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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구석구석을 보면 자연에 어떻게 적응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에 적응한 대표적인 예는 기단, 기초, 온돌과 대청, 지붕과 처마, 굴뚝, 부엌 등이다. 자연에 적응하는 모습은 앞에 예로 든 집의 구성 요소들 뿐만 아니라 건축 재료, 집의 형태, 평면 구조 등 집의 모든 요소에 골고루 나타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오히려 사회·문화적 요소가 더 강조된 것도 많다. 그러나 이런 부분도 출발점은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었으므로 먼저 자연환경의 요소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집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서 지붕과 벽, 난방시설 등이 자연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나타낸다. 지붕의 경사나 처마가 나온 정도는 강수량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결정되고, 벽은 외기로부터 실내를 보호하기 위해 두께, 창문의 크기 등이 결정된다. 또한 난방시설은 추위에 견디기 위해 필수로 설치하는 것인데, 열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취사와 난방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화로와 난로, 벽난로 그리고 우리의 온돌 등과 같이 난방 방식에 따라 집의 구조가 결정된다.



굴뚝의 다양한 기능

굴뚝이 필요한 것은 집안에서 불을 때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불을 때지 않으면 굴뚝이 필요 없다. 유럽의 건물도 취사와 난방을 위해 건물 안에서 불을 땠기 때문에 굴뚝이 있다. 유럽의 건물에서 굴뚝의 개수를 보면 살고 있는 가구 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많다. 지금도 오스트리아에는 아직도 굴뚝 청소부가 있을 정도로 취사나 난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굴뚝은 불을 때는 곳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굴뚝의 기능은 연기를 빨아들여 불길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잘 이용한 것이 구들이다. 그러므로 굴뚝의 설치는 구들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간단한 원리를 실생활에 응용한 것이 굴뚝이다. 굴뚝이 높으면 연기가 잘 빠져나가 불이 잘 들지만 무작정 높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연기가 올라가다 식으면 역류(逆流)하기 때문에, 오히려 연기가 배출되는 것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굴뚝의 모습은 지역마다 다르다. 굴뚝의 높낮이나 보온 처리 여부는 그 지역의 기후 특성에 따라 정해진다.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너무 추운 곳에서는 굴뚝이 식는 것을 방지하려고 짚으로 싸서 보온했다. 바람이 세찬 곳이 아니라도 굴뚝이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면 보온이 필요하다. 굴뚝에 보온 재료를 두르면 덩치가 커진다.

기능만을 생각해 굴뚝을 둔중한 모습으로 놓아두는 것보다는 예쁘게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것을 알았는지 한옥의 굴뚝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과 경복궁 아미산 굴뚝(보물 제811호)은 장식이 너무 아름다워 보물로 지정됐을 정도다. 이 굴뚝들은 보온을 한 후 궁궐의 격식에 맞추어 아름답게 장식했다.

날씨가 별로 춥지 않아 불이 잘 들지 않아도 그런 대로 지낼 만한 곳에서는, 굴뚝과 연기를 다른 용도로 이용했다. 시골 생활을 경험한 분이라면 마당에 피워 놓던 모깃불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에 굴뚝 연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암리 마을의 영암군수 댁 사랑채와 곡성의 군지촌정사의 안채에는 굴뚝이 없다. 기단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이 바로 굴뚝이다.

이곳에서 나온 연기는 곧장 위로 올라가지 않고 바닥에 깔리게 된다. 굴뚝의 연기를 그대로 날려 버리지 않고 해충을 없애는 데 사용했다. 이곳의 날씨는 불이 잘 들지 않아도 견딜 만하기 때문에, 일부러 연기가 잘 빠지지 않도록 하여 해충 구제(驅除)에 활용했다.

불을 때는 재료가 나무나 짚이므로 연기 냄새도 향긋하고, 사람들에게 그리 해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각종 페인트 또는 방충제(防蟲劑)로 범벅이 된 나무는, 연기도 냄새도 고약하고 사람들에게 해가 되어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다.

