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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이뤄지는 생활 가운데서 중요한 부분은 의생활과 식생활 그리고 관혼상제(冠婚喪祭)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통틀어 ‘가사’라 부르기도 한다. 가사 활동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집의 구조가 많이 달라진다. 반대로 집의 구조에 따라 가사 활동이 변하기도 한다.

조선조나 근대까지는 가사 활동의 대부분이 여성의 몫이었다.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서양 문물을 수용하고 70년대 이후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사회구조 변화로, 가사 활동이 예전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생활 방식이 서구화된 것에 있다. 집은 생활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기 때문에 생활의 변화는 집 구조를 바뀌게 한다. 예를 들어 관혼상제에 관련된 의식을 모두 집에서 해야 한다면 집의 규모는 매우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러한 의식을 집 밖에서 한다면 집의 규모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정도면 족할 것이다.

사람들이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의식주(衣食住)다. 단어의 순서로 볼 때 먹고 입는 것이 집보다 먼저임에도 불구하고, 두 분야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덜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먹고 입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기에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으므로 이를 통해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자연환경에 종속된 음식 문화
음식 문화는 다른 문화하고 달리 주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심하게 변한다. 그래서 요사이 각 문화권 간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음식의 취향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변화의 속도도 매우 빠르다. 음식의 특성이 그러하다 보니 자연환경 또는 문화 환경과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음식 역시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각 문화마다 고유한 음식 문화가 있다. 이것은 주거와 마찬가지로 자연환경에 따라 결정된다. 어쩌면 집보다 더 자연환경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교역이 발달하기 전에는 그 지역에서 나오지 않는 먹을거리로 음식을 만들 방법이 없다. 또한 지역의 기후에 따라 음식을 저장하는 방법도 천차만별(千差萬別)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전통 음식은 원칙적으로 자연환경에 철저하게 종속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가 금기로 되어 있다. 이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일차적으로 기후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속담에도 “여름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돼지고기가 아랍인들이 사는 더운 사막기후에서는 쉽게 상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율법으로 규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은 최창모 저 《금기의 수수께끼》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책에서는 돼지고기에 대한 금기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음식은 사회 환경과 관계가 깊다. 개인적으로 음식 문화는 고급문화라고 생각한다. 고급문화는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음식 문화는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있을 때만 발달할 수 있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 식도락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제 우리의 생활에 여유가 생겼음을 뜻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음식 문화를 관찰하면 문화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하고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특징으로 첫 번째는 젓가락 사용을 전제로 한 음식이고, 두 번째는 탕 문화의 발달이고, 세 번째는 발효(醱酵) 음식이 매우 발달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한·중·일의 젓가락과 음식
젓가락 문화에 대해 언급해 본다면 한국, 중국, 일본 등의 한자 문화권과 베트남이 같은 양상을 보인다. 젓가락은 3000여 년 전 중국에서 발명돼 1800여 년 전에 한국으로 전파됐고, 일본에는 1500여 년 전에 건너갔다고 한다.

2002년 초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한국, 중국, 일본의 젓가락에 대한 비교를 보면 음식 때문에 젓가락 형태에 차이가 생겼다고 한다. 길고 끝이 뭉툭한 중국의 젓가락은 돼지고기 등의 육류 음식에 적합하고, 끝이 가늘고 뾰족한 일본의 젓가락은 생선을 먹기에 알맞고, 우리의 젓가락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형으로 다양한 음식을 먹는 데 골고루 쓸 수 있다고 한다. 그 방송프로그램에서는 나라마다 젓가락 형태가 다른 것은 그 나라에서 주로 먹는 음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서는 젓가락 구조의 차이보다는 젓가락을 이용해 먹는 음식의 특징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필자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음식 문화를 ‘먹는 사람을 배려한 음식 문화’로 정의한다.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하는 서양의 음식은 먹는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음식이다. 이에 비해 젓가락을 사용하는 음식은 편하게 먹도록 조리된 것들이다. 만일 우리의 음식을 서양 음식처럼 조리한다면 젓가락만으로는 먹을 수 없다. 젓가락 문화권에서는 간단한 젓가락 동작만으로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의 크기를 적당하게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즉 음식의 조리 과정에서부터 배려가 있어야 한다.

