심으려고……. 田

■ 글·사진 윤홍로 기자

■ 콘크리트건축업자 대 흙집업자의 만남
“일이 훨씬 편해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요’하면 금방 이해를 해요. 주변 정리 건 청소 건 다 알아서 할 테니 일에만 집중하라고 하니 다른 신경 쓸 일도 없고…….”
건축주는 그랬다. 같은 업을 하는 사람이기에 까다로울 줄 알고 미리 겁먹었으나 현장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기에 믿고 맡긴 일에 대해선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잔정(情)은 없어요.”
그건 또 그랬다. 현장에서 이골나게 일을 시켜 온 이력으로 볼 때 가족처럼 일하는 우리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더운데 고생한다며 음료수 하나 들고 올 만한데도 일체 잔정 표현이 없었다. 프로의 세계와 아마추어의 세계가 다르듯…….
우리는 그동안 조그만 일에도 얼굴을 찌푸리며 조바심을 내는 건축주와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다니며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우왕좌왕하는 건축주들의 모습을 많이 보아 왔다. 그런 건축주들하고는 판이하게 달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잔정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보다 중요한 건 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신뢰였다. - 행인흙건축 대표 이동일

■ 건축정보
·위 치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건축형태 : 단층 목구조 흙집
·부지면적 : 308평
·건축면적 : 53평(지하 6평 별도)
·평면구조 : ‘ㄱ’자 형
·실내구조 : 방3, 거실, 주방, 다용도실, 욕실2, 보일러실
·외부마감 : 황토벽돌 줄눈마감
·내부마감 : 황토미장 후 벽지
·지붕마감 : 현대식 기와
·창 호 재 : 하이섀시
·바 닥 재 : 방-황토 미장 후 장판,
거실 복도 주방 - 원목마루
·난방시설 : 심야전기보일러
·건축비용 : 평당 550만 원

■ 설계·시공 : 행인흙건축(031-335-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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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작지붕에 처마 끝 들어올린 남양주 53평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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