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집주인의 취향, 목적, 취미에 따라 심는 주택 정원의 다양한 수목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이는 풍수지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로부터 사방신이라 하여 동물 형상을 한 수호신으로 동쪽에는 좌청룡, 서쪽에는 우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원에는 이 수호신들을 대신해 집을 지켜주는 나무를 심었는데 동쪽은 복숭아나무, 서쪽은 느릅나무, 남쪽은 매화나무 그리고 북쪽은 벚나무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더욱 쉽고 흥미롭게 정원을 꾸미도록 수목에 얽힌 여러 가지 전설과 풍수에 따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글·사진 박윤구
참고문헌 ≪궁궐의 우리나무≫ 박상진 지음, ≪우리나라 나무 이야기≫ 박영하 지음

북쪽의 수호신인 현무는 물의 기운을 맡은 태음신을 상징하는 짐승으로 거북이와 뱀이 뭉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벚나무는 이 현무를 대신해 기운을 보강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주로 집의 북쪽에 심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무가 바로 벚나무입니다. 벚꽃은 일주일에서 열흘 동안 활짝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한꺼번에 집니다. 꽃이 질 때는 꽃비가 내리는 기분이 듭니다.

벚꽃은 다들 알다시피 일본의 국화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옮겨와 살며 벚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조선 사람들은 일본의 벚꽃놀이 문화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벚나무 중에 왕벚나무는 일본에서는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특산나무입니다.

벚나무에 열매‘버찌’가 열리면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벚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성질 때문에 더욱 화사함을 뽐낸다.
벚나무의 수피는 달여 먹으면 살균 작용을 통해 식중독 예방 및 육류나 어패류에 함유된 각종 유해 세균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벚나무는 공해에 약하고 병충해가 많이 발생해 빌딩에 조경수로는 어울리지 않지만 작은 정원의 정원수로는 잘 어울립니다. 꽃이 지고 난 후 열리는 열매‘버찌’는 술을 담그거나 주스를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벚나무의 껍질은 오래 전부터‘화피’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그 이유는 활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군수 물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갑오년(1594) 2월 5일자에“화피 89장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을 겪고 중국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와 왕위에 오른 효종은 북벌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때 서울 우이동에 벚나무를 많이 심게 했는데 이유는 활을 만드는데 쓰려고 한 것입니다.

또한 벚나무의 껍질은 알레르기 체질의 사람이나 식욕 부진, 피로 회복을 낫게 하는 데에 쓰이기도 합니다. 벚나무는 나무에 글자를 새기는 목판 인쇄의 재료로서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팔만대장경의 60%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음이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조사에서 밝혀졌습니다.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 새콤달콤 맛이 아주 좋다.

동쪽에는 운雲, 목木기운의 태세신을 상징하는 푸른빛의 용을 형상화한 짐승, 청룡을 대신해 복숭아나무를 심었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중국에서 들어온 과일나무로 잎보다 먼저 흰색과 분홍색 꽃이 피고 흰색을 백도, 붉은색을 홍도라 부릅니다. 꽃이 아름답고 열매는 과일로 먹을 수 있으며 정원에서는 개량 수종인 능수홍도, 능수백도, 남경도 등을 주로 식재합니다. 열매를 먹을 수는 없지만 능수홍도와 능수백도의 길게 늘어진 가지에서 봄에 꽃이 피면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남경도는 꽃복숭아라고도 불리며 매화를 닮은 예쁜 꽃을 피워 관상수, 독립수로도 좋습니다.

남경도는 먹을 수 없는 작은 열매가 열리지만 붉은 꽃이 매우 아름다워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분홍빛의 복숭아꽃이 수줍게 고개를 들었다.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색이 곱다.

복숭아나무는 전설과 민담이 많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조선 세종 29년(1447),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박팽년과 함께 본 복숭아 숲의 경치를 화가 안견에게 이야기하여 사흘 만에 그림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이‘몽유도원도’입니다. 또한, 중국 명나라 소설 ≪서유기≫에서는 먹기만 하면 불로장생할 수 있는 천도복숭아 밭을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된 손오공이 어느 날 틈을 보아 9천년에 한번 열리는 열매를 몽땅 따먹고 나중에 삼장법사가 구해줄 때까지 5백 년 동안 바위 틈에 갇히는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4월에 잎보다 백색 또는 담홍색 의 꽃이 먼저 핀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향이 그윽하고 진하다.

