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건축가는 기존 건물의 어색한 비례를 수정해 주변과 어울리고 안정감 있는 외형으로 개선하고자 새로운 외피에 대해 고민했다. 그 해결 재료로 경제적이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알루미늄을 선택했다. 그리고 처마의 재해석, 벤딩과 곡선을 가미한 파라메트릭 알루미늄 파사드가 무뚝뚝하기만 하던 황토색 건물을 탈바꿈시켰다.
정리 & 사진 월간전원주택라이프 편집부
위치 경남 남해군 설천면 남양리
시공 및 설계 리노베이션 디자인 JOHO Architecture 02-6257-9101
www.johoarchitecture.com
보석처럼 특유의 쪽빛 바다를 간직한 남해. 시야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는 솟은 언덕이나 희한하게 아늑한 기운이 감도는 한갓진 농촌에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집들이 듬성듬성 놓였다. 그것마저 한여름 창궐한 나무에 가려 집들은 마치 자연에 동화된 듯도 하다. 보일락 말락 시선을 피해 다니는 남해 처마 하우스는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무뚝뚝한 외관의 집이었다.
50년간의 서울 살기를 그만하고 전원의 운치를 누리고자 어머니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 옛날 시어머니와 함께 살던 기와인 한옥 대신 네모반듯하게 다시 지은 농가는 세상사에 무던해진 어머니가 보기에는 나쁠 것도 없지만 서울에서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는 댄디한 아들이 보기에는 매력이 없었다. 그도 이곳에서 간간이 휴일을 보내고 어쩌면 노후를 맡겨야 할 곳이 될지도 모르는데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들은 조호건축 이정훈 대표에게 부탁했다.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이정훈 대표는 리모델링 의뢰를 받고 남해 농가를 보면서 건축주의 마음을 이해했다. "건물은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맞지 않을뿐더러 멀리 삼천포 바다를 내려다보이는 그 아름다운 터의 지세를 담아내기엔 부족했습니다."그는 하늘과 바다가 탁 트인 이곳을 보며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이 만나는 선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 자연의 선 가운데 인간이 짓는 선, 처마를 떠올렸다. 남해 농가 리노베이션 Renovation의 콘셉트는'처마'다.
인간이 긋는 선, 처마
"하늘의 선, 산의 선, 지평선의 선은 절대자의 선이다. 선은 또 다른 선을 만들어 낸다.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농가. 정체성 없이 무심코 짓기는 해도 그 농가들 하나하나 역시 대자연 속에 선을 입힌다. 새로 긋는 선이란 대지를 담고 하늘과 땅이 마주하는 지점이다. 처마가 그렇다. 우리는 하늘과 만나는 선을 처마로 설정한다. 그것은 일종의 자연과 하늘에 대한 인간의 상상적 행위고 그 지세의 아름다움에 한 몫 끼어드는 행위다. 처마는 때로는 비대칭으로 때로는 비뚜로 나가 선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한다. 그것은 인간이 상상해낸 경계임과 동시에 실현의 산물이다."
파라메트릭 알루미늄 벤딩
"휜다. 또 휜다. 철은 휨을 내재하고 있으며 힘을 먹는다. 그것은 물성이 가진 내재력임과 동시에 힘이 균형을 찾아가는 지점이다. 이 힘 먹은 철에 그라인더로 금을 긋는다. 각형 파이프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곡면을 타고 휘어버린다. 삼차원적인 벤딩 Bending은 힘 먹은 철에 다시 금을 그으면서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도면상의 벤딩 값은 이곳에선 무용지물이다. 벤딩 값은 그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할 뿐 삼차원적 벤딩의 현실적인 해결이란 오직 감과 노력뿐이다.
도면이란 그것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주는 기본적인 데이터일 뿐이다. 그것은 물성이 가진 힘을 어떻게 다스리고 펼쳐낼 수 있는가 하는 것, 즉 그것은 작업자의 경험과 시행착오에서 비롯될 수 있다. 평평한 철은 열로 휠 수 있지만 각형 파이프는 삼차원적 벤딩에서 그 휨의 에너지를 튕겨버린다. 내재된 힘은 그렇게 자신을 증명해 보인다."
리노베이션 진행 과정
1 전면부 덱 주춧돌 놓기, 옥상 기존 난간 해체하고 개방형 난간 설치를 위한 철재 기둥 세우기.
2 새로운 파사드를 위한 철 골조 세우기, 덱 구조 시공, 옥상 난간 시공, 현관문과 창호 해체, 덱 정원 나
무 식재.
3 곡선형 철재 프레임 연결, 창호 설치, 덱 시공.
4 프레임에 알루미늄 루버 설치 준비, 건물 내부 보수공사 완료.
5 파라메트릭 알루미늄 루버 유닛 장착, 덱 하부 래티스 마감.
6 건물 외벽 기존 황토벽돌 위 화이트 도장(Powder Coating) 마감, 알루미늄 파사드 완료.
두 달 간의 공사를 끝내고…
"작은 프로젝트지만 짧지 않았던 두 달여의 공사… 장마 통에 마무리한 난공사였다. 용인 국도변에 있는 새시 업체 노 소장님은 나 때문에 거의 두 달 간 남해 외딴 집에 갇혀 매일 아침 소쩍새 울음을 들어야 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삼차원 벤딩에 일을 주문하는 사람도 일을 하는 사람도 말을 아낀 채 공사 과정을 버텨야만 했다. 쉴 새 없던 남해행에 남해의 풍광을 원 없이 즐겼고 자연이 만든 원초적 선의 아름다움도 원 없이 감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 기어코 선 하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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