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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여러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로 인해 다른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여러 문화 요소 중 하나만 가지고 집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방법이다. 집이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적 요소만이 아닌 모든 문화 요소가 어우러져 나타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담고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삶의 다양함만큼이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기능적인 것을 해결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적인 내용은 줄어들고 대신 의미론적인 요소가 덧붙여졌다. 그 변화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과거의 유물을 기능적인 면은 도외시한 채 의미론적으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도구가 만들어진 기본 목적은 기능이므로 의미론으로만 이야기한다면 기본을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집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자연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지어졌다. 그후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자, 자연이 아닌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른 목적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궁궐의 예를 들어보자. 궁궐은 단순히 자연환경으로부터 왕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것만은 아니다. 왕이 먹고 자는 생활공간을 마련하고자 지은 집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러한 기본 목적 외에 사회적인 목적도 지닌다. 왕이라는 존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이 궁궐을 짓는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므로 당시 사회 구조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왕의 권위를 한껏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했다. 이것도 넓은 범위에서 본다면 집을 짓는 목적이 된다. 여기에 이르면 집을 짓는 행위나 형태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통치를 하는 왕의 행위에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하려고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집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기능성이 덧붙여진다.

건축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힌 기술 발전

콘크리트와 철골구조가 발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만드는 집의 구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방의 넓이를 결정하는 경간(徑間: Span-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고대 이집트 신전이나 궁전 그리고 페르시아 궁전의 유적을 보면 기둥이 많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면을 보면, 그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았을까 할 정도로 기둥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러한 평면에서는 임의대로 집에 기능을 덧붙일 수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치(Arch)나 볼트(Vault) 구조다. 볼트 구조를 우리나라에서는 홍예(虹霓)라고 한다. 이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무한대의 공간을 만들 수 있지만, 넓으면 넓을수록 재료와 인력, 장비 문제라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후 아치나 볼트 구조의 한계성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9세기 들어 발명된 재료인 철골과 콘크리트다. 이러한 재료의 발명과 함께 역학이론이 뒷받침되면서 건축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미래 건축물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힌 것이다.

철골과 콘크리트의 역학이론을 바탕으로 근대건축사에서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르꼬르뷔지에라는 건축가는 1914년 근대 건축의 본보기가 된 도미노(Domino)시스템을 발표했다. 이 시스템은 외벽의 독립, 자유로운 실내공간의 구성, 무한한 적층(積層)구조를 핵심으로 한다. 당대에 개발된 재료와 기술로 가능한 건축을 간단한 그림으로 함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의 완성은 재료와 기술의 발전 없이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건축 기술 발전과 집의 대량 생산

이처럼 기술은 집을 다양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기술 발전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넓게 열어 놓았다. 요즈음 지어지는 집들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많은 부분 기술의 발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앞에서 말한 구조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종 재료의 발전은 집의 여러 부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과거의 집과 현재의 집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20세기 이전의 집은 대부분 현장에서 기능인에 의해 지어졌으므로 집이 잘되고 못되고는 그의 솜씨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 그러나 현재의 집은 재료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생산하므로 현장 기능인의 솜씨는 과거보다는 중요성이 덜하다.

전통한옥의 경우, 엄밀한 의미로 공장에서 생산한 것은 기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재료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가공해 시공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지어지는 집을 보면 현장에서 가공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이 현장에서 제작 조립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대형 건물뿐만 아니라 소형 건물까지도 공장에서 제작된 거푸집을 조립하는 정도의 작업만을 하고 있다.

근․현대에 와서 공장에서 생산된 재료가 주로 사용되는 이유 중 하나는 집의 대량 생산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구의 도시 집중과 1,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파괴된 집을 단시일 내에 공급하기 위해 건물의 대량 생산은 필수적이었다. 그에 따라 과거와 같은 수공업적 방법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에, 결국 공장 생산을 통한 대량화가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러한 사회 변화 역시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건축 시스템을 촉발했다. 설계와 시공이 점점 세밀하게 분리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한옥에서 설계 부분의 발전이 거의 없었던 것은 삶의 형태가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집을 만들려는 요구가 없다 보니 집을 짓는 데 있어 재료와 공법이 거의 결정되다시피 했으며, 자연 현장 기능인의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시됐던 것이다.

집의 대량생산과 미감의 변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사회적 요구에 의해 주거가 대량 생산됐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건축문화환경을 만드는 기반이 됐다.

공장제 재료의 적극적인 활용은 결국 미감(美感)의 변화까지도 이뤄 냈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자재는 효율성 때문에 모듈화를 요구했고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직선을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 직선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직선이 눈에 익음에 따라 그것이 새로운 미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에 따라 과거처럼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차가운 직선이 새로운 미감으로 대두됐다.

또한 기계류의 발전은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 문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실내․외의 환경이 인공적으로 조성되면서, 집 발생의 기본적 명제인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이라는 문제가 집의 구조를 결정하는 우선 순위에서 뒤쳐졌다.

이러한 변화는 건축을 보는 눈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키는 모태가 된다. 즉, 근대건축에서 국제주의양식(國際主義樣式: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전제 하에 공통 분모의 미감과 삶의 방식을 찾아내 어느 곳에나 적용하려는 형태를 설계하려는 사조)의 탄생을 촉발했다.

문화 요인의 복합체, 집

최근 건축이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모으면서 그것을 건축가의 창작물로 이해하려는 성향이 짙다. 또한 같은 관점으로 과거의 건축물까지도 해석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건축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잘못됐다고 볼 수만은 없다.

지금은 디자인하는 데 아무런 제약 조건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의 상상력이 디자인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됐다. 그러나 그 배경을 따져보면 기술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 발전이 없었다면 건축가들이 지금처럼 자유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자유는 최근에야 우리에게 부여된 것이지 과거에도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또한 건축가의 역할이 다른 상황에서 과거의 건축물을 지금의 잣대로 파악하려는 것은 문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집이란 여러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로 인하여 다른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여러 문화 요소 중 하나만 가지고 집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방법이다. 집이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적 요소만이 아닌 모든 문화 요소가 어우러져 나타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담고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삶의 다양함만큼이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과거의 한옥이 현재의 집만큼 다양한 형태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그 시대의 삶이 지금보다는 단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현재의 집이 다양한 형태와 내용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집은 문화의 여러 속성들의 서로 영향을 주며 변화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다음 호에서는 집을 결정하는 요소들을 분류하여 어떻게 집에 반영됐는지를 한옥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田

■ 글 최성호<산솔 도시․건축연구소 대표, 전주대 건축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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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집은 문화 유기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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