이처럼 복숭아는 수많은 과일 중 신선이 즐겨 먹는 과일로 여겨졌습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가 잡스런 귀신을 쫓아내는 구실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나 집 안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으며, 제사상의 과일에도 복숭아를 쓰지 않습니다. 귀신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하는 제사에서 복숭아를 올려놓으면 귀신이 보고 도망 갈까봐 그러한 것입니다. 또한,복숭아나무는 씨와 열매 모두 약재로 이용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으며 월경불순, 자궁혈종, 맹장염, 변비 등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한여름의 매실차는 갈증 해소는 물론 입맛을 돋우는 효과가 있다.

붉은 봉황을 형상화 한 남방을 지키는 화火의 기운을 맡은 신, 주작은 매화가 대신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는 꽃이 너무 일찍 피어 조매라고도 하고, 추운 날씨에 핀다 하여 동매하고도 합니다. 눈속에도 핀다고 설중매, 봄 내음을 전한다 하여 춘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매화를 두고 부르는 이름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매화나무의 키는 평균 5m 안팎으로 작은 정원에서 키울 수 있는 아담한 수형을 갖췄습니다. ≪고려사≫에 실려있는당악≪석노교곡파≫를보면,“ ……따스한봄바람에/ 매화는향기풍기고/ 버드나무는푸른빛띠었는데/ 상서로운 연기 아지랑이와 얕게 엉키었도다/ 때는 정월 보름날/ 백성들과 서로 정회를 풀어 가며 즐겁게 놀아 보세!”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고려 때부터 이미 매화나무가 친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왕조에 들면서 매화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에 꼽히게 됩니다. 매화나무가 사군자가 된 이유는 겨울이 끝나기 전에 잎보다 먼저 피는 꽃이 마치 엄동설한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고고한 절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품 있는 모양새와 향기가 일품인 매화에는 매실이라 불리는 열매가 달리는데, 매실은 주로 술을 담그는데 쓰이고, 잼이나 복통, 설사에 좋은 한약재로 쓰이기도 합니다.

느릅나무는 미방未方에 심으면 잡귀가 물러간다는 말이 있다.

서쪽을 지키는 지地, 금金기운을 맡은 태백신太伯神을 상징하는 백호는, 느릅나무가 대신했습니다. 느릅나무의 유래는 힘없이 늘어진다는“느른히”에서 온 말로, 벗겨서 물을 조금 붓고 짓이겨 보면 끈적끈적한 풀처럼 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느릅나무는 독립수로 심는 것이 풍치가 좋습니다.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평강공주가 온달장군에게 결혼을 청하러 가는 길에 온달장군은 배가 고파 느릅나무의 껍질을 벗기려 산 속에 다녀왔다는 이야기와, 박목월 시인의 아름다운 시에서도 느릅나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머언산청운사/ 낡은기와집//
산은자하산/ 봄눈녹으면//
느릅나무/ 속잎피어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청노루>

뿐만 아니라 ≪고려사≫, ≪삼국사기≫ 등 옛 문헌 곳곳에서도 느릅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느릅나무 뿌리의 속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 것을 유근피라고 합니다. 유근피는 위장의 열을 없애며, 부은 것을 가라앉히고 불면증을 낫게 해준다고 동의보감에서 설명합니다. 서양에서는 느릅나무를 엘름이라 하여 재질이 좋고 쓰임새가 넓은 나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항암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나서 곳곳의 느릅나무가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또한 목재는 휘어짐이 좋아 흔들의자나 악기, 우산 손잡이, 가구재, 차량재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나무껍질과 뿌리에서 나오는 수액은 도자기의 광택을 낼 때 유용했고 피부에 바르면 뽀얀 피부를 만들어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느릅나무 잎은 천연 수면제라고 불릴 만큼 불면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나무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가 얽혀져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들과 나무만의 특성 및 효능까지 알게 되면 정원 꾸미는 일이 더욱 즐거워질 것입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정원 상식】 ①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나무 이야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