국물에 어울리는 우리의 숟가락
숟가락은 기원전 6∼7세기 청동기시대부터 유물이 발견되는 우리의 고유 도구라고 한다. 일본에는 아예 숟가락이 없어, 국물그릇째 들고 마신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탕류의 음식이 다양하게 발전할 수 없다. 중국의 숟가락은 형태만 보아도 국물을 떠먹는 용도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숟가락은 국자가 변형된 듯한 모습이다. 중국 숟가락은 자기 접시에 국물을 떠가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것으로 국물을 떠먹어 보면 불편하다.

우리의 숟가락은 다목적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국물을 쉽게 먹을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다만, 국물을 떠서 옮기는 데는 그리 편하지 않다. 삼국시대의 숟가락을 보면 깊게 파져 있고 크기도 커서 국물을 떠먹기에는 불편하다. 그 이후 숟가락의 형태가 변했다는 것은 음식에서 탕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음식도 처음에는 탕 종류가 많지 않았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점 다양해졌을 것이다. 탕 문화는 동양 삼국의 젓가락 문화권에서도 우리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정된 사회에서 발전하는 발효 음식
우리나라 음식의 특징은 발효 음식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발효 음식으로 대표적인 것은 술이다. 모든 나라에서 술을 만들지만 발효 음식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편차를 보인다. 중국의 전부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경험해 알고 있는 중국 음식에서 발효 음식은 자주 볼 수 없었다.

기껏해야 삭힌 오리알과 청국장하고 비슷한 ‘두시’ 정도이고, 일본의 경우는 된장, 간장과 청국장류인 낫토 등이 있으나, 된장의 경우도 우리의 것하고 발효 정도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있지만 본격적인 발효 음식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정도다. 발효 음식으로 서양을 대표할 만한 것은 치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는 발효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로마 시대에는 우리나라 황새기젓과 비슷한 발효 젓갈이 있었으나 로마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

여기에 비해 우리의 음식 문화는 발효 음식을 제외하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젓갈류,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등이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든 음식이다.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만 전라도에서 많이 먹는 홍어찜과 함경도에서 주로 먹는 가자미식해도 발효 음식이다. 발효 음식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만드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전통 방식으로 장을 담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장을 담그는 과정도 오래 걸리지만 맛을 내고 보관하는 데도 꽤 까다로운 품을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발효 문화가 발달하려면 무엇보다 사회구조가 안정돼야 한다.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발효 음식이 발달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몽고와 같은 유목민족에게서 발효 음식이란 술과 요구르트 정도로, 그밖에는 발효 음식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이 이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발효 음식은 만드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숙성(熟成)의 변화를 관찰할 만큼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으면 생겨 날 수 없는 음식이다.

그러므로 전쟁과 외침이 자주 있거나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지역이라면 발효 음식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발효 음식이 발달한 나라는 사회 안정을 유지하며 오랫동안 정착 문화가 형성된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음식 문화를 통해 본 우리나라를 말할 때, 흔히 수많은 외침을 받아온 나라로 이야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발효 음식이 발달해 있는 나라가 그렇게 불안한 사회였는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음식 문화가 문화 발전의 최종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구조가 웬만큼 안정되지 않고는 음식 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 한국 음식의 조리 과정은 중국 음식이나 일본 음식 그리고 서양의 요리보다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간다. 그만큼 음식에 대한 정성이 깊다. 이러한 것을 보아도 발효 음식과 젓가락 문화로 대표되는 우리의 음식 문화는 담장과 함께 우리의 사회 문화 환경이 매우 안정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발효음식의 발달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독문화를 만들어 냈다. 장독이라는 질그릇은 발효시키기에 딱 알맞은 도구다. 과거 모든 집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발효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장독과 장독대도 없었을 것이다. 장독은 이동이 쉽지 않은 그릇이다. 이러한 그릇이 수십 개 있었다는 것도 사회의 안정성과 정착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田

■ 글 최성호 <산솔·도시 건축연구소 대표, 전주대 건축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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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달라진 우리생활, 달라진 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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