사계절과 창호

우리나라의 집 구조는 출입문을 제외하면 방에 설치되는 창과 문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좌식 생활을 하다 보니 순수하게 채광(採光) 또는 통풍을 위한 목적으로 창을 만든 경우를 제외하면 창대를 높일 수 없었기에 창과 문의 구별이 애매해진 것이다.

창과 문은 대문이나 부엌 출입문과 같은 판문(板門:널빤지로 만든 문)을 제외하고는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집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차이가 많은 것이다. 자연환경을 파악해 특별한 기능에 적합하도록 만든 대표적인 창은 해인사(海印寺) 장경판전(藏經板殿:국보 제52호)에 있다. 이 창문은 바람길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해 수백 년이 지나도 대장경판(국보 제32호) 보존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창문의 중요한 기능은 첫 번째로 환기와 적절한 일조량의 조절이고, 두 번째는 기후 변화(추위와 더위)에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고온다습하고 겨울은 춥고 건조하다. 일 년을 보면 제일 더운 날은 30도가 넘고 추운 날은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일 년 동안의 기온 편차가 50도를 넘는다. 이 같은 기후에서는 추위와 더위를 다스리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는 분합문(分閤門)인데, 여닫으면서도 들어 열 수 있는 특별한 문이다. 들어 올려 열거나, 여닫는 창은 다른 나라에서도 모두 사용하는 개폐(開閉) 방법이다. 그러나 여닫으면서 들어 열 수 있는 장치가 된 문은 없는 것 같다. 들어 열도록 되어 있는 장치는 보통 대청과 방 또는 대청과 밖을 구분하는 곳에 설치했다.

분합문은 두 짝 단위로 된 것이 대부분이다. 평소에는 한 짝만을 여닫이로 쓰다가, 필요할 때 열린 상태로 들어 올려 상부에 설치된 걸이(‘등자’라고 한다)에 얹어 놓는다. 이러한 들어열개 구조는 단순히 더울 때만 사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한옥은 칸으로 구성돼 있어 필요에 따라 방의 넓이를 조정할 수 있다. 들어열개의 문이 대청과 방 사이 그리고 대청과 마당 사이에 설치된 것도 필요에 따라 넓게 사용하기 위함이다. 즉 기능적인 목적과 자연환경에 적응하려는 목적이 맞물려 개발된 문이다.

한옥에서 외부로 통하는 창은 추위와 더위뿐만 아니라 일조량을 조절하기 위해 다중 구조로 되어 있다. 대갓집의 경우 외부의 창은 우리가 자주 보아 온 창호지 문(덧창), 다음에 사창’(紗窓), 그 안쪽에 별도의 미서기창 그리고 안쪽에 갑창(甲窓)을 설치하고, 문을 넣어 두는 두껍닫이를 설치한 4중 구조로 되어 있다. 3중 구조로 할 경우에는 사창을 빼기도 하는데 여름에는 미서기창을 사창으로 갈아 끼워 통풍을 조절한다. 대부분의 집에서는 이렇게 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보통 이중창에 두껍닫이 정도는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중 구조로 만든 것은 바람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지금도 많은 집에서 이중창을 설치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리의 단열 효과와 창틀의 기밀성 그리고 벽체의 단열 성능이 높아져 창문을 하나만 설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이중창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원리는 과거의 한옥에도 있었는데, 4중 구조에 갑창을 설치한 것은 햇볕을 차단하고 찬 기운을 막기 위함이다. 낮에는 햇볕이 많은 것이 좋지만, 저녁이나 아침에는 그리 반갑지 않다. 더욱이 아침의 숙면을 위해서는 빛을 가리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리고 한 겹의 창호지만으로는 찬 기운을 막기 어려우므로, 앞뒤로 두껍게 종이를 발라 보온 효과를 높인 것이다. 사창은 순수하게 여름을 위한 창이다. 여름에 바람이 통하게 하려고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벌레가 날아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기게 짠 비단을 문에 발라서 통풍을 조절하고 방충창(防蟲窓) 기능을 하도록 했다. 또한 두껍닫이를 설치한 것은 창문과 창문이 설치된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처럼 창문 하나에도 자연에 적응하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田

■ 글 최성호<산솔 도시 민족연구소 대표, 전주대 건축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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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자연환경과 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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