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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Garden)을 만드는 정원일(Gardening)은 울타리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여 재창조하는 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일에만 몰두하면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는 욕심이 생긴다. 이땐 일단 작업을 멈추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비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 필요하다.

정원일에는 어떤 목표를 세울 수 있을까? 우선 정원이 꿈꾸는 이상은 '자연과의 조화'다. 그렇다면 정원일 또한 우리의 삶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어야 한다. 100년 전, 조선을 여행했던 퍼시벌 로웰이 조선의 조경에 대해 "자연을 사랑하고 품안으로 맞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원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를 고르는 몇 가지 원칙을 생각해 보자. 혹시 자연과의 조화를 방해하고 무책임하게 정원공사비를 높이는 재료들을 선택하려는 것은 아닌지……. 먼저 '자연스런 재료를 많이 쓰면 그만큼 자연스러워진다'는 평범한 오해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뒷산에서 풀이나 나무를 캐다 심거나 자연석을 갖다 놓으면 정원이 자연스럽게 될 거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한 것들은 제 자리에 있을 때만큼 아름답지 못한 법이다. 자연을 재창조하는 일은, 사소한 것처럼 보이던 풀과 나무, 풀과 돌, 나무와 돌 그리고 사람과의 모든 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다.

뒷산에 아주 자연스러운 한 가지 풍경이 있다면,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환경적으로 아주 복잡하게 연결돼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작은 돌 하나는 미세한 환경적 차이를 만든다. 돌 주변에 작은 풀들이 자라고, 그 주변에 키 큰 관목이 자리잡은 데 이어서 더 큰 나무가 빈 공간을 채우며 자라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각각의 자연물들은 서로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 숨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을 그대로 가져다 놓는 것은 분명 좋은 정원일이 아니다. 아름드리 소나무는 그것이 어울리는 장소가 따로 있다. 아름다운 나무를 볼 때, 그것이 어떤 환경에 심어져 있으며 주변과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아마추어 정원사가 자주 범하는 실수는 비싼 나무일수록 좋을 것이란 생각이다. 프로 정원사는 값비싼 나무보다는 값싼 나무를 잘 어울리게 심어 비싼 나무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보다는, 약간은 부족한 듯한 나무의 방향을 잘 조절하여 모아 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아무리 자연스러운 재료라도 쓰는 방법에 따라 전혀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혹시 싱싱하고 건강하기보다는 뒤틀리고 기괴한 것을 보고 자연스럽다고 말하지는 않았는지…….

정원일은 분명 울타리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이는 작업이지만 자연을 우리 삶의 형태에 맞도록 건강하게 재창조하는 작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자연석 쌓기와 분재 같은 소나무
요리에 비유하면 좋은 재료는 좋은 조리 방법을 만나야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것과 같다. 천연재료는 다루는 방법이 까다로워서 제대로 맛을 내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자연석을 제대로 다루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별 의미 없는 일본식 돌쌓기 형식만을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돌 하나마다 새겨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무시한 채 아까운 자연석 재료를 낭비하는 것이다. 자연석 쌓기는 좋은 방법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쓸데없이 정원공사비를 높인다.

'좋은 나무'란 우리 정원에 잘 어울려야 한다. 높은 아취(雅趣)를 가진 분재처럼 생긴 소나무의 경우, 값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한국적 풍경을 만드는 재료로 흔히 사용한다. 그런데 소나무를 정원에 심기 시작하면 전체 분위기를 조절하는 팽팽한 긴장이 생겨서 계절에 따른 변화가 줄고 분위기가 고정된다. 이 때는 사람이 정원에 압도돼 정원이 편안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상식을 빼앗기고 만다. 그런 식으로 정원을 만들면 값비싼 정원수의 전시장으로 전락해 우리가 살고 싶은 아름다운 자연 속의 삶터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만약 푸른 삶이 가득한 전원주택을 꿈꾸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려고 한다면, 우선 값비싼 정원수와 정원석 대신 우리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재료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다
필자의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재료를 고른다. 다시 말해 처음엔 그리 번쩍거리거나 산뜻하지 않더라도 애착이 가서 마침내 주인의 손때가 묻을 수 있는 재료를 고른다. 그런 재료는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원리를 깨닫게 한다. 썩지 않고 쇠퇴하지 않는 것은 좋은 재료가 아니다.

예를 들면 썩지 않는 방부목을 사람의 몸이 닿는 부분에 쓰는 것은 좋지 않다. 방부목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방부액이 비소와 같은 유독성 중금속 물질이기 때문이다. 정원의 주인이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고 맘먹는다면 과감하게 고쳐가면서 쓸 수 있는 천연목재를 쓰는 것이 더 좋다. 값비싼 수입목재보다도 국산목재가 더 좋다. 이 경우 환경친화적인 천연페인트를 매년 바르는 일이 정원일의 목록에서 늘어나게 된다.

낭만적인 진입로 만들기
정원을 만드는 계획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동선(動線) 계획이다. 여기에는 사람이나 차량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는 경로와 방향, 빈도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정원에 눈이 내린 후에 생긴 발자국은 하나의 선을 보여준다. 동선은 정원을 구성하는 갖가지 구성 요소들을 분류하고 결합시키면서 효과적으로 전체를 완성시켜 나가는 기본 원칙이 된다.

정원을 편리하게 이용하려면, 동선 계획을 명확히 하고 그 형태를 잡는 조형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동선은 주동선과 보조동선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현관에서 대문까지 이르는 길이 주동선이다. 정원 계획에선 동선을 기능적으로만 보지 않고 미적인 요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장 이용이 많은 주동선은 정원의 첫인상을 잡는 역할을 한다.

정원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 걷게 되는 진입로를 상상해 보자. 대문에서 현관까지 이르는 길에 약간의 굴곡을 만들어 산책로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추억이 깃든 옛길을 만들 수도 있다. 작은 조각물이나 분수대를 만나는 것으로 낭만적인 꿈을 실현할 수도 있다. 방문객은 짧은 시간이지만 정원에 닮긴 주인의 개성을 읽을 수 있다.

정원일을 쉽게 설명하는 책을 보면,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설명하는 기준이 여성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만큼 정원 재료들은 무겁지 않아서 다루기 쉬워야 할 뿐더러 만드는 과정에서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지 않는 것을 합리적 기준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자연적인 재료보다는 인공적인 재료를 쓰더라도 값싸고 다루기 쉬우며 관리하기 쉬운 재료가 더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田

■ 글 이진규 <네이처조경디자인(주) 대표, www.flower-wol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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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Garden] 진입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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