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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 잠실운동장 건설 이후 프로축구대회도 열리기 힘든 위치로 전락한 동대문운동장. 대형 쇼핑몰들이 들어서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바깥 풍경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던 이곳이 요즘 사람들의 열기로 채워지고 있다. 황학동 벼룩시장과 청계천 일대 900여 개 노점들이 이곳으로 몰려온 탓이다.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설 자리를 잃었던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이 새로운 풍물 장터에는 휴일이면 10만여 명이 다녀간다. 사용법조차 알 수 없는 골동품부터, '대박 세일' 신품까지, 다양하고 개성 있는 물건들이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에 새 둥지 틀어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이 가로 2m, 세로 1.2m의 좌판 크기를 일정하게 맞춘 새로운 모습으로 문을 연 지 3개월이 지났다. 작년 11월 청계천 일대 노점상을 철거한 지 두 달여 만에 장사를 재개하면서 이전보다 손님이 줄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가족단위로 찾아오는 손님들과 동대문 쇼핑몰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로 인해 그러한 걱정은 줄었다.

"5개월 동안 창고에 쌓아놨던 물건입니다. 싸게 싸게 들여가세요. 아가씨도 사진만 찍지 말고, 얼른 싼 옷 골라서 입고 가요∼."
점포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촬영을 하는 사람도 어느새 물건을 골라야 하는 손님의 범주 안에 들게 됐다. 신명난 목소리로 중고 모피류를 파는 상인의 목소리가 흥겨움을 더하고, 열심히 옷을 고르는 손님들의 손길도 바쁘다. 발걸음을 멈춘 한 손님은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 이리저리 옷을 뒤적이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는지 가격 흥정에 나섰다. 털모자가 달린 겨울 잠바가 2만 원인데 5000원만 깎아 달라는 손님과 그렇게는 못 판다는 상인의 실랑이가 한참.

여기저기 가격을 물어보는 다른 손님들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상인은 결국 5000원을 뺀 금액을 받고 빠른 손놀림으로 봉투 안에 옷을 담아 건넨다. 1만5000원을 지불하고 봄옷을 하나 장만한 손님은 뿌듯한 표정으로 다른 점포를 향해 돌아섰다. 이런 손님들과의 실랑이가 귀찮기도 할텐데, 상인은 밝은 표정으로 금새 다른 손님의 질문에 답하며, 옷 파는데 정신이 없다.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구요...
화개장터의 노랫말처럼 동대문 풍물시장에도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
서울의 명소였던 황학동 벼룩시장의 상인들이 그대로 자리를 옮겨온 만큼 탱크 빼고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즐비하다.

"**의 생일을 축하하며...84.2.19 인옥." 볼펜으로 꼭꼭 눌러 쓴 생일축하 메시지가 남긴 정태춘, 박은옥의 낡은 레코드표지. 친구 혹은 연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한 것일텐데, 어떤 사연으로 20년이 지난 지금, 풍물시장의 한 구석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상인은 2000원에 이 레코드판의 새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손님을 불러모으고 있지만, 턴테이블의 추억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낡은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다 돌아선다.
이처럼 풍물시장에 나온 물건들은 오랜 세월 누군가의 손때가 가득한 중고물품을 비롯, 헌 옷가지와 중고 휴대폰과 충전기, 리모컨과 오래된 카메라 등 그 종류도 정확히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볼 수 있는 트로트 메들리 테이프가 시장 구석구석 울려퍼지고, 옛 향수가 가득 담긴 골동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한창이어도 어김없이 뱃속의 시장기를 느끼게 된다.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단 돈 1000원짜리 장터국수로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던 한 아주머니도 이곳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풍물시장과 동대문운동장의 주차장 사이에는 이른바 먹자골목이 자리하고 있다. 2000원짜리 옛날자장부터 선짓국, 해장국, 김밥, 핫도그 등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가 있어 시장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준다.

겨우내 묵은 먼지와 함께 새 봄을 단장할 준비를 한다면, 먹거리 많고, 볼거리 많은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을 한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 1960∼70년대의 향수가 밴 물건들을 새롭게 닦아 집안을 장식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앤틱(Antique)풍의 인테리어 효과를 볼 수 있다.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11시 사이에 개장해, 해가 지는 저녁 시간까지 문을 연다. 田

■ 글 ·사진 조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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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시장] 황학동 벼룩시장의 재탄생,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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